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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손가락질...그래서 발해가 중국인에 넘어가"


입력 2015.02.22 11:17 수정 2015.02.22 11:22        이슬기 기자

<인터뷰>관광안내사 윤모씨 "같은 민족으로 감싸줬더라면..."

범죄만 일어나면 ‘역시 조선족’…“남은 역사 의식마저 앗아가”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조선족' 중국동포가 7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 대림역 인근 '조선족 타운'의 상가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과 한국어 간판이 뒤섞여 있다.ⓒ연합뉴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조선족' 중국동포가 7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 대림역 인근 '조선족 타운'의 상가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과 한국어 간판이 뒤섞여 있다.ⓒ연합뉴스

“자기 뿌리 찾겠다고 한국 온 사람들입니다. 뿌리는커녕 같은 사람으로도 취급을 안하는데 아예 마음이 떠나버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두 아이의 엄마이자 2년차 관광통역안내사인 윤홍매 씨(여·41)의 긴 한숨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한국사회가 이른바 ‘조선족’이라 이름 붙인 그는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남의 말을 인용할 때를 제외하곤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최근 오원춘 사건,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을 비롯해 각종 불법장기매매 관련 흉악범죄가 잇달아 터지면서 조선족 전체에 대한 혐오감과 집단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성실하고 묵묵히 '한국인'으로서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 역시 묻혀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윤 씨는 이민 3세대 한국인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의 할머니가 쫓기듯 고향을 떠나 허허벌판 만주로 피난을 오셨지만,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자리를 잡게 됐다. 그의 외가는 경북 진주, 친가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평범한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중국에서 공부를 하던 윤 씨가 모든 생활을 접고 뿌리를 찾아온 건 지난 1997년이다. 직장생활 도중 한국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02년 결혼했고, 현재 12살 된 딸과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아들을 뒀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경영하던 호프집 사업을 접고, 1년 전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연결해준 학원에 등록해 정식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얻기 전에도 타고난 적응력으로 틈틈이 늘려둔 인맥을 통해 관광 업계 통역 업무로 경력을 쌓아온 만큼,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 받아 여행사 측은 물론, 손님들에게도 러브콜을 받는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다. 수년 전 큰 병을 얻었다가 어렵사리 회복된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윤 씨가 혼자 일을 해도 네 가족의 생활이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윤 씨같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한국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편견이다. 기혼 여성의 경우, ‘돈만 벌고 중국으로 도망가려한다’는 인식이 깊어 믿을만한 지인을 통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근무시간이 길고 보수는 적은 식당에 취업한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이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월급을 제때 못받거나 ‘조선족 때문에 한국 사람이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엉뚱한 비방을 듣기 일쑤다. 윤 씨의 한 지인은 근무 도중 손가락이 부러졌지만,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했다. 결국 해당 지인은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도 한국에 대한 상처와 증오만 안은 채 중국으로 돌아갔다.

돈을 받기는 해도 무례한 대우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관광안내통역사들의 경우, 함께 일하는 한국인 관광버스 기사 상당수가 나이에 관계 없이 반말로 일관한다는 게 윤 씨의 설명이다. 그는 “기사들이 ‘가이드는 다 조선족’이라는 인식 때문에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말을 찍찍하면서 무시하거나 욕을 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윤 씨 역시 얼마 전 함께 일하는 기사가 대뜸 반말을 던졌고, 이에 “나를 언제 봤다고 예의없이 반말을 하느냐”고 반박한 뒤, 버스회사 측에 “기사들이 가이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좀 시켜라. 왜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의 소개로 가이드 일을 하는 지인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며 윤 씨에게 전화로 호소하는 일이 다반사다.

