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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 가족 편견보다 좌파정부 외면이 더 상처

  • [데일리안] 입력 2010.12.27 14:06
  • 수정

<인터뷰>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법안 통과 만시지탄"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자료사진)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자료사진)
“이제라도 고통받았던 전시 납북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을 정부 차원에서 돌아볼 수 있게 돼 가슴이 벅찹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명예회복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6.25전쟁 발발 60년, 분단 반세기 동안 고통받았던 전시 납북피해자 가족들의 염원이 실현된 것에 대해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올해 이 이사장은 의미있는 성과를 이뤘다. NGO로서는 한계가 있던 외로운 싸움. 전시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북한을 상대로, 그리고 전시잡북자 및 그 가족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인 우리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호소하고 설득한 지 10년. 올해 3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와 관련 사무국이 13일 공식출범했다.

이 이사장은 ‘전시납북자 가족 누군가가 나서주겠거니’라고 기다렸지만 60년 간 전시납북자에 대해 쌓인 편견과 오해 등으로 인해 모두다 침묵할 뿐,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2000년 직접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꾸리고 전시납북자 실태 파악을 나섰다. 납북자 관련 명부를 발굴하고 납북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자료집을 2차례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에는 국가를 상대로 1인당 58원씩 870원을 배상하라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위원회가 공식출범했지만, 갈 길은 멀다. 내년 1월 3일부터 3년 안에 16개 시·도 실무위원회와 228개 시·군·구, 재외공관 등에서 납북 피해자의 신고접수를 받아야 한다. 접수된 신고에 대한 조사에 걸리는 시간만도 1년 가량. 아직 명확한 통계조차 없는 전시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4년이 숨가쁘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만시지탄이라 사실 전시납북자와 그 가족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지만 의미있는 시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실 가장 먼저 전시납북자분들께 정부 차원에서 정확한 전시납북자 명단 파악과 진상규명에 나선 걸 알려 드리고 싶었다”는 이 이사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이 이사장 역시 전시납북자 가족이다. 6.25 당시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아버지와 소아과 의학박사였던 큰아버지가 납북됐다. 당시 이 이사장의 나이가 만 1살.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바람만을 간직한 채 평범한 삶을 살던 이 이사장이 전시납북자 진상 규명에 나선 것은 10년 전인 지난 2000년부터. 6.15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화해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전시납북자는 열외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전후납북자만을 가리켜 “납북자는 480여명”이라고 발언하고 영향도 비전향 장기수가 북송되는 사이 전시납북자의 존재는 잊혀져갔다.

연좌제로 감시받고 ‘월북’이라는 편견에도 견뎠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전시납북자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때는 울컥하기도 했다. 북한이 전시납북자를 부정하고 불편해하자, 정부에서도 역시 이들을 일종의 ‘걸림돌’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탓이다.

이 이사장은 “10년 동안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일해 온 덕에 특별법이 제정되고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의 길이 열려 감사할 따름”이라며 “이번이 전시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만큼, 한 분의 피해자도 빠뜨리지 않고 명예회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전시납북자 문제는 당사자에 국한된 게 아님을 지적했다. 현재도 진행되는 분단과 납북이라는 비극을 종결시킴으로서 자국민 보호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외’였던 전시납북자 가족들을 끌어안는 한편, 일반 국민들에게도 ‘정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는 얘기. 이 이사장은 “납북자들에게 ‘반드시 대한민국으로 데려오겠다’는 각오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이사장은 “전시납북자와 그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경제적 보상보다 명예회복과 혈육에 대한 근황을 아는 것”이라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혈육의 생사확인과 소재파악이다. 살아있다면 서신이라도 교환하고, 사망했더라도 유해라도 대한민국으로 송환해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전시납북자에 대한 체계적 진상조사의 필요성은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논의에만 그쳤다. 민간 차원에서는 한국과 미국, 소련 등의 자료를 토대로 전시납북자 명단을 작성하는 작업을 해왔다. 현재 협의회가 추산하는 전시납북자 수는 최소 9만에서 최대 12만 가량. 1952년 정부가 발행한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전시 납북자 수는 8만2959명에 이르고, 1951년 말 내무부가 정리한 피랍자 명단의 경우, 12만600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이사장도 전시납북자의 규모와 관련 “최소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순수 납북자 수는 대략 1만5000명 정도지만, ‘의용군’으로 강제 징집된 젊은이들의 숫자가 9만은 족히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유명 인사 외에도 노무대나 의용군의 명목으로 강제로 끌려간 젊은이들이 상당하다”며 “주변의 전시납북자 가족분들 가운데에서도 ‘내가 아는 이가 (전시납북자) 명단에 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1953년 휴전협정당시 남한출신 의용군 문제가 누락됐기 때문에 이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이사장은 “다양한 대국민홍보, 서비스를 통해 모든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되는데 동참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이번에야말로 전시납북자 가족들의 한과 아픔이 풀리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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