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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응징했으면 MB정부는 식물정권 안됐다


입력 2014.01.19 10:28 수정 2014.01.19 10:34        데스크 (desk@dailian.co.kr)

<굿소사이어티 서평>이스라엘과 한국의 차이를 짚는 조갑제의 혜안

'이스라엘 식으로 살기' 조갑제 지음 조갑제닷컴 펴냄. '이스라엘 식으로 살기' 조갑제 지음 조갑제닷컴 펴냄.
정치철학자인 하비 맨스필드(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우파 학계의 거물이다. 칠순의 나이의 그가 전공과 무관해 보이는 저술 '남자다움'(Manliness)을 펴낸 것이 2006년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 사회에 화제였다. 그의 지적은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찔렀다. 왜 요즘 들어 멋진 신사, 멋진 남자가 사라졌는가? 맨스필드가 보기에 우리 시대는 남자가 여성 같고, 여성이 남자 같은 유니섹스 즉 성 중립의 이상한 사회로 변질됐다. 그의 말은 수컷다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니체, 토크빌, 헤밍웨이 같은 서구지성사의 큰 이름들을 동원해 잃어버린 가치인 남성다움을 넓고 견고하게 복원하려 한다. 실은 두모스(thumos)가 실종된 지는 꽤 됐다. 두모스란 서양판 호연지기(浩然之氣)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부터 고대 그리스어로 혼, 기개 혹은 용맹함을 뜻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두모스를 “털을 곤두세운 개의 사나움”으로 표현했다.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는 용기의 남자다움 말이다.

남자다움, 수컷다움의 가치가 실종된 이상한 사회

두모스의 부활을 꾀한 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가 말한 남성다움이란 야수적 공격성이자, 요즘의 국가안보 개념과도 통한다. 이상이 하비 맨스필드의 흥미로운 담론인데, 그건 여유 있고 한가한 서구 쪽의 이야기다. 우린 그네들보다 훨씬 다급하며, 국가 생존이 걸려있는 상황이다. 조선조 이후 주자학적 문약(文弱)사회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남자다움의 개념이 실종된 것은 물론이고, 맨스필드와 마키아벨리가 언급했던 대로 국가안보 개념 자체가 휘청대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필자가 '이스라엘 식으로 살기'(조갑제 지음, 조갑제닷컴 펴냄)를 읽고 환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마디로 상무(尙武)정신이 펄펄 살아있는 이스라엘에 우리 모습을 비춰본, 서점가에 매우 드문 종류의 단행본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3주년이던 지난 11월 말 이 책을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거북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 책으로 달랠 수 있었다. 당시는 한 가톨릭 신부의 노골적인 이적성(利敵性) 발언으로 뒤숭숭하던 무렵이었다. 이 책은 한국사회와 전혀 딴판으로 움직이는 현대 이스라엘의 실체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국가지도부는 무서운 자주국방 의지로 무장하고, 장교들은 ‘돌격!’ 대신 ‘나를 따르라!’고 명령한다. 영웅적 국민들은 위험하게 살면서도 행복도가 세계 최상위권이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나지 않는다면, 그는 온전한 시민이 못 된다. 하지만 안타깝다. 안보에 관한 한 한국사회는 미온적 대응을 넘어 마치 정치적 집단자살을 결심한 나라인 듯 보인다. 장성택 숙청 이후 더욱 불안해진 북한의 정정(政情), 그리고 불안요소를 추가한 안보상황에서 충분한 대응책이 이뤄지고 있는지 실로 의문이다. 지난 연말 북한이 자신들의 ‘최고 존엄’ 모독이 반복될 경우 예고 없이 보복행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협박통지문을 발송했지만, "과연 도발을 할까?"를 되묻는 전망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

한국-미국-중국 사이의 전략대화를 본격 검토한다거나, 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보장회의 산하의 상임위원회와 사무처를 설치한다는 정부의 말도 들리지만, 크게 미덥지 않다. 이스라엘은 철옹성이고, 남자다움 내지 수컷기질로 충만하다면, 대한민국은 거세(去勢)된 나라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은 그걸 이렇게 아주 냉혹하게 지적하는데, 반론하기 쉽지 않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큰 차이는 국방은 미군에 맡기고 즐기면 된다는 사대주의적 의존성(한국)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주국방의 의지(이스라엘)의 차이일 것이다. 이 차이는 국민 수준의 반영이라기보다는 국가 지도부의 품격과 용기의 차이일 것이다.”

