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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슈퍼을' 보좌진들도 속으로 운다


입력 2013.06.15 10:26 수정 2013.06.15 10:34        김지영 기자

국감전엔 한두달 파김치돼 일하다 끝나면 파리목숨

"그래도 내가 모신 의원 잘되고 발의법안에 보람"

“OO 의원의 한 측근은...”, “OO 의원측 관계자에 따르면...”, “OO 의원실에 따르면...”

정치부 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용구다. 발언의 출처는 있지만, 직급은 불분명하고, 취재원의 소속은 있지만, 실명은 없다. 그렇다고 언론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분명 취재를 통해 정보를 얻었고, 그 취재원은 국회의원의 측근일 것이다.

이 ‘익명의 취재원들’은 이렇게 국회의원이 해야 할 대부분의 업무를 대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선 안 된다. 여기에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육체적 고통과 국회의원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도 감당해야 한다. 때론 국회의원을 위해 가정까지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누굴까? 답은 국회의원의 ‘그림자’로 불리는 보좌진이다.

보좌진은 의원실에서 비서와 서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을 통칭하는 직책. 본래 중국에서 유래된 말로 비서는 주요 당국자의 기밀업무를 담당하고, 서기는 당국의 기록을 관리한다. 두 직급 모두 중국과 구소련,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에선 최고 권력자를 일컫는다.

하지만 해당 직책들은 우리나라에선 ‘허드렛일이나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변질됐다. 사전적 의미나 실제 역할을 보면 중국과 다르지 않지만, 우리나라 비서와 서기는 방문객을 안내하거나 사무실 내에서 심부름이나 서류·집기 정리를 도맡아 하는 말단 직원으로 오인되고 있다.

이에 80년대 말 국회에 발을 디딘 한 보좌관은 “보좌진은 역할에 따라 국민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면서 “사실 국회의원의 공과는 보좌진의 공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보좌진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법보좌부터 청문회 준비까지…뜬 눈으로 밤 새는 일도 부지기수

국회의원 보좌진은 4급 보좌관 2명과 5급 비서관 2명, 6·7·8급 비서 각 1명, 인턴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인턴을 제외한 7명의 보좌진은 모두 별정직 공무원으로 이들의 임명권은 전적으로 해당 의원에게 있다. 지역구 사무실에 상주하는 보좌진의 수도 의원이 결정한다.

간혹 의원이 자신의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해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국가공무원법상 하자가 없고, 실제로 일할 사람을 뽑은 거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능력은 있는데 측근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면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16~17대 국회까진 의원이 자신의 친인척을 ‘유령’으로 채용해 급여만 챙기거나 보좌진을 모두 친인척으로 구성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에 지난해 하반기에는 여야 할 것 없이 4촌 이내 친인척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잇달아 내놨지만 위와 같은 반대에 부딪혀 끝내 처리가 무산됐다.

그나마 17대 국회 이후엔 전문성을 겸비한 보좌진 채용이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달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4급 보좌관 한 명을 뽑기 위해 모집 공고를 냈지만 수십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바람에 보름 이상 장고를 거듭했다. 그만큼 보좌진을 채용하는 데에 전문성과 역량이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보좌진의 직급별 역할은 법률로 정해진 건 없지만, 4급 보좌관의 경우 한 명은 정책을, 다른 한 명은 정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5급 비서관은 정책을, 6~7급 비서는 수행이나 정책을 지원한다. 이밖에 8급 비서는 행정 업무를 수행하며, 인턴은 4~8급 보좌진의 정책·입법 활동을 지원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입법보좌로 대개의 경우 4급 보좌관이 법률의 제·개정 관련 심의자료를 만든다. 또 예산감시와 국정감사 지원 업무를 통칭하는 정책보좌와 민원과 지역구 사업·예산 관리, 유관단체 교섭 등을 수행하는 행정보좌도 보좌진의 주요 업무다.

