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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가석방' 막는 명분보다 해야할 실익이 크다


입력 2014.12.27 10:47 수정 2014.12.27 10:52        조진래 편집인

<칼럼>경제활력 회복 ‘반전’ 타이밍 놓쳐선 안돼

출소후 일자리 창출 사회공헌에 대한 다짐 받아야

기업인 가석방,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기업인 가석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불을 지피자 마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에 직접 건의할 모양새다. 청와대도 이미 “가석방은 법무부의 고유권한”이라고 공식 언급한 바 있어 새해 혹은 3.1절 즈음에 기업인 가석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내심 ‘특별사면’을 희망해 온 재계로선 아쉽겠지만, 반기업 정서가 그 어느 때 보다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석방 얘기라도 나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이르게 가석방 여부가 결정되는 게 좋고, 또 가능하면 그 시기가 일렀으면 하는 게 재계의 바람인 듯 하다.

법적 요건이 까다로운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일단 대상이 된다(형법 제72조). ‘형집행 및 수용자처우법’에 따르면 가석방이 되려면 일단 당연직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과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가석방심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위원회는 나이와 건강 상태, 범죄 동기, 교정 성적,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법무부 장관에게 가석방을 신청하게 된다. 무엇보다 '개전의 정'이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것이다. 물론 과거 박연차 씨처럼 형기의 80%를 마쳤음에도 가석방이 불허된 경우도 있었다. 어느 정도 ‘정치적 셈’이 고려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법적으로 가석방 요건을 갖춘 오너 기업인은 4명 안팎이다. 대표적인 기업인이 징역 4년 형에 형기의 절반을 보낸 최태원 SK 회장이다. 최 회장은 정치적 고려가 있다면 사면까지도 가능하다. 최재원 SK그룹 부회장도 3년6개월 중 20개월 이상 수감 중이라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구본상 LIG 넥스원 부회장도 4년형을 언도받아 현재 2년을 넘겨 복역 중이라 기준을 충족한다. 구본엽 LIG 건설 부사장은 내년 초면 기본요건을 갖추게 된다. 반면에 병 보석과 형집행 정지 등으로 요건을 채우지 못한 오너 대기업 가운데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이 있다.

이재현 회장은 수술 등으로 인해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된 바람에 ‘3분의 1 이상’ 수감 요건을 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병 보석과 형집행정지로 가석방 요건에 못미친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가석방이나 사면 대상 기업인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언급한 '기업인 가석방'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모지역 교도소 내부 모습.ⓒ연합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언급한 '기업인 가석방'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모지역 교도소 내부 모습.ⓒ연합뉴스

오너 기업인 공백기에 우리 경제 더 나빠졌다

오너 기업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SK그룹이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 공백기에 예외 없이 그룹 주력사들은 깊은 침체를 경험했다. 신규 투자는 사실상 중단됐고 해외 네트워크도 훼손됐다. 최근에는 에너지와 화학, 통신시장의 업황 부진까지 더해져 심대한 경영상 타격을 입었다. 결국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퇴직 사태가 줄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그나마 그룹을 지탱해 준 게 SK하이닉스다. 과거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그룹의 대도약을 이끌었듯이, 최 회장이 용단을 내려 인수했던 SK하이닉스가 이번에 그룹을 최악의 수렁에서 건진 셈이다. 이런 대규모 사업인수 결정은 총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정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만일 하이닉스 인수가 없었다면 올해 SK그룹은 어떠했을까. 그룹은 물론 한국경제 전반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웠을 것이다. 주력산업들이 속속 일본에 치이고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지금, 열심히 뛰어야 할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안될 일이다. 자숙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기업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법적 굴레를 걷어내는 것은 기업규제 개혁 만큼이나 의미있는 일이다.

올해보다 내년을 더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한국은행은 3.9%까지 보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잘해야 3.3~3.5% 수준을 보고 있다. 지속적인 엔저로 수출의 경제 기여도가 하락하고 국내 투자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내수 시장 역시 암담하다. 정부는 기업의 내부유보금 가운데 투자와 배당 임금인상에 쓰지 않는 돈에는 과세를 하겠다고 한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최근 펴낸 ‘2015년 한국경제 대예측’ 보고서를 보면 안팎으로 힘든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노무라보고서는 한국의 제조업이 지난 2010년 무렵 시행한 생산설비 증강으로 이미 과잉투자를 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 2011년 이후 생산력의 대폭적인 억제로 이어지는 바람에 국내 수요는 늘지 않는 상태에서 설비 과잉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기존의 설비가동률에 적합한 수준까지 국내 수요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가동률을 낮춰 재고 수량을 조절해야 하는 시점에 이미 와 있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기업들이 어렵게 번 돈으로 새로운 곳에 투자하려 해도 사용처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투자를 독려해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점, 여기에 기업들의 딜레마가 있다.

이런 때 중요한 것은 일사분란한 경영이다. 투자나 배당 결정 등에 책임을 질 오너들과 그들에게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해 결정을 돕고, 강력히 프로젝트를 밀어부칠 전문경영인들 간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재벌기업이 밉고 보기 싫다고 해도, 오너의 결정이 가장 무겁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별사면도 끝까지 신중한 검토를

역대 정권에서 사면은 여러 차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7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외환위기의 핵심이었던 정태수 한보 회장까지 특혜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후원회장으로 최측근이었던 강금실 창신섬유 회장도 사면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임기 말에 그 말 많던 최시중 씨를 대놓고 사면해 큰 논란을 빚은 적도 있다. 역대 정권에선 지금보다 더 자격이 안되는 사람들이 대거 특별사면을 받았던 것이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지금 얘기되는 기업인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된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굳은 공약 실천에 국민들의 여전한 반기업 정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때 마침 터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은 재벌기업들에 대해 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게 했다.

공약은 지켜야 하지만 공약에 묶여 현실적인 해법을 외면해서도 안될 것이다.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최소한의 수정은 유연하게 감행할 수 있는 정책 집행 마인드가 필요하다. 국민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옳다.

기업인들도 자숙해야 한다. 대사면이 있었던 지난 2007년, 경제계는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기업의 사기진작과 경제활력 회복에 (사면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인들도 심기일전해 국가경제 발전에 다시 헌신하겠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겠다.”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에 지금같은 상황을 맞은 것 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면을 원하는 기업인들에게는 재발방지와 함께 약속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는 다짐이 더욱 필요하다. 대규모 투자도 좋지만 일단 서민들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의 창업을 돕는 등의 실질적인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제활성화 방안들을 대기업들이 더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조진래 기자 (jjr201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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