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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to YOU] "재앙 맞은 보수 재결집 위해 본류 이념 정립"


입력 2017.01.02 11:12 수정 2017.01.02 11:27        데스크 (desk@dailian.co.kr)

새로운 보수신당은 사익 버리고 '정책정당' 지향해야

중간층 끌어들이기 위한 '중간점 선점' 전략은 후순위

국회가 여야 4당 체제로 본격화된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가 각 정당별로 바뀐 가운데 자난해 12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개혁보수신당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의석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가 여야 4당 체제로 본격화된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 좌석 배치가 각 정당별로 바뀐 가운데 자난해 12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개혁보수신당 김무성 의원과 유승민 의원이 의석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2016년은 대재앙이자 커다란 악몽이었다. 시작은 새누리당 비박계 유력 정치인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되면서 불어 닥친 공천 파동이었다. 덕분에 새누리당은 4월 총선에서 1여 2야의 유리한 선거구도에도 불구하고 참패했다. 과반을 훨씬 밑도는 의석만을 건지면서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국정 동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권력의 사유화가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하늘의 계시였다. 결국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의혹이 불거지고 그것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이어지는 동안 정부와 집권여당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연인원 천만 명이 촛불로써 국가의 개혁을 촉구했고, 그 중에는 새로운 보수, 건강한 보수를 열망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 때문인지, 새누리당은 분열되어 개혁보수신당이라는 새로운 교섭단체가 생겼다.

그리고 2017년 새해가 떠올랐다. 옛것은 옛것대로 흘려보내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다. 잘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실천하기에도 더할 나위없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앞으로 빠르면 우리 정치정국은 빠르면 4개월, 늦어도 6개월 후면 대선 정국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따라서 각 정치세력들의 행보는 보다 빨라질 것이다. 보수 쪽만 보더라도 새누리당은 개혁 이미지를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고 가칭 '개혁보수신당'을 비롯하여 복수의 새로운 보수정당들이 창당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정치 일정이 대선에 임박하게 되면 지지율이 높은 후보군을 중심으로 합종연횡이 펼쳐질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뼈아픈 지난해의 기억을 곱씹으며 대변혁을 준비하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에게 이 대목에서 ‘새로운 보수’를 갈망하는 민심을 대변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정치를 생물이라 한다면 정치활동의 플랫폼과 수단을 제공하는 정당 또한 생물이다. 세계의 정치사를 살펴보면 공익을 위해서 쓰라고 준 권력을 사익을 채우는 데 쓰는 정치인들이 종종 있었다. 독직과 정경유착 등 정치 지도자의 스캔들은 정당의 존립 자체를 허물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새로운 정당들이 출현하여 집권정당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기존 정당이 철저한 개혁을 통해 국민의 신임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거대한 보수연립 정당인 일본의 자민당이 철저한 자체 개혁을 통해 록히드 사건, 리쿠르트 사건 등의 굵직굵직한 스캔들이 몰고 온 위기를 극복한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어떤 경우이건 재건의 핵심이 반성과 개혁에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이 궁극적으로 해체되어 새로운 당이 만들어지든, 아니면 자체개혁을 하든, 보수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뼈를 깎는 반성이다. 그리고 바로 그 통회(痛悔)를 제대로 된 정책정당을 만드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앞으로 5년 또는 10년 동안 야당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오십보, 백보의 책임을 두고 ‘친박’이 어떻고 ‘비박’이 어떠니 하는 소리는 국민들에게 여전히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인사의 여론 지지율이 조금 높게 나온다고 하여 그 사람의 이념이나 정책적 좌표가 어디 있는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영입에만 열을 올리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과거의 끈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인적, 역사적 청산을 통해 자유와 인권을 유린했던 군사독재의 암울한 기억과 완전히 절연해야 하고, 두 번째는 재벌과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이런 것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책정당으로서 당당하게 서기 위해서는 향후 수십 년간 전개될 경제 및 안보 상황을 미래지향적으로 철저하게 연구하여 보수주의 정당으로서 포용할 정책적 스펙트럼의 경계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 스펙트럼에 꼭 담아야 할 것은 첫 번째로 보수 본류의 기본 이념이고, 그 다음은 중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외연 확장의 전략으로서의 ‘중간점 선점’이다. 첫 번째로 말한 보수 본류의 가치를 내세워서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는 ‘대처리즘’이다.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자. 1951년 선거에서 승리한 윈스턴 처칠은 외교에만 전념하고 내치는 재무장관 리처드 A. 버틀러에게 맡겼다. 이후 버틀러와 노동당 예비내각의 상대방이었던 휴 게이츠컬 사이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형성되었다.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국유화의 기조를 유지해 나가며 복지정책을 강화해 나간다는 정책적 컨센서스였는데, 당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가리켜 ‘버츠컬리즘(Butskellism)’이라고 불렀다. 버틀러 (Butler)와 게이츠컬(Gaitskell)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었다. 1950년에서 1970년까지 전후 유럽 경제는 황금기를 누렸고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복지국가의 팽창을 견인한 것은 높은 경제 성장률과 낮은 실업률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호황이었다. 그런데 이 버츠컬리즘은 강한 노동조합을 용인하는 등 사실상 친(親)노동 정책에 가까운 것이었고 보수당의 정체성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호황기에는 드러나지 않던 보수당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된 것은 70년대 들어서였다.

