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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총장 설득과 박근혜 대통령 자진 하야' 시나리오


입력 2016.11.27 09:48 수정 2017.01.04 23:21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6·29 선언 당시 '직선제 개헌' 과실은 노태우 후보 차지

반 총장, 박 대통령 '하야' 받아내고 대권 비단길 확보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6·29 선언 당시 '직선제 개헌' 과실은 노태우 후보 차지

요즘 여의도 정가에는 ‘최순실 정국’의 흐름을 확 뒤엎을 만한 반전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원래 음모론이나 각종 ‘설’이 많이 나도는 곳이라 호사가들이 꾸며낸 얘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현 시국과 맞물려 워낙 그럴싸한 내용이라 짚어보고자 한다.

시나리오의 두 주인공은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얘기의 단서는 박 대통령이 자신의 끝없는 추락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목전에 국회 탄핵안 가결을 앞두고 있고 또 길어야 6개월 헌법재판소 심판기간을 감안하더라도 내년 중반쯤에는 경매로 집이 넘어가는 집주인처럼 청와대에서 쫓겨나야 할 판이다.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처럼 민심의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지금은 여건이 너무 다르다. 혹 주변에 그런 감언이설로 대통령을 안심시키고 버티기를 권하는 참모가 있다면 바로 해고할 것을 조언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선 절반 이상은 포기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반 총장 입장에서도 최순실 정국을 태평양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는 없다. 사실상 대권도전 의사를 피력한 마당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승세에 대응할 수 있는 비책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간 자신의 국민여론 지지율 1위를 지탱해온 힘의 원천이 박 대통령 지지세와 상당부분 중첩돼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최순실 사태 이후 대통령 국정지지도와 반 총장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고, 급기야 문 전 대표에게 1위 자리를 내준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 선까지 추락했고 새누리당 지지도가 10%대에서 국민의당보다도 밑도는 상황에서 반전 동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6․29 선언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987년 4월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가 발표되자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사건과 6․10 항쟁을 거쳐 국민 분노가 절정에 이른 6월29일에는 전국에서 100여만 명의 시민들이 가두시위에 참가해 호헌 철폐를 외쳤다. 여당 대선주자였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포함한 8개항의 요구사항을 전 대통령에게 제시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선후보 등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결국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호헌조치 철회 입장을 밝혔고 10월27일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외견상 호헌 철폐, 직선제 개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노 대표가 6․29 선언의 과실을 대부분 가져갔다. 그해 12월16일 13대 대선에서 정권은 전 대통령에게서 노 후보에게 승계됐다.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도 뼈아픈 패인으로 작용했다.

26일 5차 촛불대회에서 전국의 190만 국민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박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함에 따라 야권은 합법적인 퇴출을 위해 ‘탄핵’이라는 우회로로 돌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즉 하야를 이끌어내고 혼란한 정국을 하루속히 수습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시나리오에는 반 총장이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로 돼 있다. 반 총장은 당초 올 연말까지 임기를 마치고 내년초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내 정세를 감안, 크리스마스 휴가를 이용해 귀국 날짜를 앞당긴다는 것이다.

그간 5차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사퇴를 거부하며 꿈쩍도 않던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의 ‘설득’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는 무엇인가? 반 총장의 대권가도에 비단을 깔아주기 위해 본인은 희생양이 되길 마다 않는 모양새가 된다. 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오래 전부터 호감을 보여왔다. 다만 추락하는 대통령의 지지도를 의식해 거리를 둬온 쪽은 반 총장이었다. 반면 최순실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야권 주자들로부터 핍박에 가까운 비난에 시달려왔다.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그들을 향해 회심의 반격 카드를 날리겠다는 동기가 생길 만하다. 그렇게 해서 반 총장이 대권을 잡는다면 박 대통령 입장에선 정권 승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퇴 후 신변 보장 문제에서도 반 총장이 어느 주자보다 나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높이는 방증으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사퇴시점을 12월21일로 잡은 점이 꼽히고 있다. 왜 하필이면 12월21일인가? 왜 21일까지 온갖 비난을 감내하며 현 정국 판도가 깨지지 않도록 박근혜 정권의 보루역할을 자임하고 있는가? 그것은 반 총장의 크리스마스 휴가가 그때쯤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 총장이 입국한 뒤 박 대통령의 하야가 성사되면 탄핵정국은 곧바로 대선정국으로 급변한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고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게 된다.

극적으로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낸 반 총장은 여권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 주자로 우뚝 설 것이다. 귀국 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단독 회담이라도 가진다면 금상첨화다. 새로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 국민 지지도는 한층 더 올라갈 것이다. 반면에 야권에선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여전히 상대편 양보만 주장하며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13대 대선의 재판이 될 공산이 높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25일 오후 제주포럼 환영 만찬 참석을 위해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제주포럼 사무국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25일 오후 제주포럼 환영 만찬 참석을 위해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제주포럼 사무국

반 총장, 정권승계 원하는 박 대통령 '하야' 받아내고 대권 비단길 확보

이처럼 ‘반 총장의 설득과 박 대통령 하야 시나리오’는 그럴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몇 가지 흠결을 안고 있다. 반 총장이 미리 짜여진 각본에 따라 박 대통령과 짬짜미를 한 사실이 확인되거나 적어도 그렇게 국민들 눈에 비칠 경우 반 총장의 정치 생명은 종언을 고한다. 반 총장이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박 대통령과 '공연(共演)'에 나서야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오히려 야권에서 흘리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계엄령’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 청와대가 수세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구로 이용할 만한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실체 여부와 상관 없이 ‘그림자’만 보고도 총기를 난사하는 격이다. 30년 전 ‘죽 쒀서 개 준’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 그런 개연성에 대해선 미연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도다.

반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관점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다.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지만 한때 실체가 만들어지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은밀하게, 전격적으로 실행돼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법이다. 이미 정가에 시나브로 소문이 나서 김빠진 콜라처럼 돼버렸으니 결행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만만찮다.

‘거사’의 윤곽이 알려졌다고 해서 반드시 포기하란 법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시쳇말로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는 게 아니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진정성이 담보되고 시대적 소명이 그들 위상과 맞아떨어진다면 미리 잠복 중인 적진에서 총탄이 쏟아지더라도 고지를 탈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숨막히는 '최순실 정국'이지만 ‘그래도 정치는 살아 움직인다’는 주문(呪文)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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