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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최고 스펙' 시진핑의 '권력본색'을 해부하다


입력 2016.08.21 07:52 수정 2016.08.21 07:59        데스크 (desk@dailian.co.kr)

<특별기고>절대권력 비밀은 군직위 중심 당정직위 겸직

시진핑의 주석 호칭은 국가주석 아닌 군사위 주석의 약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槍杆子裏面出政權) - 마오쩌둥-

문화를 창조하려는 자는 반드시 무력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有文事者 必有武備) -공자-



연일 폭염속 찜통더위다. 무더위 타파에는 두 가지 ‘물’이 최고다. 찬물과 납량물(納涼物)

납량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원작가 로이스 덩컨이 지난 6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 7월 15일, 필자는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탐색하다가 “나는 시진핑이 지난 세월에 맡은 일을 알게 되었다”며 소스라쳤다.

전자는 ‘납량영화’인 반면, 후자는 ‘납량다큐’라서 탈이다.

“나는 시진핑이 지난 세월에 맡은 일을 알고 있다.”

사드배치로 중국의 안보이익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사드배치가 강행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미가 감당 불가능한 대응카드를 꺼낼 것이고, 만약 충돌이 발생하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군사대치까지 끼어든 한국이 가장 먼저 공격목표가 될 것이다. -'인민일보' 8월 3일자 평론

중국공산당 기관지, 중국최고권력언론으로서 나름의 ‘체통’을 지키려고 애쓰던 '인민일보'가 이런 욕설과 협박에 가까운 문투를 쓰다니,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이며 묵과해서는 결코 안 될 ‘일대사건’이다.

알다시피 '인민일보'는 중국정치체제상 여느 중국의 일간지는 물론, 각국의 대표 일간지와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 청와대나 백악관의 대변인 제도가 없는 중국에서 '인민일보'는 중국최고지도층의 대변인이자 최고권력자 ‘시진핑의 입’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대목에서 우리 일부 위정자들의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나라로서 사드배치에 따른 경제보복은 없을 것”이라는 현실과 희망의 퓨전, 실존과 당위의 혼동, 참으로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애국애족자들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군들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의 경제보복을 바라겠는가!

이번 '인민일보' 건은 “중국은 정치와 언론이 분리된 나라로서” 따위의 두 번 다시 한심한 궤변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무일 없을 것이라는 듯 그냥 지나쳐서는 절대 안 될 엄중한 사건이다. 한중 양국은 이른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중국의 공식 주요 우방국으로서 대한민국은 국가기강과 국가위신 차원에서 이번 '인민일보'의 폭언에 대해 엄중 항의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인데, 필자의 가슴 다른 한 편에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무겁고 암울한 색조의 의문부호 하나가 돋아난다.

“도대체 시진핑은 왜 이처럼 사드배치를 안보위협과 군사행동까지 들먹이며 펄펄 뛰듯 과잉반응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부호에 대해 '데일리안' 7월 30일자 기사 “사드 난리치는 시진핑, 알고 보니 미사일부대 경력이...?” 등 '데일리안'을 비롯한 국내 매체에서 역시 의문부호를 단 제목으로 몇 차례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의문부호와 관련하여 필자는 좀 더 심층연구를 하다가 서두에서처럼 시진핑이 지난 세월에 맡은 일을 알게 되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더 경악할 만한 부분은 현재까지 일관되어 오고 있는 ‘시진핑의 정체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진핑의 정체성은 ‘문민’보다 ‘군인’에 가깝다. 시진핑은 신사복을 입은 정치군인이다. 인민복보다 신사복이 어울렸던 전임자 후진타오와는 딴판. 어쩐지, 신사복을 입은 시진핑의 모습이 어색하더니, 그런 어색함은 무인 같은 그의 체구 때문만이 아니었다.