영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고, 특히 150만의 실업은 전후 수십 년간 실질적인 완전고용을 구가해오던 세대에게는 하나의 재앙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동안 보수당이 포용해오던 완전고용, 혼합경제, 복지국가, 노동조합과의 광범위한 타협 등 버츠컬리즘을 송두리째 집어던지고 보수당의 원래 이념인 시장경제와 공공지출 축소, 통화주의 정책을 내세우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 마가렛 대처이다. 식료품상의 딸로 태어나 장학금으로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뒤 변호사를 거쳐 정치인으로 자수성가한 사람답게 보수당의 근본적인 가치인 근면과 자조를 내세우며 당의 정책을 우(右) 클릭했다. 국유화 정책을 포기하고 복지국가의 규모를 축소했으며, 노조의 파업을 반드시 전체 투표로 결정하게 했다. 또한 최상위층에 대한 과세비율을 7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그녀의 ‘대처리즘’은 지리멸렬했던 보수당을 강력한 정당으로 이끈 수훈갑이었으며 18년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중간점 선점’과 관련된 용어로 ‘호텔링의 법칙(Hotelling’s Law)’이라는 것이 있다. 헤럴드 호텔링이라는 경제학자가 시장에서 제조업자들이 상품을 차별화하기보다는 되도록 유사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을 말한다. 상품뿐 아니라 상품을 파는 상점에도 이 법칙은 적용될 수 있다. 일정 거리를 남북으로 쭉 뻗은 도로상에 두 개의 가게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두 개의 가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호텔링의 법칙은 이 가게들이 도로의 ‘중간점’에 서로 붙어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 경우, 한 가게는 중간점에서 북쪽에 있는 고객을 다른 가게는 남쪽에 있는 고객들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중간점 선점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또 다른 호텔링 법칙의 예는 바닷가의 백사장에 있는 두 대의 아이스크림 카트이다. 이 경우 두 카트는 중간점을 넘어 50%가 넘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가 중간점을 넘어가려는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승자는 중간점을 선점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예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만들어냈다.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이었지만.

1994년 여름 영국의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차기 당수후보로 소장파 개혁그룹 선두주자인 40대 초반의 고든 브라운과 토니 블레어가 각축을 벌였다. 블레어는 런던 근교 이즐링턴에 있는 ‘그라니타’라는 이탈리아 식당으로 브라운을 불러내 담판을 벌이면서, 노동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자신이 먼저 총리를 맡고, 그 다음에는 브라운에게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브라운은 망설였지만 자신보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블레어를 앞세우면 노동당이 총선에서 보다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 양보를 선택하고 공개적으로 블레어 지지를 선언했다. 그 유명한 ‘그라니타 밀약’이다.

노동당 당수에 오른 블레어는 브라운의 지지를 얻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추구한다’라는 노동당 당헌 제 4조를 과감하게 포기했고,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대폭 축소했다. 아울러 기업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천명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경제정책도 약속했다. ‘신노동당(new labour)’ 또는 ‘제3의 길’로 불리는 블레어의 새로운 정책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승으로 보상 받았다. 18년에 걸친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노동당 정권을 출범시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노동당의 승리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율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보수당 정권의 실정에서 일정 부분 덕을 보긴 했지만, 근본적인 승인은 노동당의 정체성까지 뿌리 채 뒤흔들면서 당의 정책적 좌표를 급격하게 우 클릭한 결과였다. 블레어와 브라운이 이렇게 과감한 개혁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중간계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노동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충성도도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수단의 공유’와 같은 낡은 원칙에 매달린다는 것은 집권을 포기하겠다는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알포드 지표라는 것이 있다. 이는 노동계급의 좌파정당 지지율과 중간계급의 좌파정당 지지율의 차이를 비교하여 만든 수치로서 노동자 계급이 좌파정당에 투표하는 이른바 계급투표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계급의 80%가, 그리고 중간계급의 30%가 좌파정당을 지지했다면 이 경우 알포드 지표는 80에서 30을 뺀 50이다. 영국의 알포드 지표는 1960년대 중반까지는 45 수준을 유지하다가 70년대 중반에는 35 이하로 떨어졌고, 80년대 초반에는 20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계급투표의 성향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블레어의 우 클릭이 성공한 이유이다.

앞에서 새로운 보수신당의 우선과제로 보수 본류의 이념 정립을, 그 다음으로 중간점 선점을 얘기했지만 사실상 두 가지 요소 중 무엇을 시간적으로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정치도, 정당도 생물이고, 환경의 맞추어야 살아남는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자면 이번 탄핵사태로 인해 보수가 너무 큰 상처를 입었기에 우선은 보수 본류의 이념을 강조하는 것이 새 생명의 동력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분당, 해체, 신당 등 어떤 절차를 거쳐도 좋지만 새롭게 형성될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이번에는 꼭 ‘제대로 된 정책정당’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글/허구생 단국대 교수·역사학 박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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