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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꼴통들의 사회, 대한민국은 개조되지 않는다


입력 2014.06.08 10:33 수정 2014.06.08 10:34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정부 탓? 주인은 남탓 안해

잘나가는 공무원들 정권마다 자리 옮겨가며 고속승진

식민지교육은 기본적으로 객관식이다. 주관식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금물이다. 하인이나 노예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고분고분 지배받을 리가 없다. 모조리 스파르타쿠스가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선착순이다. 예전에 신병훈련소에서 애용하던 길들이기 방법이다. 머리 깎이고 똑같은 옷을 입힌 다음 선착순 몇 번만 시키면 인격에서 모조리 짐승격으로 돌아온다. 누천년 인간이 쌓아온 인격이란 것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고민하기 싫어하는 노예근성?

그래도 고분고분하지 않는 인간들이 있다. 지금은 그랬다간 인권유린으로 고발당하겠지만 60년대까지만 해도 흔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 중 장난하는 아이들을 불러내어 둘을 마주보게 해놓고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벌이다. 복도에 팔 들고 꿇어앉혀 망신주기는 애교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당해본 적이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그 모멸감이 어느 정도일지 능히 짐작 갈 것이다.

이런 식민지 교육을 받고 나면 해방이 되어도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 이합집산으로 편 갈라 서로 할퀴고 물어뜯고 뺨때리고 고자질하고 이간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가 주인행세하려 하지만 기실 그 근성은 피차 다 노예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등 이 나라에서 재난이나 위기가 닥치면 단합해서 극복하기는커녕 서로 뺨때리기에 몰두하는 하는 것도, 말로는 모두 주인이고 양반인데 막상 주인 자리에 앉혀놓으면 똥오줌을 못 가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서 짝퉁 보수, 짝퉁 진보, 짝퉁 주인인 게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짝퉁이다.

인성이 아니라 인품의 문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심지어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특별법까지 만든다고 야단이다. 유교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마는 그래보았자 윤리 도덕 과목 버젓이 놔두고 또 옥상옥을 만드는 것이겠다.

게다가 이 나라는 왜 개인의 인성까지 국가더러 책임지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인성이 아닌가? 게다가 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민족이던가? 제 자식만 잘 키우겠다며 온갖 과외에다 조기유학까지 시키면서 가정교육은 내몰라 하고 있지 않은가? 제 자식 공부 잘 하는 건 제 탓이고 인성이 못된 건 학교 탓이고 정부 탓이고 사회 탓인가?

인성교육은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면서 언제 공교육을 믿고 따랐는가? 당장 자신부터 인성교육 시킨다고 직장에서 매주, 매달 민방위훈련 하듯 일정시간 윤리교육 받으라고 강제하면 고마워할까? 그런 걸 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규제라고 해야 하나? 독재라고 해야 하나? 이러다간 개인의 행불행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할 판이다. 신국가주의, 신동물농장! 학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부리까지 잘라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윤리, 도덕 교육을 강화(강요)한다고 인성이 고아질까? 아무렴 교육 안 받은 것보다는 낫겠다. 인성만 착해지고 순화되면 그만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닌가? 상대에 대한 인식, 소통능력 없는 인성이란 무의미하다. 용어의 선택부터 잘못됐다. 인성교육이 아니라 인품교육이다. 매너로 체화(體化)된 인성, 품격이 우러나는 인성, 다시 말해 품격교육이 답이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전한 정신이 나온다고 했다. 바른 매너에서 바른 인성, 바른 인품이 나온다. 전문 수행 용어를 빌어서 설명하자면 내(內)로써 외(外)를 인도(引導)하고 외(外)로써 내(內)를 도인(導引)하는 법이다. 그래야 내외합일(內外合一)의 완전한 인격체에 도달할 수 있다. 외형(外型)의 동반 없인 내단(內鍛)도 없다는 말이다.

주인은 남 탓하지 않는다

사대근성, 식민근성, 하인근성, 노예근성을 그냥 두고는 인성교육은 될지 몰라도 인품교육은 절대 안 된다. 어차피 사대교육, 식민교육, 노예교육일 뿐이다. 그 기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식민 지배를 당한 민족이 그 트라우마를 털어내려면 백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삼대를 지나야 한다는 말인데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 하겠다.

몸에 체득된 건 하루아침에 원상회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으로 몸을 잘 다스리면 오염된 정신, 즉 식민근성을 빨리 극복해낼 수 있다는 이치도 성립된다. 매너와 품격으로 근성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거창한 사상이나 철학이 있어야 주인의식 생기는 것 아니다. 일상에서 주인되기 매너로 주인의식을 되찾는 것이 국민개조의 지름길이다.

바이더피플(by the people)? 주인은 누가 시켜주는 것 아니다. 스스로 되는 것이다. 주민등록증 지녔다고 당장 바이더피플 되는 것 아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봐라!”고 한 케네디의 말은 곧 주인으로서의 국민이 되라는 말이다. 남 탓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고민 좀 하면서 살라는 거다.

