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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내겠다”는 안철수, 새정련 안바뀌는 데 먹힐까


입력 2015.01.14 10:08 수정 2015.01.14 10:13        조진래 편집인

<칼럼>‘야당 내 야당’ 역할 자임 불구 세없어 '정치 갈라파고스' 불 보듯

변하지 않는 민주당과 언제까지? ... 차라리 개혁 파트너들과 새출발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다. 엊그제 한겨레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7.30 보선 이후 5개월은 자숙기간이었다. 이제 당 대표도 새로 뽑혔으니 현안에 대해 제대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 사퇴로 잠시 소원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도 12일 좌담회를 여는 등 정치활동 재개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트위터 등을 통해 공직자 부정청탁과 금품수수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내용을 담은 ‘김영란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에 앞서선 새정련 내 당명 교체 논란에 대해 “내용없이 이름만 바꾸는 것이야 말로 구태(舊態)”라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어쨌든 야당의 공동대표까지 역임했다가 대선 실패에 ‘독박’ 쓰다시피 책임지고 사퇴한 후 오랫동안 칩거하던 안철수라는 정치인이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니 관심이 간다. 그가 ‘야당 내 야당’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할 지 궁금해 진다. 실체가 모호했던 '새정치'에 대한 보다 명확한 해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지도 눈여겨 지켜볼 부분이다.

하지만 안 의원의 넘치는 의욕이 무색하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또 다시 당의 전략과 흐름에 휩쓸려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앞선다.

지난 대선 때 '안 의원 없이도 대통령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좌절을 맛봐야 했던 문재인 의원은 13일 안철수 의원이 의욕적으로 마련한 안철수-장하성 신년 좌담회에 갑자기 나타나선 또다시 "우리가 남이가"식의 구애를 시작했다. 예의 총선 승리, 정권 교체를 운운하며 억지로라도 자신을 도와 함께 갈 것을 요청했다.

안 의원이 새로운 행보를 시작하려는 순간, 당이 다시 그의 운신을 폭을 좁히고 발목을 잡는 모양새인 것 같아 보기에 민망했다. '급할 때만 찾는 안철수'. 이런 바뀌지 않는 울타리 안에서 아무리 안 의원이 제 목소리를 낸 들 제대로 먹힐 리 없다.

안 의원 스스로도 아직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한 예로, 안 의원은 새정련 예비경선 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라는 가전행사장에 가 있었다. 오래 전 선약이었기에 부득이 당의 주요 행사에 참석치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의 큰 줄기가 바뀔 수 있는 중요 행사에 전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불참한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자신을 열외로 만들고 전 대표로도 인정해 주지 않는 당의 횡포에 화가 나 일탈행동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물론 그는 “그렇지 않다”고 귀국 후 뒤늦게 해명했다. 정치인으로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 지, 무엇을 먼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를 그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라스베거스 행사장에서의 그의 행보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안 의원은 현지 행사장에서 한국 취재기자들과 몇차례 마주쳤다. 하지만 그 때마다 성급히 자리를 떠 버렸다. 기자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조우한 그를 붙잡고 그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으나 외면했다. 그곳만큼 완벽하게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밝힐 수 있는 자리가 어디 있었을까?

그가 정말 새로운 다짐을 했다면 그곳에서 부터 새로운 다짐의 자기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국내에 들어와선 “CES에서 우리 기업인들을 만나 보니 2월의 새정련 전당대회 날짜도 대부분 모르더라”며 생뚱맞은 얘기로 엇박자를 낼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피하고 디테일한 전략 부재에 허덕이던 안철수 그대로다.

그렇게 많은 책을 내고 많은 설명을 했건만 안철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것이 비단 기자 뿐일까. 세인들이 생각하는 ‘안철수의 생각’을 대략 이런 것이다. ‘본인을 통해 야권이 정말 획기적으로 개편되고 이런 기운이 여당으로 까지 확산되어 잘못된 보수를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대한민국 정치권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그러나 그의 곁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정치적 프랜드와 파트너가 없었다. 그의 생각을 정치적으로 풀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늘 그만의 생각이었다. 안철수 의원에게는 진심의 정치 조력자가 없었다. 훈수꾼 아니면 흔드는 사람들 뿐이었다. 안철수라는 이름만 필요했을 뿐, 안철수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이용만 당한 것이다.

안철수 의원이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은 이런 구도를 과감히 깨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선 그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또 그의 주변은 어떤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당내에선 계파 다툼이 여전하고 안 의원이 다시 파고 들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가 저돌적인 공격성으로 재무장해 나온 것도 아니다. 당 밖에 탄탄한 조직이 새롭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한 열린 신년 특집좌담회 '안철수가 묻고 장하성이 답하다'에서 장하성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1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한 열린 신년 특집좌담회 '안철수가 묻고 장하성이 답하다'에서 장하성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의 측근들이 쓴 ‘안철수는 왜?’라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안 의원은 국민들로 부터 호명을 받아 나온 정치인이다. 막연하긴 하지만 ‘그가 하면 좀 다르겠지...’하는 순진한 국민들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 하지만 그는 늘 양보와 미덕의 정치 수준에 머물렀다.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처음 박원순 현 시장과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합했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지지자들이 그가 정치라는 구정물에 발을 담그는 데 선듯 동의해 주지 않았다. 물론 박원순의 출마 의지가 더 강렬했다. 그가 처음 한 발 물러선 이유다. 두 번째 문재인과의 대선 후보 경쟁에서는 ‘집단 흔들기’에 주저앉았다. 두 번 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안철수는 박원순, 문재인과의 치킨 게임에서 진 것이다. 그들은 치킨 게임의 달인들이었다. 죽자 살자 덤비는 적들의 살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자기 하나 빠지면 될 일이라며 스스로를 물러섰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하지만 ‘나 아니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도 매우 정치인답지 못한 처사다.

