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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을(乙)지키는' 을지로위원회 우원식, 4년의 단상


입력 2016.12.30 14:36 수정 2016.12.30 15:03        이슬기 기자

현장 방문만 150차례..."중소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 먹고사는 문제가 정치의 본령"

"'저 당이 뭔가 해내겠구나'라는 신뢰를 받으려면 그걸 추진하는 사람들의 '히스토리'가 있어야 되거든요. 민주당 안에선 을지로위원회가 작지만 그 히스토리의 시작이 됐으면 합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예산 통과 환영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론관 복도에서 직접고용 문제와 관련해 함께 노력한 의원들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예산 통과 환영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론관 복도에서 직접고용 문제와 관련해 함께 노력한 의원들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지난 5일, 국회 정론관 복도엔 붉은색 청소복을 입은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우원식 의원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차가웠던 정론관 복도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이날 회견에 동참한 환경미화원 조합원은 "을지로위원회가 우리를 사람대접해줬다"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지난 4년간 '꽃 달기' 행사마다 신문고 게시판에 한 송이씩 달던 작은 꽃은, 수백 명 을(乙)들의 박수가 모인 커다란 꽃다발이 되어 다시 의원들의 품에 건네졌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자며 2013년 5월 10일 을지로위원회를 시작한지 3년 7개월. 중소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을'들이 뛰는 현장을 누벼오다, 2016년을 끝으로 위원장직을 넘기고 물러나는 우원식 의원을 28일 의원실에서 만났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을지로위원회 꽃 달기 행사'에 쓰였던 꽃을 우 의원 가슴에도 달았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을지로위원회 꽃 달기 행사'에 쓰였던 꽃을 우 의원 가슴에도 달았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을지로위원회는 2013년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문을 열었다. 당시엔 해당 사건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로 시작됐으나, 우 의원이 나서 아예 '갑의 횡포' 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는 위원회로 만들 것을 적극 제안하면서 상설위원회가 됐다. 그 당시 대리점주들과 본부 사장들 간 감정의 골이 엄청나서 접근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갑의횡포' 문제가 우리 사회 전면에 떠오른 첫 사건이 남양유업 사태였다. 그전까진 가맹점·대리점에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큰 사회적 이슈가 되진 못했는데, 그 무렵 ‘녹음 테이프’ 하나가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며 물량을 떠넘기는 통화 내용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양측 간 골이 얼마나 심했냐면,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남양유업 본사, 반대쪽 도로엔 대리점주들이 우유곽을 싸놓고 농성했는데, 본사에서 그걸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정말 최악의 관계였다. 회사에서 협상할 분위기도 안 돼서 첫 협상을 국회 식당에서 했다. 나와 민병두·김현미 의원, 사측과 대리점주를 앉혀놓고 시작했는데 협상이 계속 깨져서 다시 만나기만 세 번이나 번복했다. 최종 타결이 됐을 때 정말 뿌듯했다.”

-을지로위원회가 노사 간 문제를 해결하는 등 성과를 낼 때마다, 당사자들을 직접 국회로 초대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꽃 달기’ 행사를 한다. 통상 야당은 기업 측에 대해 비판적 기조로 일관하지만, 을지로위원회의 경우 항상 “교섭에 임해준 사측에게 감사드린다”는 메시지를 남겨왔다. 그만큼 노사가 교섭해 협상을 이룬다는 것이 어려운 과정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정말 그렇다. 협약을 맺으려면 양쪽 모두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이만하면 대화를 해볼 수 있겠다’가 되어야지, 국회가 끼었다고 무조건 한쪽을 압박하거나 다른 쪽 의견만 강요해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결국 마지막 결단과 타결은 당사자들이 하니까. 다만 우리가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거다. 남양유업 협상을 한창 진행할 때, 내가 사측에 이렇게 제안했다. ‘당신들 이미지가 너무 나빠져서 매출이 급락했는데, 이걸 바꾸는 방법은 1호 상생기업이 되는 거다. 그러면 우리 당 지도부가 공개 회의 때 남양유업 우유를 마시고, 남양유업이 상생을 결단한 기업이라고 말하겠다. 그러면 이미지가 크게 회복될 거다’라고. 그쪽에서도 귀가 솔깃했고, 양보를 해보겠다고 하더라. 대리점 역시 무조건 본인들 주장대로 다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양쪽 다 노력한 결과 타결을 본 거다. 나중에 사측에서도 을지로위원회 덕분에 골치 아픈 갈등이 해결됐다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하더라.(웃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을지로위원회 활동백서’를 보니 현장 방문만 150차례 정도 된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 방문한 경우가 많더라. 4년간 직접 찾아다녔던 현장 중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해 달라.