낙하산과 공무원(空務員), 그리고 관피아

직원을 채용할 때 1∼2년 단위로 직장을 마구 옮겨 다녀 이력서가 화려한 사람을 믿고 뽑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창시절 매번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은 사람 역시 능력에 상관없이 최고 대우를 해줄 자신 없으면 안 뽑는 게 상책이다. 요즘 대부분의 장관이나 기관장 등 공직자들 이력을 보면 화려하기 짝이 없다. 소위 출세가도를 달려온 이들로 유능하다 못해 전지전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웅산 사건 이전까지 한국 공무원의 보직이동 최소연한이 3년이었으나 그 후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8개월로 사실상 유명무싱, 아니 무명무실 해져버렸다. 5년 단임에 제 식솔들 높은 자리 앉히기 위해, 단체장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렇게 느슨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권에서건 잘 나가는 친구들은 대여섯 번 옮겨가며 고속 승진한다.

당연히 가는 곳마다 일하러 간 것 아니다. 자리를 보고 간 거다. 설사 직무에 관심을 가졌다 한들 기껏 부서 직원들 이름 외울 정도가 되면 더 좋은 자리로 가버린다. 현장경험이니 전문성이니 기술 전수니 하는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여길 수밖에 없겠다.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자기 스펙에 흠이 가지 않도록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하는 척 얼버무리다 간다.

문제가 생겨도 누구도 책임질 생각도 않고, 책임을 지우려 해도 담당자가 부서를 옮겨버린 지 오래다. 이런 행태는 대한민국 국군도 예외는 아니다. 해서 한 방 얻어맞으면 물불을 못 가리고 우왕좌왕 헤맨다. 세월호 참사에서 어느 부서보다 욕도 많이 먹고 어느 부서보다 고생도 많이 한 해경만 엉뚱하게 희생양이 된 게다. 천안함 폭침 때 해군이 해체되지 않은 건 다행이라 해야 하나?

세월호 침몰 참사 32일째인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5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추모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석한 시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세월호 침몰 참사 32일째인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5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추모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석한 시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만년 초보 대한민국

유서 깊은 준 공공기관이나 관변단체에 입사하면 당사자가 마다하지 않는 한 거의 백 퍼센트 정년이 보장된다. 그 중 어느 기관은 예전에는 해외 지사에 발령받으면 4년 기한을 채워야 했다. 그러다 어느 문민정부 때 누구는 선진국 가고 누구는 왜 후진국에 가야 하느냐는 불평이 나오자 기한을 그 절반으로 줄여버렸다. 해서 그 나라 사정을 알만 하면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지역전문가가 길러지지 않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때 드러난 적폐의 주범을 관피아로 지목하고 있지만 기실 관피아도 전문성이 없으면 못해 먹는다. 진짜 원인은 낙하산, 그리고 있으나마나 한 이 공무원 보직이동 최소연한에 있다. 전문성은 고사하고 주인의식조차 있을 리 없다. 책임감 없는 공무원(空務員), 염치없는 관피아가 그래서 만들어지는 거다.

그런 자들이 대외협상에서 한 직무에 20, 30년씩 종사하며 뼈가 굵은 상대국 전문가와 싸워서 뭘 제대로 얻어내고 지켜낼까? 할 줄 아는 거라곤 규제와 위원회 만들기고 남기는 건 부채뿐이다. 양심이나 염치가 있는 자라면 제 전문 분야가 아니면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해도 사양해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랬다간 조롱거리가 된다.

그러다 보니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가 생수통 맞고 도망간 총리, 강권에 못 이겨 라면을 먹다가 쫓겨난 교육부장관 외엔 달리 할 일이 없다. 국민들도 선출직도 아닌 임명직에게 책임총리, 책임장관을 바라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따지고 보면 그들부터 낙하산 인사가 아닌가?

염치나 책임은 주인의 몫이다

당연히 전문성을 지닌 공무원이 있을 리 없다. 대신 책임회피는 달인의 경지다. 하여 무슨 일이든 외부 기관에 용역을 주거나 위원회를 거쳐 결정하는 형식을 취해 누구도 책임을 안 지게 만든다. 실제 자신들이 하는 일은 그저 일상적인 잡무와 인허가권 행사뿐이다. 하여 학피아, 관피아, 산피아들이 주변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위원회와 관변단체를 만들어 기생(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고 비애이자 비극의 단초다.

게다가 국회의원, 지자체단체장, 교육감 등 고위 권력자들은 선출직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저를 뽑아준 시민들과 약속은 헌신짝만도 여기지 않을뿐더러 재선거 비용도 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조금 잘나가는 사람치고 제 영역 지키는 꼴을 보기 힘들다.