범죄만 일어나면 ‘역시 조선족’…“남은 역사 의식마저 앗아가”

특히 최근들어 중국 동포와 연관된 흉악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이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악감정도 극대화 됐다. 언론 역시 ‘또 조선족’이라는 식의 기사들을 쏟아내다보니, 중국 동포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씨는 “살인하고 성폭행하고 나쁜짓 하는 사람들은 중국처럼 사형을 시키든 아주 무섭게 해서 다시는 못하게 해야한다. 하지만 나쁜짓을 하는 건 한국사람도 있고 중국동포도 있다”며 “한국사람도 나쁜 짓 하는데, 사건만 벌어지면 ‘역시 조선족’, ‘조선족이 와서 한국 물 더럽힌다’는 식으로 말하고 이사람들 전체를 사람취급을 안한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보려는 사람들도 오히려 더 반감이 생기고 오기가 나고 마음이 떠나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사도 그렇다. 계속 ‘조선족 나쁘다. 조선족 나쁘다’ 이러면서 다 나쁜 것만 (기사가) 나가니까”라며 “한국사회가 아예 사람 하나 죽이고 매장시키는 거다. 나쁜 면만 계속 이야기하면 좋은 것도 다 나쁘게 보이는 법이고 아예 매장되는 거다. 내가 한국사회에서 그런 걸 정말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뿐이 아니다. 중국 동포들에 대한 배타심은 우리민족의 ‘영토 분실’로도 이어졌다는 게 윤 씨의 주장이다. 실제로 남북국 시대 연해주와 요동까지 장악했던 발해의 경우, 그 유적지가 남아있는 연변 지역 대부분이 현재 중국인들에게 팔린 상태다.

윤 씨에 따르면, 원래 상당 부분이 중국 동포 소유였지만, 거액에 땅을 사겠다는 중국인들에 비해 한국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전무했다. 게다가 ‘우리 민족의 땅’이라는 자긍심은커녕 ‘조선족’, ‘교포’라는 말로 무시하고 배척하기에 바쁜 한국은 그들에게 발해땅을 지켜낼만한 어떠한 보람도, 의미도 주지 못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자기 뿌리가 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한국인들은 어떻게 했느냐”며 “한국이 조선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보다 ‘우리 민족이다’라고 안아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줬다면, 연변땅이 이렇게까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미국이나 잘 사는 나라에 대해서는 ‘재미동포’라고 부르지 않느냐. 동포가 같은 민족이라는 거니까”라며 “근데 우리한테는 조선족이라고 하지, 동포라고 안 쓴다. 한국사람들이 조선족, 교포 이런 말을 안 써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동포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는 특히 “중국애들이 역사 배울 때 ‘고려사람들’이라면서 우릴 막 욕하면, 우리도 막 싸웠다. 그러니까 자기 뿌리 찾겠다고 왔다가 차별 받고서 솔직히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돈만 벌고 빨리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우린 역사 배우면서 중국애들하고 싸운 적도 많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뭔가 (한국에 대한) 감정이 생겨서 가슴이 이상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뷰 말미에 윤 씨는 노후에 대한 소박한 계획도 소개했다.

몇해 전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이모부가 한국에서 고생하는 윤 씨 부부를 찾아와 ‘중국으로 무조건 오기만 해라. 돈 맘껏 벌수 있게 다 지원해주겠다’고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당시 사정상 가지 못했고, 요즘 윤 씨의 남편은 "그때만 생각하면 후회돼 죽겠다. 중국에 사업하러 가자”며 부쩍 앓는 소리를 한다. 그래서 물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느냐’고.

윤 씨는 고개를 저으며 “여기서 살면서 애들은 중간중간 중국어 공부 시키려고 중국에 들어갔다 나오게도 할 거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있으려고 한다”며 “애들 다 크고 노후에는 남편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살고 싶다. 우리 애들은 나처럼 안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 뿌리가 한국이니까 그리운 마음으로 한국에 찾아오지만 정작 한국은 ‘조선족’, ‘교포’라며 무시한다”며 “그러니 다들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나라’라며 뭣하러 가느냐고 한다. ‘아 내 뿌리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따뜻하게 좀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질문을 던지다 무심코 ‘조선족’이라는 말을 꺼낸 기자는 황급히 입술을 닫았다. 민망해진 입술을 가리려 괜히 쓴 커피를 한모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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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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