'이스라엘 식으로 살기'의 서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1987년 이후 한국은 사익 추구의 포퓰리즘을 본성으로 하는 정치논리가 희생정신 위에 서야 하는 안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안보 경시 풍조는 1987년 이후부터

민주화와 함께 들이닥친 좌경화의 물결은 피아(彼我)식별 기능을 마비시키고, 웰빙 문화는 결전의지를 약화시켰다. 국가지도부는 통일의지를 잃어버리고, 국민들은 정의감과 애국심을 팽개쳤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적인데, 이 책은 저자가 1995년 이스라엘 군대와 지도부 등 현지 취재한 자료를 토대로 하고, 최근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삽입해 만들었다. 좀 오래 전에 이뤄진 취재라서 정보가 낡은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운데, 막상 읽으면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저자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한 한국 국가 지도부의 대응방식에 화가 나서 이 책을 쓰기로 했다는데, 이런 과정에서 최신 정보로 적절히 보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입부에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우리 수뇌부의 대응방식을 정면으로 꾸짖고 있어 아연 팽팽한 긴장감부터 든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격이 한참이던 그때 한국공군의 최신예 전투기 8대가 떠있었다. 하지만 얻어맞는 게 체질이 된 군대요, 대통령이었기에 폭격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확전하지 말고 위기관리를 하라”는 신중한, 아니 비겁한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반대 상황이었을 경우 어땠을까? 저자의 박진감 넘치는 글이 이렇다. “폭격명령이 떨어졌더라면, 전폭기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유도폭탄으로 적의 해안포대를 박살내고 도전하는 북괴 공군의 낡은 미그 23을 모조리 격추시켰을 것이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의, F-15가 주력인 공군이 미그 23이 주력인 시리아 공군과 대결해 85대 1로 이긴 베카 계곡 공중전이 재연됐을 것이다.”

적진(敵陣)을 초토화시킨 뒤 우리 군의 데프콘3 발동, 그리고 한미동맹 체제의 가동이 이어진다. 미군의 항공모함 전단이 한반도 해역에 깔리는데, 그 위용 앞에 먼저 도발을 감행했던 평양 것들은 국지전 계속이나 전면전은 꿈도 못 꾼다.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애국심 고양일 것이다. 불타는 연평도 사진 대신 불바다로 변한 적의 해안포 진지와, 격추되는 미그 23기의 동영상을 보면서 환호했을 것이다. 이 화려한 역전승은 얻어터지는 습관에서 벗어나 이기는 전쟁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으리라.

연평도 포격에 응징했으면 MB정부는 식물정권 면했다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는 결정적 계기였음은 물론 이후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 국정 운영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리라는 게 나의 관측이다. 광우병 파동에서 식물정권이 된 기억을 떨쳐내고, 안보는 물론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에까지 보다 효율적인 국가사회를 건설했으리라고 믿는다. 안타깝다. 우리는 기억한다. 연평도 포격 6일 뒤에 나왔던 대통령의 담화는 추가 도발에는 단호한 응징을 하겠다고 공허한 다짐을 반복했으나 정작 필요한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전쟁으로 간다는 최후통첩으로 적들을 몰아세우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은 생략했다.

한국사회와 현대 이스라엘은 왜 점점 더 다른 사회, 다른 문법 아래 움직이고 있을까? 이 책은 그걸 묻는다. 우리와 이스라엘은 다른 점만큼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당하기만 하던 민족이었다. 문화풍토가 그러해서 전사(戰士)보다는 학자를 존중했고 그래서 도덕 우선주의가 습관화됐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허약한 한국과 이스라엘은 무사 집단이 사회의 지배계급이었던 적도 없다. 이런 전통이 바뀐 것이 20세기 중반 이후다. 일치 단결해 국가를 건설하고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서’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감동적인 逆轉(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두 나라는 똑 같다.

한국은 일제 식민 통치, 분단, 전쟁을 극복하고 민주적인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이스라엘은 2000년의 유랑생활과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 학살을 딛고 섰다. 이후 이스라엘은 1대 30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건국 후 네 차례 전쟁을 외국의 도움 없이 승리로 이끌어내며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했고, 자주국방에 성공했다. 애초 닮은꼴이던 한국과 이스라엘은 1990년 무렵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차이는 “국방은 미군에 맡기고 즐기면 된다”는 한국의 사대주의적 의존성과,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이스라엘의 자주국방 의지의 차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래서 그의 눈에 한국은 국방도 외주(外注)를 주는 이상한 나라이다.

