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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외치는 조선업계, '투쟁' 외치는 노조


입력 2016.06.29 11:18 수정 2016.06.29 12:33        박영국 기자

호황기 때 만들어진 비대한 구조로는 생존 불가

"노조 반대해도 구조조정 멈출 수 없어"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구성원들이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데일리안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구성원들이 29일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데일리안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선 회사와 그걸 저지하려는 노동조합의 실력행사로 조선업계가 떠들썩하다.

29일 조선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간부 등 10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본관 앞에서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삼성중공업 노협은 지난 28일 사측의 구조조정안에 반대하는 파업 찬반투표를 91.1%의 압도적 찬성률로 가결시켰으며, 개표 직후 100여명의 인원이 서울로 이동했다.

노협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서한 전달을 시도했으나 보안요원들의 제지를 받고 삼성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 이동해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날 오후에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집회가 예정돼 있다. 노조는 오후 6시 10분부터 울산조선소 노조 사무실 앞에서 중앙쟁대위 출범식을 가질 예정이다.

노조는 “87년과 90년대 싸움과 같이 모든 조합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로 무능경영진을 몰아내는 강고한 투쟁의 시작을 선언해야 할 때”라며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출범식 이후에는 노조 집행부가 천막 철야농성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쟁의발생을 결의한 데 이어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파업 찬반 투표를 거치면 합법적으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 13~14일 이틀간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해 85%의 찬성률로 가결시켰다.

이들 조선업계 노조의 ‘투쟁’ 노선은 공통적으로 ‘구조조정 반대’를 명분으로 하고 있다.

인력 감축과 연장근로 및 복지 축소 등을 통한 임금절감, 일부 사업부문의 분사와 같이 조합원들의 고용보장과 임금, 근무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8일 연이어 발표된 정부의 공급과잉·취약산업 구조조정안과 각 기업별 자구계획이 조선업계의 유동성 악화와 이로 인한 국책은행 등 금융권의 부실, 이를 막기 위한 국민 혈세의 투입으로 이어지는 전 국가적 폐해를 막기 위한 큰 틀에서 마련됐다는 점에서 노조의 실력행사가 각 기업별 구조조정안 철회나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조원의 혈세투입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의 사례를 통한 학습효과로 인해 다른 조선업체 노조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 역시 국민들의 지지를 받긴 힘들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하는 대우조선해양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지 않은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역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물론, 금융권과 나아가 전 국가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업은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고, 그 비용을 여러 단계로 나눠 받는 업종 특성상 금융권으로부터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고, 선수금환급보증(RG)과 같이 금융권이 리스크도 나눠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업 불황은 이미 수년째 계속되고 있고, 올 상반기 조선 3사가 ‘제로’에 가까운 수주실적으로 기존 수주잔량을 깎아먹고 있는 상황에서 호황기 때 만들어진 비대한 조직과 고비용 구조를 그대로 안고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조선업체들에 비해 신속하게 구조조정에 돌입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CEO인 권오갑 사장이 일찌감치 이같은 구조적 문제를 경고한 바 있다.

2014년 9월 현대중공업 사장 취임 직후부터 구조조정에 착수한 권 사장은 두 달여 뒤인 그해 11월 임직원들에게 직접 나눠준 호소문을 통해 “우리 회사는 경쟁사보다 공수(工數, 공사할 때 필요한 인원수를 나타내는 수치)가 많이 발생해 최근 입찰에서도 이길 수가 없었다”며, “이것은 우리 회사가 경쟁사보다 거품이 많다는 것이고, 이 거품을 걷어내지 못하면 일감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원가가 높다보니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약 6~7% 가량 손실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위기를 맞았는데 왜 죄 없는 근로자들이 책임을 나눠져야 하나”라는 게 노동계의 항변이지만, 특정 기업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비대한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고, 그로 인해 부실이 쌓여 금융권에도 부담을 주고, 결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로 정책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미래의 과정까지 생각한다면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조선업계에서 이뤄지는 구조조정은 경쟁력 강화와 같은 사치스런 목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라며 “노조가 어떤 실력행사를 하더라도 (구조조정 반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게 아니라 들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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