2012년 11월 15일 시진핑(習近平)은 당총서기 겸 당중앙군사위 주석에 등극했다.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는 당총서기가 된 2년 후 2004년에서야 장쩌민으로부터 당중앙군사위 주석을 물려받았는데, 왜 시진핑은 전임자와 달리 진정한 중국 제1인자 직위를 즉각 인계받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언론을 비롯한 내외신은 시진핑의 신속한 군부장악은 그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은 전부총리 등 ‘태자당’(과연 이런 정당이 중국에 실재하는가?)의 후광덕이라고 하고 있다. 독자들 또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국정치권력의 역학관계 및 변동 일체를 당파별 권력투쟁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일본 언론식 해석은 ‘1리(一理)’는 있으나 ‘9리(九理)’는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제 그 ‘9리’를 말하고자 한다.

정치장교출신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성골’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역대 중국최고지도자는 정치장교(군 정치위원)출신과 민간당원 출신으로 구분될 수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은 정치장교출신이고 화궈펑, 장쩌민, 후진타오는 민간당원출신이다. 전자는 중국공산당의 ‘성골’이라면 후자는 ‘진골’이라고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초대주석, 마오쩌둥(1893~1976)의 청․장년기는 불우했다. 해외유학은커녕 대륙을 석권하기까지 단 한번도 중국땅을 벗어난 본적이 없는 중국판 신토불이, 토종혁명가 마오는 소련유학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수호전'의 양산박 흉내나 내는 ‘촌뜨기 공산주의자’라는 멸시를 받아왔다. 그런 마오가 승승장구, 출세가도로 들어선 계기는 1930년 8월, 후일 대장정의 주력부대가 된 홍군 제1방면군을 창설하면서 ‘정치위원’을 맡은 후 부터였다. 정치위원 마오쩌둥은 군단장 주더(朱德)를 지휘 감독하였다.

중국 역대 당군사위 주석 : 초대 마오쩌둥 (1949-1976), 2대 화궈펑华国锋(1976-1981), 3대 덩샤오핑( 1981-1989), 4대.장쩌민( 1989-2004), 5대 후진타오( 2004-2012), 6대 시진핑 ( 2012-)   2대 화궈펑의 실권은 1978년부터 당시 군사위부주석이던 덩샤오핑에 장악되었음.  화궈펑시대는 중국현대사에서 과도기로서 평가절하 내지 거의 생략된 상태 인 바. 현 시진핑 군사위주석을 제5세대 핵심이라고 칭하고 있음.  http://baike.baidu.com/참조.  ⓒ강효백 중국 역대 당군사위 주석 : 초대 마오쩌둥 (1949-1976), 2대 화궈펑华国锋(1976-1981), 3대 덩샤오핑( 1981-1989), 4대.장쩌민( 1989-2004), 5대 후진타오( 2004-2012), 6대 시진핑 ( 2012-) 2대 화궈펑의 실권은 1978년부터 당시 군사위부주석이던 덩샤오핑에 장악되었음. 화궈펑시대는 중국현대사에서 과도기로서 평가절하 내지 거의 생략된 상태 인 바. 현 시진핑 군사위주석을 제5세대 핵심이라고 칭하고 있음. http://baike.baidu.com/참조. ⓒ강효백

정치위원은 무엇인가? 정치위원은 공산당 군대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직책이다. 군부대 내에서 사상, 이념, 정치노선 등을 교육하고, 공산주의 이념을 군대와 작전에 투영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치위원은 사령관 등 장교들을 감시감독하고 중앙당의 지시를 전달하고 특이사항을 중앙당에 보고하는 임무를 맡는다. 따라서 정치위원은 소대부터 사단, 군단까지 모든 중국군 편성단위의 서열 1위이다. 이게 바로 ‘공산당이 공산군을 지휘하는 원칙’을 극명하게 체현하는 실제 사례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 G2중국의 초석을 닦은 덩샤오핑의 스펙 역시 ‘정치위원에서 정치위원으로’였다. 1929년 덩샤오핑은 정치위원으로 중공군에 입문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부총리로 전직할 때까지 무려 21년간 정치위원이었다. 특히 정치위원 덩샤오핑, 사단장 류보청(刘伯承) ‘팔로군 129사단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백전백승 사단이었다.