실제로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는 아주 대조적이다. 저자가 이스라엘 현지를 취재한 결과 애국심에 대한 인식이 천양지차였다. "한국에선 아무런 감동도 유발하지 못하는 단어가 돼버린 애국심이 이스라엘에서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국가와 민족이란 말도 한국에선 일부 정치인과 위선자의 선동가들에 의해 의미가 크게 퇴색돼 버렸지만, 이스라엘에선 입술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총구를 통해서, 자기 희생을 통해서 생동하는 가치로 구현되고 있었다."(128쪽)

정치권도 그러하다. 한국의 좌파들은 평화지상주의의 가치를 계속해서 속삭이고, 야당은 안보를 경시한다. 가히 정치적 자살에 해당하는 이런 상황은 서울 불바다를 위협하는 평양의 끊임없는 공세에도 변하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 국회에서도 자주 격돌이 벌어지지만, 정치의 주제는 언제나 국가 생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 700만 명의 이스라엘은 7배가 넘는 우리와 군사력이 비등하거나 우위를 보인다. 현재 군사력 세계 3위. 인구 대비 군사력은 당연히 세계 1위이다.

유태인 학살 부정하면 5년 감옥생활 시킨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제대로 된 근대국가이고, 한국은 협회 수준의 국가인데, 저자는 그걸 야윈 늑대와 살찐 돼지로 비유한다. 법률도 사뭇 다르다. 눈에 확 띄는 대목이 이스라엘의 형법이다.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부인하거나 나치를 옹호하는 공개적 발언, 집필을 한 자에 대해서는 최고 5년 형을 명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한국에 한 번 적용해보라는 게 저자의 귀띔이다. 이를테면 많은 여론조사에서 한국 성인의 14.6%가 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모른다고 대답하는데, 이스라엘 같으면 당장 형사처벌 감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형법에 ‘북한정권에 의한 전쟁•학살 및 반인류적 행위를 부정하는 죄’를 신설할만하다.”(239쪽)는 제안이고, 그 경우 김일성이 저지른 6•25는 물론 북한 정권의 강제수용소 실태, 공개처형, 납치 그리고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와 천안함 폭침 등을 부정하는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자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담대하면서도, 당연한 주장이다. 웰빙에 빠져 사는 한국사회에서 그런 게 과연 가능할까?

최근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주국방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의 행복도가 외주(外注) 국방을 하는 한국인보다 훨씬 높았다. 안보에 대한 불안과 불신도 미국에 국방을 맡기고 행복을 찾으려는 한국에서 더 높았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안보 불안으로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비율은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무려 열 배나 많았다. 저자의 말대로 도전을 피하려고 하면 불행해지고 도전을 받아들이면 행복해진다는 증거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아직도 전쟁 중인 우리는 남태평양 식이 아닌 이스라엘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맞는 말인데, 기회에 잠시 물어보자. 혹시 당신은 저자를 두고 극우 논객이라고 치부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독일의 역사가 오토 힌체의 말을 떠올려드리고 싶다. 그에 따르면 모든 국가조직은 원래 전쟁을 위한 조직이다. 전쟁이 오늘과 같은 근대국가를 탄생시켰다. 국가가 다른 정치단체와 구별되는 점은 강제력을 독점한다는 점이다. 근대국가는 물리적 강제력, 즉 군사력을 독점하고 있다.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했거나, 보유하고 있어도 효과적 독점을 하지 못하면 근대국가를 형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와 달리 우리는 문치와 사대주의를 선택한 결과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한 탓에 외세의 침략을 당했다. 양반 관료계급이 독점한 농업 이외의 다른 산업이 전무했으니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부르주아 계급도 형성되지 못했고, 근대국가 경험을 갖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도 구성하지 못했고, 지배계급으로부터 권리와 자유도 보장받지 못했다. 권력 분립의 민주제도도 경험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함께 우리는 비로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게 됐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아직도 이 땅의 가짜 평화주의자들인 좌파 무리의 속삭임 때문에 그런 역사의 상식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면, 당신은 역사 문맹이자 정치적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식으로 살자는 이 책의 제안은 실로 울림이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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