“대리운전 기사, 마필 관리사, 우체국 택배 기사, 톨게이트 노동자… 이분들 시간에 맞춰 만나려면 새벽일 시작하기 전에 가야한다. 새벽 4시가 보통이고, 대리 뛰시는 분들은 중간에 새벽참 먹는 새벽 2시에 청담동 포장마차로 찾아간 적도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영종도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 만나러 갔을 때다. 직원 7천 명 중 정직원 6백 명 제외하면 전부 비정규직이다. 새벽 5시30분에 위원회가 간다고 하니까 공항 측에선 ‘정직원들 만나러 오는 거 아니니까 회의할 장소 못 준다’더라. 근데 우리 위원회 의원들 15명이 무더기로 가니까 그때서야 자기들도 깜짝 놀라서 회의 공간을 줬다. 거기서 비정규직 사람들을 만났는데, 새벽에 만나러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며 펑펑 울더라. 또 ‘나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우는 분도 있었다. 힘든데 월급은 너무 적고, 매년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노조를 만들었는데, 그거 만들었다고 또 잘리게 생겼다고 하던 장면이 많이 기억난다.

또 위원회 활동 초기에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일도 생각난다. 각 가정 방문해서 삼성제품 수리해주는 기사들은 전부 간접고용 된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노조를 만들고 싶다며 도와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돕기 전에 노조를 추진하던 2명이 자살을 해서 장례 과정부터 우리가 함께 했다. 그때 장례 치르고 100여명이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와서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노조위원장이 상황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니까 나머지 100명의 남자들이 다 울더라.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후에 은수미 의원과 내가 삼성전자 사측을 만나서 최종 협의안을 정리하고 결국 타결을 봤다.“

-지난해 12월까지 백서에 실린 을지로위원회의 입법 성과가 14개다. 전부 쉽지 않게 통과시켰겠지만, 이 중에서도 입법 과정이 가장 험난했던 것은?

“대리점법과 가맹점법이다. 우리 위원회 1호 법안이 '대리점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이다. 중요한 건 대항단체를 만들 수 있는 ‘단결권’이다. 불공정 양상을 하나하나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대리점주 협의회 등 노조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대항할 수 있는 권리다. '가맹점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단결권까지는 담겼는데, 새누리당 반대가 하도 거세서 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은 넣지 못했다. 협의회를 구성하면 뭐 하나, 단체로 파업이든 뭐든 할 수 있는 행동권이 있어야하고, 법적인 교섭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대리점법은 대항단체 구성권조차 못 넣었다. 더더욱 미완성 법이기 때문에 계속 고쳐나가야 한다. 현재 법 개정안도 낸 상태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간 을지로위원회의 ‘얼굴’이자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분으로서 앞으로 더 나은 ‘을지로위원회'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을 말씀해 달라.

“이번 당헌·당규에 규정된 민생최고위원을 뽑고 민생연석회의를 제대로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민생문제를 가장 중심에 놓는 당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 활동을 중심으로 당이 재편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도록 내가 계속 노력해야지. 과거 민주정부 10년과 지금, 똑같이 민주주의와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을지로위원회를 통해 현장으로 가서 진짜 민생 문제를 다루고 전면에 내세운 사람들의 활동이 4년간 쌓였고 50명 넘는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자체가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공감을 얻고, 그걸 바탕으로 ‘아, 현장으로 가는 정치란 게 저렇게 하면 가능하겠구나’라는 모습 정도는 비춰줬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본령이 어려운 사람 보호하고 불공정한 제도 고치는 거지, 그거 빼면 정치가 할 일이 없지 뭐. 허허허”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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