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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주유소가 뭐하는 곳이에요?" "차...총...있어요"


입력 2016.05.07 07:09 수정 2016.05.07 07:10        하윤아 기자

<다문화가정 사각지대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만나다②>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중도입국청소년 한국어교육 등 맞춤형 지원

한국어 강사 "아이들이 한국인 친구들과 만날 수 없어 안타까워"

정부가 지난 2006년 4월 다문화가족 사회통합지원대책을 마련한 이후 10년이 지난 올해 3월, 황교안 국무총리가 다문화 정책 10년 성과를 계승하면서 성장주기별 자녀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등 다문화사회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정부가 다문화사회 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다문화가정의 '사각지대'인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정책과 관심은 여전히 미미하다. 일선 실무자들조차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개념조차 정리돼있지 않아 업무의 혼선을 빚기도 한다. 데일리안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잠정적 한국인' 중도입국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 높이자는 취지로 중고입국청소년들이 한국 정착 생활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서울 영등포구 서남권글로벌센터에 위치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에서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서울 영등포구 서남권글로벌센터에 위치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에서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서울온드림교육센터

22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이하 온드림센터)에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받기 위해 이날 센터를 찾은 이들 청소년들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다소 어눌한 말투지만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해맑은 미소로 다가오는 아이들에 온드림센터 내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이 번졌다.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 청소년들은 재혼·취업 등으로 한국에 들어온 부모를 따라 입국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은 대부분 모국에서 사회화가 이뤄져 한국사회와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특히 미숙한 한국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은 중도입국청소년들의 한국생활 적응에 최대 난관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온드림센터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의 한국사회 적응에 도움을 주고자 수준별 한국어 교육은 물론 △한국사회이해 프로그램 △문화체험 프로그램 △특화 프로그램 등 총 3가지의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사회이해 프로그램은 초기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국의 법질서나 예절 등을 가르쳐주는 한국사회 이해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고, 문화체험 프로그램은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문화예술공연 단체관람이나 기업·기관 견학 등 현장학습으로 채우고 있다. 특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한국어 실력이 비교적 우수한 청소년들의 대학진학이나 취업 지도, 국적 취득을 원하는 청소년들의 귀화시험 및 면접 대비교육 등 심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온드림센터는 전문 상담가와 협력해 평소 가족관계나 학교생활, 한국사회에서의 부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편입학 절차도 진행해 이들이 공교육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서남권글로벌센터에 위치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에서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서울 영등포구 서남권글로벌센터에 위치한 서울온드림교육센터에서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어 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이날 온드림센터 내 10평 남짓한 교실에서는 한국어 실력 초중급에 해당하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의 한국어 교육 수업이 진행됐다. 남학생 3명과 여학생 8명 등 11명의 학생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 속 필기도구를 책상 위에 꺼내놓고 수업 시작을 기다렸다. 온드림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는 중도입국청소년들은 현재 약 100여명으로, 10명가량이 수준별로 나눠진 10개 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날 수업을 맡은 한국어 강사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은 밝은 표정으로 앞 다퉈 인사를 건넸다. 강사 역시 웃는 얼굴로 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학생들의 기분과 안부를 묻는 등 편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강사는 학생들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센터 내 비치된 한국어 교재를 각 학생들에게 나눠줬고, 이내 본격적인 한국어 수업이 시작됐다.

이날 수업의 주제는 '교통 이용에 대한 정보 구하기'. 학생들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서 접할 수 있는 정보와 이를 활용하는 방법 등을 배우며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강사는 수업 도중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은 한국어로 씩씩하게 답했다. 그러다 장난끼 많은 학생들의 엉뚱한 답변이 나오면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한국어 강사: 여러분, 주유소가 뭐하는 곳일까요?
남학생: 그거 차... 차... 총 있어요. 차 달리게 해요.
한국어 강사: (웃음) 다같이 따라해 볼까요. 차에 기름을 넣다.
학생들: 차에 기름을 넣다.


학생들은 책 속 한국어 단어의 뜻을 유추해내거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반복해 따라하는 등 수업에 열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를 최대한 활용해 생각을 표현하는가 하면 앞선 수업 때 배운 유사어를 정확히 기억해내 강사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어 강사가 '앞으로 쭉 가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바꿔쓸 수 있는 지 묻자,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하고 있던 한 중국인 여학생이 불쑥 고개를 들고 "직진!"이라고 대답하는 열의를 보였다. 강사는 '저기 죄송한데요'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자 뒷줄 구석에서 조용히 수업을 듣던 한 중국인 남학생이 "'실례합니다'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 주변 학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강사는 '저기 죄송한데요'라는 표현을 언제 쓸 수 있는지 추가로 질문했다. 그러자 앞줄에 앉아 줄곧 장난스러운 답변을 늘어놓던 중국인 남학생이 어눌한 말투지만 사뭇 진지하게 "지하철에 사람이 많을 때, 내릴 때 써요"라고 답했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의 한국어 수업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학생들은 이날 수업에서 배운 표현들을 옆 짝꿍과 대화하며 익혔고, 다른 표현들을 사용해 문장을 만들어보는 응용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 중간중간 모국어로 속닥거리기도 하고, 짝꿍과 대화해보는 시간에는 여느 청소년들처럼 간지럼을 태우면서 장난을 치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시간여의 수업이 종료되고 학생들은 어김없이 배운 문장 써오기 숙제를 받았다. 이에 일부 여학생들은 한국어 강사에게 "선생님 숙제가 너무 많아요", "너무 어려워요"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한국어 강사는 "여러분은 할 수 있어요"라며 힘을 복돋아줬다.

이날 수업 후 만난 양대우 군(20, 중국)은 "쓰기가 제일 어렵다"며 "그래도 (수업이) 재미있다"고 말했고, 필리핀에서 온 알파 양(16)도 "쓰기가 어렵다"면서 "한국어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날 한국어 교육을 담당한 한우선 강사는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쓰기가 가장 마지막에 발달하는 부분이라 아이들도 쓰기를 가장 어려워한다"면서 "그래도 처음 의사소통이 전혀 안됐던 친구들이 수업을 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느는 것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14년 온드림센터 봉사활동을 계기로 인연을 맺어 현재 정식 강사로 근무 중인 그는 "개인적으로는 아이들이 한국 청소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 아쉽게 생각한다. 수업으로 배우는 한국어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또래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어 실력도 키우고 한국 문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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