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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의 정당한 의사표시…이제는 탄핵이 답이다


입력 2016.11.19 04:07 수정 2016.11.20 20: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광해군에 직언했던 수험생만한 장관도 없는 정부

특검 통해 탄핵 혐의 드러나면 여당도 방패막이 못해

다움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1만여명의 회원들이 2008년5월2일 저녁 청계천 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다움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1만여명의 회원들이 2008년5월2일 저녁 청계천 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광해군에 직언했던 수험생만한 기개 가진 장관 없는 정부

“정부에 자리가 하나 비면 임명장이 내려오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 자리에 중전이나 어느 후궁과 가까운 아무개가 앉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임명장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거의 그 말대로 되고 맙니다. 인사 담당 부서도 그것을 제재하지 못하고 대간(臺諫)에서도 감히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합니다.”

조선 광해군 3년에 치러진 별시 문과 답안지에서 임숙영(1576~1623)이 척족의 횡포를 규탄하면서 적은 글이다. 그는 아랫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원래 윗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고, 따라서 국가 권력이 사유화된 근본 원인이 모두 왕에게 있다고 했다. 임숙영은 또 같은 맥락에서 왕은 “다른 사람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싫다면 반드시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며, 그래야만 사(私)보다 공(公)이 우선되는 사회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것은, 광해군이 격노하는 바람에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으나, 이러한 위험천만한 답안을 쓴 임숙영이 그 시험에서 무사히 급제를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선실세의 농단으로 지난 3년여 동안 국가권력이 사유화되었던 것이 드러나 온통 나라 전체가 들끓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면 왕조 국가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동안 최순실씨의 국정 및 인사 개입을 비판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다는 장관이나 참모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일개 수험생만한 기개와 용기를 가진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참다못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뒤에야 ‘박근혜 퇴진’을 소리 높여 외치는 야당 지도자들이나, 자신들이 마치 선량한 내부고발자나 되는 것처럼 이제야 앞 다투어 폭로전을 벌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했을 수많은 손익계산서만이 떠오를 뿐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인 광해군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는 없다’며 버티기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의혹만 가지고 물러나라는 것은 법률이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맞지 않는 말이기는 하다. 문제는 작금에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각종 의혹들 중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근거 없는 루머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대통령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시간제한 없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거기에다 ‘세월호 7시간’ 등 다소 민감한 주제까지도 허용한다면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박대통령의 성격과 스타일을 감안해 보면 이런 종류의 기자회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실과 의혹을 구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연설에서 밝힌 적이 있듯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대통령의 태도는 그다지 협조적인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특검 수사결과를 인용(認容)한 탄핵뿐이다. 국민들이 내건 촛불은 대통령에게 중대한 범죄행위가 있다면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권자의 정당한 의사표시이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를 헌법과 법률의 범위 안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촛불의 수가 백만이 되건, 이백만이 되건, 그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엄중하고 준엄한 국민의 목소리지만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를 대신 이행해야 할 책임은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와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은 헌법기관에 있다. 탄핵은 이들에게 국민이 신탁한 정당한 권리이다.

일부에서는 탄핵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정족수를 충족하기 어렵고, 경우에 따라서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시간만 벌게 해주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현 시국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만약에 특검을 통해 대통령에게 탄핵당할 만큼의 명백한 혐의가 있는 것이 드러난다면, 여당의원이라 해서 함부로 대통령의 방패막이로 나서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1만여명의 회원들이 2008년5월2일 저녁 청계천 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다음 카페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소속 1만여명의 회원들이 2008년5월2일 저녁 청계천 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특검 통해 탄핵 혐의 드러나면 여당의원도 방패막이 못할 것

어떤 경우이건, 탄핵은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적 사건이고, 그런 만큼 여론이 상황을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설익은’ 탄핵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까닭은 철저하게 당리당략에 의해 탄핵이 추진되었고 그 때문에 국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1787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제라는 정치체제와 탄핵제도를 만들어낸 뒤 그 후 세 차례의 탄핵시도가 있었던 미국에서도 언제나 탄핵 국면을 주도한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민 여론의 향배였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1999년, 빌 클린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클린턴에게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났다. 그가 아칸소 주지사시절 토지개발 투자 사업을 하던 화이트워터사의 대출사기 등의 혐의에 관련되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 부부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케니스 스타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었다. 반 클린턴, 친 공화당 성향의 스타는 클린턴의 연루 사실을 캐기 위해 수년간 집요하게 노력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전 아칸소 주 공무원이었던 폴라 존스가 성희롱죄로 클린턴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이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르윈스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타는 르윈스키의 지인인 린다 트립으로부터 르윈스키의 증언녹음 테이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함으로써 스타가 놓은 덫에 걸렸고 이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그의 위증행위에 대하여 분노하며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론을 등에 업은 스타는 1998년 9월 10일 탄핵소추를 위한 보고서를 의기양양하게 하원에 제출했고, 하원은 압도적인 다수로 탄핵조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여론의 풍향이 다시 바뀌었다. 야당인 공화당이 스타 특별검사가 작성한 보고서 중 매우 사적이고 민감한 내용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포퓰리즘적 선동 전략을 사용했는데, 국민들은 오히려 굴욕감을 느끼는 대통령을 보면서 그를 정치적 희생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확산되면서 탄핵에 대한 동력을 잃은 공화당은 설성가상으로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이렇게 해서 거의 중지될 뻔 했던 탄핵정국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자신감을 회복한 클린턴이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 ‘위증이라는 것에 오해가 있다’, 라는 식의 불성실한 답변을 이어나갔고 이에 격분한 공화당 의원들이 위증죄와 사법정의를 방해한 죄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것이다. (미국은 하원에서 과반수 의결로 소추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공화당의 실수였다. 국민들은 클린턴의 도덕성을 비판했지만 그의 직무 수행능력은 인정하고 있었기에 탄핵에 대한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결국 1999년 1월 7일, 미국 헌법에 따라 탄핵 심판을 담당하게된 상원은 국민의 여론을 수용하여 두 항목 모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공화당이 탄핵에 실패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한 때문이다. 특히 스타 특별검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국민들을 식상하게 만들었다. 클린턴은 그의 말장난으로 말미암아 일찍 마무리 될 수 있었던 탄핵정국을 연장시킴으로써 국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 최선의 정치라는 교훈이며 탄핵정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글/허구생 단국대 교수·역사학 박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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