교수, 법조인, 군인, 공무원, 의사, 사업가 연예인, 기자 등등 누구든 정치나 벼슬을 하겠다고 분야와 전공을 가리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화려한 이력과 입발림으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한 마디로 염치를 모르는 불나방 떼들이다. 아큐(阿Q)들이다. 몰염치는 곧 무책임. 하인이나 노예가 염치를 차릴 일 없다. 주인은 염치없는 짓 하지 않는다. 염치는 주인이 차리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자존심이나 이기심을 주인의식으로 착각하고 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모두를 생각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는 물론 인류보편적인 양심과 복지까지 염두에 두고 사는 자만이 진정한 주인이겠다. 주인의식 회복, 염치 회복이 곧 정의구현이고 국민개조다. 아무렴 이토록 큰 희생을 치르고도 염치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한국은 사람의 나라가 아닐 것이다.

닫힌 꼴통들의 사회 대한민국

2001년 9.11테러 직후 출범한 미국 국토안보부 첫 장관은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정통 법조인인 마이클 처토프였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05년 여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2541명이 사망·실종된 뒤 국토안전부를 비롯한 연방정부 재난구호 체계의 전면 개편을 진두지휘했다. 위기상황에 둔한 재난구호 조직의 전면 개혁을 위해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재난 대응체계를 만들었다.

미국의 변호사 경력자는 한국식 딱딱한 법조계 인사나 법피아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미국에서 공공 정책부문이나 큰 규모 민간 기업에서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한국식 신언서판(身言書判)에 해당하는 업무역량(competence)을 필히 갖춰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 대학원과정의 로스쿨에서 집중적으로 계발된다.

즉, ‘스스로 체계적, 합리적, 통제가능한 문제해결 솔루션을 건별(individually) 맞춤별(case by case) 창의적으로 개발해내는 법적 마인드(legal mind)’다. 열린 마인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로스쿨 우수 졸업자들이 제일 잘 하는 일이다. 해서 그들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항상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법은 닫힌 법이다. 법의 테두리 밖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법조항에 명시된 것 이외에는 허용도 되지 않을뿐더러 보호도 받지 못한다. 때문에 한국에서 법조항에도 없는 새로운 무엇을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이 창의적이 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에 있다. 그에 반해 영미법은 법의 조항에 없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해서 항상 창의적이다.

헌데 누구보다도 닫힌 사고를 지닐 수밖에 없는 한국의 법조인들이 총리, 장관, 의원 등 우리 사회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변호사란 유불리에 따라 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고, 한국 판검사는 선민의식에 젖어 법의 권위를 자기보호적 권력으로 여기는 특권층이다. 이러니 ‘창조’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겠다.

어디 법뿐이랴. 닫힌 사고, 닫힌 교육 등 기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가 닫혀 있다.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입시위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통탄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사회 곳곳의 적폐를 보면서도 애써 모른 척하는 일, 말로는 개혁과 창조를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변화를 거부하는 심리.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용기가 없음이겠다. 우물 밖에 두려운 게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세계를 향해 문호는 개방했지만 사고체계는 아직도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어쩌면 영영 벗어날 수 없음을 뜻한다. 모두 주인 마인드 부재에서 기인한 구태라 하겠다. 고인 물이 썩듯이 닫힌 사회는 반드시 부패한다.

흠 없는 공직자라고 반드시 유능할까?

아무렴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을 참혹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선진문명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공분케 했다. 일반 승객이 아닌 어린 학생들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개국 혹은 개도국이었다면 참 안됐다고 동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분노의 심정으로 한국을 개탄하고 있다.

당연히 징벌적 마인드가 자동 작동할 것이고 그것이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한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투자를 취소 내지는 보류하거나 진행 중인 사업이라면 규모를 줄여 위험 부담을 분산시킬 것이 틀림없다. 당분간 한국상품 가격인상은 물 건너갔으며 이런저런 비아냥거림과 비협조가 이어질 것이다. 그에 대한 각오와 대비도 있어야겠다.

그나마 좀 쓸 만한 (실은 제 맘에 드는) 인재를 총리나 장관 시키려 해도 청문회에서 꼬꾸라지기 일쑤다. 국가개조의 적임자로 내세운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시작도 하기 전에 내빼버렸다. 평생 남을 취조만 하던 사람이 거꾸로 취조 당할 처지가 되자 도무지 감당을 못하겠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 국민들이 기대치를 좀 낮출 수밖에 없겠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든가?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만이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결벽증도 문제다. 존중은 받을지 모르겠으나 어찌 보면 무능한 자일 수도 있다. 딱하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인 걸 어쩌겠나.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력이나 사상적으로 깨끗했던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그 무엇보다 현장선도 능력이다. 창조경제든 국가개조든 공무원 개조 없이는 공염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 더 이상 공주가 아니다. 홀로서기 할 때가 되었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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