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한국은행 돈 찍어서 부실 기업 살린다고?


입력 2016.06.26 09:00 수정 2016.06.26 09:02        데스크 (desk@dailian.co.kr)

<자유경제스쿨> ‘보이지 않는 조세’이고 ‘눈속임 조세’

한국은행 본점 지하에 위치한 겹겹의 보안 장치로 둘러싼 금고가 활짝 열린다.(자료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 본점 지하에 위치한 겹겹의 보안 장치로 둘러싼 금고가 활짝 열린다.(자료사진)ⓒ연합뉴스

양적완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행한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미국은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인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제로 금리까지 내려간 금리를 더 내릴 수 없어서 총수요를 늘리기 위해 채권을 사들이면서 돈을 풀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Fed가 3차에 걸쳐 국채를 매입한 금액이 3조 달러에 달한다. 현재 Fed가 보유한 채권 규모는 4조5000억 달러나 된다. 유럽의 중앙은행인 ECB도 2015년 3월부터 매월 국채 매입 등을 통한 600억 유로 규모의 전면적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했다. 2016년 9월까지 양적 완화를 시행하되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이 2%를 하회하는 경우 계속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2017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양적완화를 먼저 실시한 나라는 일본이다. ‘잃어버린 20년’일 정도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의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일본은행이 2001~2006년 양적완화를 통해 40조 엔의 채권을 매입했다. 잠시 중단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2010-2011년 동안 101조 엔의 채권을 매입했으며, 2012년 매입규모를 확대했고, 2013년 80조 엔의 자산매입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제한 양적완화를 계획하며 2013년부터 연간 순 80조엔(약 6600억 달러)을 3년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경제가 침체 상태다. 그 이유는 불황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불황의 원인이 총수요부족 때문이고, 총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확장 정책을 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총수요 부족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황을 보면 세계적으로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있었다.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계속 잘못된 정책을 쓰며 지금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말하면 양적완화는 잘못된 대응책이다.

양적완화는 경기를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득 불평등만 악화시켰다. 경제에 새로운 화폐가 투입되면 새로운 화폐를 누가 먼저 입수하느냐에 따라 실질소득이 달라진다. 먼저 입수한 사람의 실질소득은 올라가고 나중에 입수한 사람의 실질소득은 하락한다. 새로 투입된 화폐로 인해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동시에 같은 비율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천천히 다른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에 소득 불평등이 발생한다. 실제로 Hellebrandt & Mauro(2015)는 “The Future of Worldwide Income Distribution” 논문에서 양적완화 기간 동안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양적완화는 불황을 타개하지 못한 채 부의 불평등이란 부작용을 낳은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양적완화가 경기를 살리는 데 유효한 정책일 뿐만 아니라 아주 적절한 정책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양적완화 앞에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붙여 마치 아주 기발한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형 양적완화는 외국의 양적완화와는 그 성격이 아주 다르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발권력을 동원하여 기업 구조조정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재원을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잘못된 발상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자금 지원은 재정의 역할이지 중앙은행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다. 화폐발행은 경제 전반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기업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부실기업은 인수 합병되거나 파산하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기업구조 조정을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의사를 들어봐야 한다. 공적 자금은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곳이 국회다. 따라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국회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발권력을 이용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는 이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형 양적완화는 듣기 좋은 단어로 포장하여 기업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고, 정부가 재원마련을 위해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쉬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재원을 국민세금으로 마련하든 발권력을 이용하든 모두 국민의 부담이다. 발권을 통한 재원 마련은 나중에 물가가 올라 국민들의 재산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세금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금이 올라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재정을 통하는 것과 발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같을지 모르지만 발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이 탈취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조세’이고 ‘눈속임 조세’다. 그러므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발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떳떳하지 못하다. 구조조정에서 한국은행이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시장 불안이나 자금경색에 대처하는 일이다.

글/안재욱 경희대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