1979년 덩샤오핑(당시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은 그의 측근인 시중쉰 부총리의 아들 시진핑(당시 26세, 칭화대학 화학과 졸업)을 중국최고권력의 핵심중의 핵심, 당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한국의 중령급에 해당)로 발탁, 국방부장겸 중앙정치국위원을 보좌하도록 함으로써 차세대 군부 및 당정 지도자 수업을 받게 했다.

중국최고권력직위 순, 1위 군사위주석, 2위 총서기, 3위 국가주석

아래 풍부화려한 군 수뇌 경력을 보유한 현직 중국 군부 주요인물은 누구일까?

1.중앙군사위 판공청 비서(현역 1979-1982)
2.정딩(正定)현 무장부대 제1정치위원(1983-1985)
3.닝더(宁德)군구 당위 제1서기(1988-1990)
4.푸저우(福州)군구 당위 제1서기(1990-1996)
5.푸젠(福建)성 미사일예비역사단(高炮预备役师) 제1정치위원(1996-2002)
6.난징군구(南京军区)국방동원위원회 부주임 겸 푸젠(福建)성국방동원위원회주임(2000-2002)
7.저장성군구당위제1서기, 저장성 국방동원위원회 주임 (2002-2007)
8.상하이시 경비구당위(警备区党委) 제1서기(2007)
9.중공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2010—2012)

그는 바로 시진핑 중앙위원회총서기(中央委员会总书记),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中共中央军事委员会主席),중화인민공화국주석(中华人民共和国主席)이다.(중국공산당 홈페이지 게재순)

위 3가지 직위 중 진정한 중국1인자는 무엇일까? 국가주석은 흔히 영문으로 ‘President’로 표기되기 때문에 중국 제1인자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중국의 당정체제상 국가주석은 내각책임제의 대통령보다 못한 존재이다. 중국 권력1인자는 당총서기이다. 당이 국가를 영도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진짜 진정한 중국최고권력자는 ‘중앙군사위 주석’을 맡고 있는 자이다.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명실상부하게 정직(正職)을 맡았던 직위는 군부를 통수하고 군권을 장악하는 당중앙군사위주석(1981~1989)이 거의 유일하다. 국가주석과 당주석은 물론 국무원 총리조차도 단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던 덩샤오핑이 제2세대 영도핵심으로 공인받고 있는 까닭은  그가 당군사위주석을 맡았기 때문이다. ⓒ강효백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명실상부하게 정직(正職)을 맡았던 직위는 군부를 통수하고 군권을 장악하는 당중앙군사위주석(1981~1989)이 거의 유일하다. 국가주석과 당주석은 물론 국무원 총리조차도 단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던 덩샤오핑이 제2세대 영도핵심으로 공인받고 있는 까닭은 그가 당군사위주석을 맡았기 때문이다. ⓒ강효백

시진핑은 이처럼 해군과 미사일부대 밀집지역인 푸젠성(1985~2002)과 저장성(2002~2007), 상하이 경비구당위제1서기(2007)에 이르기까지 무려 23년간 군통수권자 경력을 쌓아나갔다.

중국공산당 홈페이지에 있는 정치국상무위원 7명의 약력 중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시진핑의 휘황찬란한 군경력이다. 당이 군을 지휘하는 중국정치체제에서는 중앙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당서기가 군 최상급자 서열보다 앞서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면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서열2위 리커창 총리부터 서열 7위 장가오리 부총리까지 정치국상무위원(서열 5위 류윈산 제외)들 모두 2~3개 지역의 성장이나 당서기를 역임했지만 시진핑처럼 군구당위 제1서기, 제1정치위원 등 해당 군구 통수권까지 장악했던 자는 하나도 없다. 덩샤오핑이 당군사위주석을 사임한 1989년 이후 재임하였던 모든 정치국상무위원중에서도 군․당․정(軍․黨․政)3권 통수권자 경력을 보유해온 자는 시진핑이 유일무이하다.