그는 지금도 “내가 뭐가 되기 보다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직(職) 보다는 업(業)의 개념이 자신에게 더 소중하다고 얘기한다. 한가로운 넋두리다. 기(氣) 싸움, 세(勢)싸움에서 열세를 확인한 정치인들이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과 다르지 않다.

안 의원 측근들 조차 그가 ‘명사(名士)정치’를 한다고 아쉬워했다. 뜻이 맞는 몇 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원순이 민주당을 등에 업고 성공했듯이. 나머지는 당이나 조직의 힘으로 커버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판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정치인으로선 필수인 조직과 세에 관해 심각하지 않는 게 치명적인 그의 한계다.

이제 그는 ‘안철수의 자리’,‘안철수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공식적인 정치 입문을 윤여준 씨와 함께 했을 때 부터 안 의원은 계속 정체성에 관한 의심을 받아 왔다. 독자 창당 실패와 전격적인 민주당과의 합당 등을 거치면서 그가 보여주려던 새정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먹고 사는 문제가 새정치’라고 했다. 국민들이 먹고 살 문제, 성장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것이 새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더불어 “새정치의 핵심은 정치인 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정부가 구호정치, 간판정치를 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통일대박, 규제개혁 등 말 뿐인 구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실천계획은 없다고 몰아 부쳤다. 말만 그럴싸하지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안철수 자신도 그랬다. 새정치라는 훌륭한 조어를 만들긴 했지만 국민을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안 의원의 대선 출사표였던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 대한 반론으로 박기봉 비봉출판사 대표가 출간했던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 기억난다. 박 대표는 “(이 책에는)대통령의 소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국방과 외교 국가의 장래 비전 얘기는 극히 부실하게 언급되었다. 교육 개혁과 전교조 문제, 학교 폭력 같은 현안은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아직도 이런 국민들의 문제에 안 의원의 명쾌한 답이 없다.

‘안철수는 왜?’라는 책을 보면 지난해 7.30 보선 패배 후 그는 지인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홀가분하게, 더 치열하게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 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안철수를 따르고 흠모하는 이들은 아직도 안철수 대통령, 아니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기득권 타파’라는 대의가 안 의원에게 소명(召命)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 일으켰던 정치권의 구태와 그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그의 재기(再起)의 동인(動因)으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아직도 안철수에게는 20%의 지지자들이 남아 있다고, 건재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실로 믿고 싶다면 이제 자신의 본 모습과 달라진 새 모습, 그리고 정치적 비전을 다시 명확히 제시해 줘야 한다. 피를 보더라도 냉혹한 리더로서 새정련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면, 그럴 환경이 아니라면 계속 그 안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는 예비경선에 나서지도 않았고 여전히 세가 없다.

불행히도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새정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 새정연이 어떤 상태인가. 지난 대선 패배 후 자체 설문조사 결과 ‘계파 정치 때문에 대선에서 졌다’는 응답이 76%에 달했다. ‘단일화만 되면 무조건 이긴다고 당 지도부가 오판했다’는 의견에는 87%가 동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장 무엇이 달라졌는가. 혁신과 개혁은 여전히 계파간 이해관계에 묻혀 질식 상태다. 범 야권의 신당 창당을 모색 중인 '국민모임' 김세균 공동대표(서울대 명예교수)마저도 최근 "기업인 출신의 합리적 중도를 표방한 안 전 대표가 오히려 새누리당에 들어갔으면 보수정당을 혁신시키는데 더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 진영에서 조차도 '안철수의 정체성'은 모호함 그 자체이다.

솔직히 안철수 의원은 김원길에게, 구 민주당에 속았다. “호랑이 굴인 당 안으로 들어가 정치를 개혁하자”는 말에 넘어갔다. 들어가 보니 흔들기와 무시 뿐이었다. 이제 더 속을 일도 없다. 그런데도 미련을 갖고 구 민주당과 같이 가려는 것인가. 목소리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안철수 답지 않은 과단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자신의 개혁 방향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아예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과거 세 없이 실패했던 독자 신당 창당의 아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파트너들과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게 가장 안철수다운 행보일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대한민국 정치를 개혁하는 데 밀알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 그것이 새정련 안에서 가능할 지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 새 행보를 시작하려는 안철수를 보면, 변하지 않는 새정련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조진래 기자 (jjr201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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