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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탈북아동 돌보는 '탈북 그룹홈' 규제·제도 미흡


입력 2015.05.30 09:49 수정 2015.06.01 18:13        목용재 기자

<탈북했다고 끝나지 않는 악몽, 탈북아동의 현주소②>

13곳 중 8곳이 '기준미달' 비보호아동이 더 많아 고민

탈북청소년의 남한 내 존재는 이들의 출생 혹은 입국 시의 상황, 또는 남한 정착 후 가정의 해체여부 등으로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 19세 이하의 탈북청소년은 4461명이다. 법적으로 24세까지가 탈북청소년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이들은 무연고·실질적 무연고 탈북청소년, 제3국에서 태어난 비보호탈북청소년 등으로 나뉘어 각각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에 '데일리안'은 이들의 남한정착 실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을 재조명해 '통일의 미래'인 탈북청소년들의 바람직한 남한 정착 방향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2000년 중반, 북한을 탈출한 A군. 부모님과 함께 탈북, 중국을 거쳐 오는 길에 부모님과 생이별을 겪었지만 탈북하는 무리에 섞여 무사히 남한에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니 그를 돌볼 부모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고아', 무연고 탈북아동이 된 것이다. 남한에서 사람답게 살기위해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온 A군은 남한에서 외톨이가 돼버렸다.

MBC가 단독입수한 라오스에서 추방돼 재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의 성탄이브 당시 모습. MBC는 9명의 탈북자 중 마지막 멤버가 보름여 만에 중국 내 공동체 생활숙소에서 만나 해맑은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MBC가 단독입수한 라오스에서 추방돼 재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의 성탄이브 당시 모습. MBC는 9명의 탈북자 중 마지막 멤버가 보름여 만에 중국 내 공동체 생활숙소에서 만나 해맑은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처럼 탈북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헤어지거나, 부모가 사망한 탈북청소년(24세 이하)들은 보살펴줄 보호자가 없어 새로운 환경 적응, 학교생활, 진로선택과 경제적 문제를 홀로 해결해야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이 같은 무연고 탈북청소년은 2015년 기준 124명이다.

여기에 일부 탈북 부모의 경제력, 학대, 방치, 이혼 등으로 인한 가정 불화, 남한 정착 후 부모가 사망하는 등의 사연으로 실질적인 무연고 탈북청소년이 되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고아’로 판단할 수 있는 무연고 탈북 청소년의 숫자는 1000여명을 훌쩍 넘긴다는 추정치도 있다.

이런 탈북아동의 양육과 보살핌을 위해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시설이 대안학교 기숙사, 종교시설, 탈북청소년 공동생활가정(그룹홈) 등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그룹홈은 일반 가정의 환경처럼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의 정착지가 돼가고 있다.

그룹홈은 과거 20~30여명의 많은 고아들을 수용했던 ‘고아원’의 규모를 축소시켜 좀 더 가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한 아동복지시설이다. 부모가 없거나 실질적인 외톨이인 탈북청소년을 돌봐야 하는 만큼 그룹홈에 대한 인가 기준은 엄격할 수밖에 없다.

무연고 탈북아동 돌보는 '그룹홈' 13곳 중 8곳이 '기준미달'

하지만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 등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탈북 그룹홈 13개 가운데 정식 인가를 받은 곳은 단 5곳 뿐이다. 또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그룹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 감독도 미흡한 상태다.

민간영역에서 그룹홈을 운영하다 보니 기준을 충족하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도 있고, 이 시설들이 무연고 탈북청소년들을 맡아 보살피는 수용능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인가기준에 '준한' 자격을 갖추면 지원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데일리안'에 “현재 그룹홈에 대한 지원은 민간영역에서 무연고 탈북 아동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있는 상태에서 이를 더 잘하라고 지원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장기적 방침상 그룹홈들을 모두 인가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방향은 맞지만 충족요건 등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권의 한 탈북청소년 그룹홈 운영자는 본보에 “시설규정에 맞지 않는 그룹홈들이 상당수지만 탈북아동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웬만하면 넘어가자는 식”이라면서 “무연고 탈북아동을 보살피는 시설에는 정부 지원금이나 외부의 후원금이 들어오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 운영자는 “그룹홈을 비롯한 대안학교 기숙사 등 몇몇 인가가 나지 않은 시설에서 탈북아동을 보살피게 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면서 “우리사회에서 이들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은 것도 있고 무연고 탈북아동 숫자도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운영규정에 따르면 그룹홈은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에 설치돼야 하며 전용면적 82.5㎡ 이상의 주택형 숙사여야 한다. 화장실 및 목욕실은 2곳 이상 확보해 아동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남녀혼합형의 경우 남녀 각각의 침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해당 시설장은 사회복지사 2급 이상의 자격을 취득 후 아동과 관련된 사회복지 업무에 3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시설의 보육사들도 사회복지사 3급 이상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해야 한다. 이 같은 인가기준을 충족하는 탈북아동 그룹홈은 13개 가운데 5개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 지원 들어가는 탈북아동 그룹홈에 관리감독 소홀

