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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전면 비공개가 ‘이정현식’ 혁신?


입력 2016.08.12 10:28 수정 2016.08.12 10:30        고수정 기자

<기자수첩> 내실있는 회의 위한 결정이라지만…'알권리'는 잊은 듯?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번째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번째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7년 전, 몸치 박치 탈출을 위해 다른 학과 교수의 댄스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힙합,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흥을 추구하는 나에겐 정말 제격인 수업이었다. 어릴 적 체력장에서 앞으로 굽히기만 하면 늘 마이너스 수치가 나왔기에 그때부터라도 조금 유연해져보려고 밤낮 없이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했다. 내 생에 그렇게 춤을 열심히 춰 본적도 없을 정도였고, 시험 당일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물론 자평이다.

대망의 성적 발표일, 성적 시스템을 열자 ‘C’가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솔직히 많이 실망했다. 결석은 커녕 지각조차 한 적 없었다. 바로 휴대 전화를 들고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절당하고 ‘할 말은 메일로 보내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즉시 동기들과 함께 평가 기준이 무엇이며, 그동안 두 차례의 시험 점수 공개를 요청했다. 교수의 답장은 즉슨 ‘평가 기준은 공개할 수 없으며, 항의 연락이 너무 많이 와 오히려 본인이 힘들다’였다. 결국 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 수업의 학점을 포기 했다.

우리 사회에서 비공개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공개해선 안 되는 찝찝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왜 공개를 안 하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비공개, 특히 회의와 관련한 ‘비공개’라는 단어는 ‘밀실’로 대변되기도 한다.

그런데 현재 이 ‘비공개’ 단어가 국회에서 여러 이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9일 출항한 ‘이정현호(號)’의 최고위원회의 비공개 결정 때문이다. 이 대표는 통상 모두발언까지 공개한 회의가 ‘시간 낭비’라며 전면 비공개 회의를 통해 보다 생산적이고 내실 있는 회의를 하겠다고 했다. “조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20~30분 시간 이어가는 건 문제가 있다. 국민 상식에 맞게 개선하려는 취지”라고도 강조했다. 그동안 최고위가 계파를 대변하는 인사들로 이뤄졌기에 회의 시작부터 격론이 오간 경우가 꽤 있었던 건 사실이다. 국회의원에 ‘싸움닭’이라는 편견이 생긴 것도 이러한 현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의아했다. ‘정치는 생물’이기에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계파 간의 격론도 당 내부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구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 아닐까. 당 출입기자들은 그의 회의 전면 비공개 결정을 두고 ‘논란’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모두발언 공개 후 비공개로 전환하는 기존의 회의 방식에도 일각에서 불만이 있던 터였다.

물론 안다. 이 대표의 취지가 ‘혁신’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걸. 다만 이 대표는 ‘국민의 알권리’에 대해선 잠시 잊은 듯하다. 미국은 약 30년 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회의공개법(The 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을 제정했다. 연방기관 모든 회의 공개, 회의 일정 사전공지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지금은 철회하긴 했지만, 서울시도 2012년 이를 모델 삼아 회의공개규칙을 만들어 시민 누구나 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회의 과정을 실시간 지켜볼 수 있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여론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지도부의 입장 모습을 담기 위한 단 몇 분의 ‘포토타임’만 주어지는 회의가 아닌, 정제되지 않는 회의 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게 언론의 입장에서도, 국민의 상식에도 더 ‘혁신스러운’ 결정 아닐까. 이 대표는 ‘회의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을 받아들였다지만, 그러한 개선은 전면 비공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초 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이 대표가 영남 기반의 정당에서 호남 출신 비주류, 비엘리트 출신으로서 당당하게 대표 자리에 오른 만큼 누구보다도 혁신과 변화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했다. ‘국민의 상식에 맞는’ 회의 운영 방식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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