특히 입법보좌의 경우, 대개 의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보좌진이 이를 국회 사무처 법제부서에 제출해 법안화하지만, 의원실에 따라 법안을 만들고, 각 정부부처와 협상하는 모든 과정을 보좌진들이 도맡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 보다 정밀하고, 신속한 법안 제출이 가능하다. 결국 보좌진의 역량 차이다.

다만 평소에는 직급별 업무를 분담하다가도 특정 상황이 닥칠 때면 모든 보좌진이 협업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청문회와 국정감사 시즌이다. 이때는 공직 후보자나 기업의 비리를 찾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새는 일이 부지기수다.

한 4급 보좌관은 “청문회 때 힘든 건 제보가 아닌 경우, 자료의 접근성이 어렵다는 것”이라며 “무궁무진하게 많은 자료에서 문제점을 찾는 건 쉬운데, 확인 가능한 사실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끄집어내긴 어렵다. 그게 청문회”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업무 강도만을 비교하면 아무리 빡빡한 청문회도 국정감사엔 비할 바가 못 된다.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을 ‘국감스타’로 만들기 위해 국감을 앞둔 1~2개월 동안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20일 내외의 국감 기간 동안 의원실 라꾸라꾸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일도 허다하다.

특히 한 의원은 국감을 앞두고 ‘언론 보도 횟수 1일 1회’라는 원칙을 세우고, 보좌진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개월 가까이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을 위해 온몸을 불살라도 이들에게 남는 건 없다. 오히려 국감이 끝난 뒤 퇴출 대상에 포함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국감이 끝나면 관행처럼 이어지는 ‘물갈이’에 당장 밥그릇을 걱정해야 하는 비정규직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만큼 보좌진의 처지는 서글프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누군가 버리든 헤어지는 것"

그나마 대다수의 보좌진들은 업무에 수반되는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알고도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겠지만, 보좌진이 의원의 업무를 대리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호 신뢰가 뒷받침돼야 하고, 수행을 담당하는 보좌진의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의원의 성격이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잦다.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묵과해야 하는 일도 흔하다.

특히 보좌진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일부 의원실의 경우, 의원 임기 4년 동안 수십 명의 보좌진이 교체되는 일도 있다. 실제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한 여성 의원은 퇴임 후 자신의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보좌진들을 불러 모았는데 20~30명이 운집했다는 풍문도 있다.

또 영남에 지역구를 뒀던 한 전직 의원은 현역 시절 보좌관 급여에서 월 300만원씩 전용해 지역사무소 운영비로 사용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으며, 19대 국회에 입성한 한 현역 의원은 보좌진들이 출근하면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하고, 점심시간에는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 명씩 식사를 내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의원과 보좌진 사이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보좌진을 업무 파트너가 아닌 도구로 바라보는 등의 의원의 잘못된 인식이나 견고하지 못한 상호 신뢰관계에서 기인한다.

한 야당 의원 측 보좌관은 “의원 입장에서 ‘이 보좌관이 일을 정말 잘하는 건가’, 반대로 보좌관이 ‘우리 영감(의원) 왜 이래’ 이런 식으로 신뢰가 깨진다면 누가 버리든 헤어지는 것”이라며 “특히 수석보좌관의 영향이 크다. 의원과 수석보좌관의 관계에 따라 의원실 분위기가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좌진들이 좋은 의원을 만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보좌진이 악의를 가질 경우, 의원과 의원실 전체에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은 의원의 몫이지만, 의원의 입과 귀 역할을 하는 보좌진이 욕심을 가질 경우, 이 같은 역할이 권력이 될 수도 있다.

인턴부터 모든 직급을 거쳤다는 한 보좌관은 “결국 의원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에는 보좌진이 있기 때문에 그 길목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보좌진”이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한다면 의원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을 숨기고, 공을 돌려 의원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보좌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 보좌관은 “개인적으로 내가 모시는 의원이 잘될 때 가장 뿌듯하다”며 “법안이 잘 통과돼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의원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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