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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공정사회? 원칙 배신하는 변칙 안돼!"


입력 2010.10.24 11:45 수정        

광화문광장 강연서 "법은 일관되게 기회는 공평하게 적용은 효율적으로"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념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릴레이 강연에서 ´공정한 사회, 법치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해치마당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념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릴레이 강연에서 ´공정한 사회, 법치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한니발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를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이 실각한 이유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돈을 받은 죄였습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조선이 500여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단일왕권을 유지할 수 있던 힘은 바로 국가 지도층의 청렴성이었습니다. 지도층이 개인의 영달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변질되기 전, 청빈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조선의 핵심 권력층의 모습을 현 지도부는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헌법적 자유주의자’라 칭하는 이석연 전 법체저장이 현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법치주의를 강조해온 그는 법제처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원칙과 어긋날 경우 이를 주저하지 않고 지적해 ‘Mr.쓴소리’라는 별칭을 얻을 바 있다.

이 전 처장은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정한 사회, 법치의 길을 묻다’이라는 제하의 강연에서 “원칙을 배신하는 변칙이 허용돼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 이 전 처장은 ‘헌법학자’로서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강조해 온 평소의 소신을 피력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사를 인용하며 작금의 상황에 빗대어 ‘쓴소리’하기도 했다.

이 전 처장은 법치주의의 근본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틀, 즉 법이 테두리를 지키고 ‘예외’를 인정하는 않는 것임을 강조했다. 만인에게 공평한 법은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 권력의 유무를 떠나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 전 처장은 최근 현 정부 고위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논란을 지적했다. 그는 “고위공직자 검증 과정에서 국민들은 후보자들의 높은 도덕성, 살아온 과정의 투명성, 엄격한 준법을 원했다”고 전제한 뒤 “어떤 분들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앞으로 공직자들에게 더 높은 투명성이 요구될 것이고, 국민은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공정한 사회의 요건으로 △일관된 법 적용 △투명하고 공평한 기회 △효율적이며 시의적절한 적용 등의 3가지를 들었다.

먼저 이 전 처장은 법의 공정성과 관련해 “국민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법이 공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덕목 중 하나가 ‘사회적 신뢰’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적법절차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법 불감증 혹은 목표 만능주의가 우리사회에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이 전 처장은 최근 우리 국민들이 법을 믿지 못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에 무감각한 이유는 고위층의 ‘예외’에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조선이 500여년을 이어온 것은 지도층이 개인의 영달에 매달리지 않고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청렴성에 있었다”면서 “이순신 장군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판부사 정탁은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직언했고, 세종의 즉위를 반대했던 황희 정승은 유배를 갔지만 그의 직언을 받아들인 세종으로 인해 세종을 빛나게 했던 2인자가 됐다. ‘임금이 어질면 신하는 곧다’는 말처럼 선비의 직언이 살아있어야 성군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전 처장은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최고 통치자 밑에는 천명의 ”예“하는 사람보다 바른말 하는 한 사람의 선비가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지도자를 이를 새겨야 한다. 권력자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에게만 법을 지키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법치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측 역시 헌법의 절차에 따라서 권한을 행사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또 정당성을 앞세워 불법이 용인되는 행태에 대해서도 따끔히 지적했다. 그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버트런드 러셀이 1991년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였을 당시 법을 위반했다는 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시민이 항의하자 판사는 ‘나이 값을 하시오’라고 했다”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의 평화를 위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이 법에 위배된다면, 법치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게 영국 전통이다. 이처럼 법은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이어 “미국에서는 의원들이 시위를 벌이다 폴리스 라인을 넘었더니 경찰은 가차 없이 의원들의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순순히 응했다”며 “우리 사회에서는 불법행동이라도 정당하면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절차와 수단을 중시하고 그에 따라 임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처장은 “이념 편파적이고 파편화된 개인과 집단으로 인해 공동체적 연대가 급속히 허물어져 국가 정체성이 흔들리고 개인사회의 연대도 사라져 갈 위기에 처했다”며 “(더욱이) 헌법이 마치 이념투쟁의 재물이 되고 있는데, 더 이상 철지난 이념조각을 붙들고 편 가르기에 집착해서는 미래의 비전이 없다. 참여와 기회 균등을 바탕에 둔 국민적 합의만이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법의 융통성에 대해서도 평소의 소신을 역설했다. 특정한 기준이 아니라, 기회의 공평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실패한 사람에게 인색한 우리사회의 풍조에 우려하면서 실패는 포용하되, 이념투쟁의 ‘끼리끼리 문화’에 악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승리자로 가득 찬 세상만큼 삭막하고 재미없는 세상도 없다. 그나마 우리 삶을 살맛나게 만들어 주는 것은 패배자”라며 “그들은 용기와 할 수 있다는 힘을 전해 주기 때문에 그런 이들의 실수와 잘못을 용인하고, 궁극적으로 비주류가 경쟁력이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로마는 법치를 통해 모든 식민지를 포용했고 심지어 식민지 출신에서 황제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도 나와 다른 사람도 같이 하려는 로마인 유전자가 필요하다”며 “나 역시 시골에서 자라 배경도 재산도 없이 공부만 하다가 이 자리까지 왔다. 1등과 성공자만이 대접받는 게 아니라, 실패의 극복이 잔잔한 감동과 의욕을 일으키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향후 계획과 관련해서는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게 하고 국민이 낸 세금이 공정한 곳에 쓰이는지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권력이나 잘못된 제도 등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통합될 수 없는 만큼, 소수자들이 대우받고 국민이 낸 세금이 투명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검증하는 일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전 처장은 “군가산점 문제에서 보듯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되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사회”라면서 “맹자의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과 같이 지금 당장은 더디고 불편하더라도 헌법절차와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가야 한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적 열매를 헌법의 정신으로 회복해 공정사회로 가는 디딤돌을 만들 시기”라고 역설했다.[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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