시진핑 절대권력의 비밀: 군직위를 중심으로 당정직위는 겸직

이처럼 시진핑은 역대급 최고스펙을 무장했다. 여느 고위지도자의 출세가도와는 달리, 시진핑의 그것에서는 군직위를 중심으로 삼고, 좌우에 당직과 정부직을 겸직하여 온 듯한, 매우 특이한 궤적이 포착된다. 시진핑은 군부내 핵심간부들을 측근 일색으로 임명함으로써 군맥 전반을 장악하였다.

한 가지 예만 들자면 현 중앙군사위 상무위원 8인 중 최고실세는 해군총사령관 우성리(吳勝利 1945~)이다. 제독으로서 은퇴할 나이를 훨씬 넘긴 71세의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현직 중책을 맡고 있다. 시진핑이 푸젠성에 이어 저장성 군구1인자를 맡을 당시 우성리는 마치 시진핑을 졸졸 따라다니듯 푸젠 해군기지사령관에 이어 저장성닝보에 위치한 동해함대 부사령관을 역임하여왔다. 또한 시진핑 주석의 부인이자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 1962~)은 현역 해군소장이라는 사실, 역시 예사로 넘겨서는 결코 안 될 키포인트다.

지난 4월 20일 시진핑 군사위주석은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기구인 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했다. 군복차림의 시주석이 각반을 차고 군화까지 신은 모습이 화면에 포착됐다. 중국중앙방송(CCTV)는 그날 시 주석을 ‘중앙군사위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라는 직함으로 불렀다.

현재 시진핑 주석은 당총서기· 당중앙군사위주석․ 국가주석․ 국가군사위주석(중국 공산당 홈페이지 게재 순) 외에도 ‘중앙군사위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 국가안전위주석, 중앙군사위국방군대개혁심화영도소조장 등 모두 7개의 공식직함을 갖고 있다. 시진핑의 7개의 직함 중 군사안보와 관련된 것은 5개나 된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의 ‘주석’은 ‘국가주석’이라는 의미보다 ‘군사위주석’에 훨씬 가깝다. 즉 ‘시 주석’은 ‘시 국가주석’의 약자가 아니라 ‘시 군사위주석’의 약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현재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비견되는 카리스마를 누리며 1인통치 절대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시진핑 군사위 주석이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해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라는 ‘입’을 빌려 군사적 대응까지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일부 중국관영 언론의 허풍성 엄포성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두루뭉수리 은근슬쩍 덮고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된다.

문화를 창조하려는 자는 반드시 무력의 준비가 있어야

우리는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이기에, 우리가 남을 공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절대금물이다. 상대방을 과대평가하여 지레 겁을 먹고 주눅이 드는 것도,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며 아무런 준비없이 무사태평, 유유자적하는 것 모두 절대금물이다.

이에 필자는 다음 세 가지 성어로 졸고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경적필패(輕敵必敗)’ 적을 깔보면 반드시 패한다. 요즘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사드배치에 대해 중국의 대응을 낙관하면 ‘보수우파’ 이고, 중국의 대응을 조심하고 만전을 기하자 주장하면 ‘진보좌파’로 매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행태라고 생각한다.

‘경적필패’ 대신 ‘유비무환(有備無患)’ 하여야 한다. 미리 준비하면 근심할 것이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면 패망하기 십상이다. 깨어있으라. 항상 깨어있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면 나쁠 것 하나 없다.

끝으로 '공자세가'에서 말하듯, ‘유문사자 필유무비(有文事者 必有武備)‘ 문화를 창조하려는 자는 반드시 무력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막대하고도 참혹한 값을 치르고서야 평화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진실을 배워왔다.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는 것만이 아닌, 정신 무장과 아울러 군비 무장에 힘쓰는, 즉 평화의 창조가 평화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서적>
강효백, 『중국의 습격』, Human&Books, 2012.
강효백, 『중국의 슈퍼리치』, 한길사, 2016.

글/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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