또한 정부는 규정 기준에 못 미치는 시설에 지원을 하면서도 세밀한 관리·감독도 하지 않고 있다. 그룹홈과 관련된 정부의 규정, 지침 등에는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그룹홈의 현장 관리·감독 사안이 명시돼 있지 않다.

통상 각 그룹홈으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운영결과보고서를 받아 지난해 평가서와 비교해 관리감독하고 있지만 ‘문서’로만 이뤄지는 단편적인 관리 감독이기 때문에 미흡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시설들은 ‘인가’에 버금가는 수준을 갖추고 있는 시설들이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신고가 들어오면 지원해주고 있다”면서 “그룹홈에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의 중복지원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 관리 감독, 횟수 등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시설들에서 연락이 오고 우리가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한다”면서 “또한 남북하나재단의 경우 지역별로 전문상담사가 있고 하나센터가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시설들에 관심을 갖게 한다”고 설명했다.

무연고 탈북아동 보호단체·후견인 정하는 협의회도 진행되지 않아

아울러 무연고 탈북아동들의 하나원 퇴소이후 삶을 보살펴줄 보호단체·후견인 선정을 위한 무연고 청소년지원협의회(협의회)도 개최된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탈북 무연고청소년정착지원업무지침에 따르면 탈북 무연고청소년이 하나원 수료시 협의회를 개최해 무연고청소년에 대한 진단, 진로상담 관련 자료를 토대로 개인별 정착 및 지원, 사후관리 방법에 대해 협의한다. 규정상 이 협의회는 ‘필요할 때 열린다’라는 애매한 조항으로 규정돼 있어 실제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무연고 아이들이 매번 나올 때마다 열리는 것은 아니고 무연고 청소년이 한 달에 한두명 정도로 적다. 그동안의 상담내역,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지켜봤던 기록을 토대로 협의회 없이 결정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문서로 시스템화가 돼있어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협의회는 열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나원 관계자도 “협의회는 필요한 경우에 개최하는데 그동안 협의회를 개최할 정도로 커다란 문제사항은 없었다”면서 “아이들의 보호단체 선정은 아이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담당 교사들의 일대일 진로지도, 상담을 병행해 보호단체나 후견인을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협의회가 열리지 않고 아동들의 보호시설을 선정한다고 해서 기준없이 보내는 것은 아니다. 3개월동안의 상담내용과 그 기간동안 아이들을 지켜본 성향에 맞춰 적절한 곳으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남북하나재단이 협의회를 주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협의회를 주관하는 하나원은 단 3개월 동안 무연고 탈북아이들을 돌보는데 재단은 하나원 수료이후 성년까지 사후관리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룹홈에 ‘비보호아동’까지…정부, 지원여부 고민?

또한 무연고 탈북아동들을 보살피는 그룹홈에 무연고 탈북아동보다 실질적 무연고 탈북아동이나 비보호 아동이 더 많아 정부에서도 지원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실제 무연고 탈북청소년 그룹홈 13개에 입소해있는 무연고 청소년은 총 76명으로, 이 가운데 실질적인 무연고 청소년 숫자는 54명, 무연고 청소년의 숫자는 22명이다. 이 중에는 ‘비보호청소년’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데, 제3국에서 태어난 비보호청소년은 정부의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탈북비보호청소년에 정부지원이 이뤄지면 다른 다문화 청소년에 대해서도 균등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형평성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그룹홈 안에 비보호 탈북아동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비보호아동들을 보호하고 있는 그룹홈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면 대부분의 시설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 논쟁이 많다”고 말했다.

직계가족이 있는데도 실질적 무연고 탈북청소년으로 분류되는 아이들에 대한 대책도 요구된다. 부모와 함께 남한에 정착했지만 낯선 환경에서 가정불화가 발생하거나 부모의 급작스러운 사망, 혹은 양육포기 등으로 방치되는 탈북아동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실질적 무연고 탈북아동이 발생하는 사례는 너무나 다양하다. 연고니까 무연고 아이들과 똑같이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남한에 정착했는데 부모가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있다면 그 아이에게 ‘병원에서 살아라’라고 할 수 있겠나. 이런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재단의 몫”이라고 말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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