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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없어도, 적당히 해도 괜찮아 '걷기왕'


입력 2016.10.13 08:49 수정 2016.10.13 08:56        부수정 기자

심은경 박주희 주연…백승화 감독 연출

제작진 "청춘에 위로 건네는 영화"

'걷기왕'은 여고생 만복이 우연한 기회에 경보를 시작하고, 육상부에서 만난 친구와의 훈련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CGV아트하우스 '걷기왕'은 여고생 만복이 우연한 기회에 경보를 시작하고, 육상부에서 만난 친구와의 훈련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CGV아트하우스

"꿈을 향한 열정, 간절함이 가장 중요해."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요즘 애들은 포기가 너무 빨라", "중간에 포기하는 거 나쁜 습관이야", "아프니까 청춘이잖아" 등 구태의연한 말도 던진다. 청춘들은 외친다. "지금도 충분히 힘들다"고. "적당히 좀 하고 싶다"고.

영화 '걷기왕'은 고달픈 청춘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위로한다. 꿈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다고.

선천성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고생 만복(심은경)은 버스, 택시, 오토바이 등 모든 교통수단을 탈 수 없다. '토쟁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두 발로, 씩씩하게 걸어 다닌다.

공부엔 취미가 없는 만복이가 자신 있는 건 오로지 '걷기'. 만복의 '통학 사연'을 들은 담임 교사(김새벽)는 경보를 해보라고 권유한다. 공부는 싫고, 운동은 왠지 쉬울 것 같아 시작한 경보는 천하태평의 만복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 욕심 없던 만복은 육상부 에이스 수지(박주희)를 보면서 소박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걷기왕'은 여고생 만복이 우연한 기회에 경보를 시작하고, 육상부에서 만난 친구와의 훈련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만든 백승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심은경은 영화 '걷기왕'에서 선천성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고생 만복 역을 맡았다.ⓒCGV아트하우스 배우 심은경은 영화 '걷기왕'에서 선천성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고생 만복 역을 맡았다.ⓒCGV아트하우스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청춘의 고민, 아픔, 성장을 무겁지 않게 다룬 게 미덕이다. 경쾌한 음악, 적재적소에 배치한 유머 코드 등이 잘 어우러져 밝은 성장물로 탄생했다.

백 감독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그리고 싶었다"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가 가장 큰 부담이었는데 요즘 청년들에게는 '열정을 갖고 도전하라'는 게 압박인 것 같다. 꿈이 없어도,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백 감독의 말마따나 '걷기왕'은 근사한 꿈과 그럴듯한 성공을 좇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제목이 '달리기왕'이 아닌 '걷기왕'인 이유도 이런 맥락을 같이한다. '빠르게, 빠르게'만 달리는 것보다는 조금은 느리고, 가끔은 넘어지고, 주저 앉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마지막에 만복이 경보를 포기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한국사회에서는 꿈을 이루고 성공한 사람만 빛난다. 목표에 닿는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사람의 사연과 상처를 모르면서 '끈기가 없다'고 쉽게 얘기할 뿐이다. '걷기왕'은 꿈과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한계를 알고 무언가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짚어준다.

'열정과 꿈'만을 강요하는 어른들 틈에서 힘겨워하는 청춘의 모습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다들 무언가 될 것 같은데 나만 안 될 것 같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라는 말도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지현(윤지원)이 담임에게 쏟아낸 말은 청춘의 고달픔을 나타낸다. "'칼퇴'하고 집에서 맥주 마시고 싶고, 적당히 하고 싶어요. 뭘 자꾸 이겨 내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 죽겠는데 왜 참아야 돼요?"

심은경 주연의 영화 '걷기왕'은 고달픈 청춘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위로한다.ⓒCGV아트하우스 심은경 주연의 영화 '걷기왕'은 고달픈 청춘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위로한다.ⓒCGV아트하우스

청춘을 대하는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도 나온다. "넌 뭘해도 안 돼"라고 꾸짖는 만복의 아버지, 묵묵히 만복을 믿어주는 어머니, '열정과 꿈'을 강요하긴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숨은 능력을 찾아보고 응원하는 담임 교사 등을 보노라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심은경이 만복 역을 맡아 사랑스럽고 귀여운 매력을 뽐냈다. 최근 '부산행', '널 기다리며' 등 다양한 장르에 출연한 그는 새로운 캐릭터에 기꺼이 도전해 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특히 저예산영화에 출연한 점은 또래 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다.

그는 "나도 만복이처럼 꿈에 대해 고민했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그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힐링했다. 엔딩 장면을 보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조건 빨리 나아갈 필요는 없지'라고 생각했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성 영화들이 관심을 받고 주목을 받아야 한다"며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김새벽은 "예전에는 남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삶을 살았었는데 이제는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걸 알게 됐다"며 "'걷기왕'은 이런 부분을 얘기하는 영화"라고 했다.

'걷기왕'은 오는 11월 3~13일 열리는 하와이영화제의 스포트라이트 온 코리아(Spotlight on Korea) 섹션에 소개된다.

10월 20일 개봉. 92분. 12세 관람가.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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