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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새싹 자르는 것도 모자라 뿌리까지 해쳐선 곤란하다


입력 2017.01.07 06:12 수정 2017.01.08 20:54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1234@dailian.co.kr)

비루하고 구차한 보수정권 최후에 국민들 진저리

검찰조사 특혜 누린 이상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한철 헌재소장 등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한철 헌재소장 등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검찰에 출두하는 피의자들이 검찰청 포토 라인에 서게 되면 기자들이 묻는다. “혐의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십중팔구 답변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이다. 그 속뜻은 ‘검찰이 증거를 어디까지 확보했는지 모르니 미리 혐의사실을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후 조사를 마치고 나올 때는 통상 기자들에게 “검찰에 성실히 답변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만큼만 자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2차 변론기일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본격 시작됐다. ‘문고리 권력’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은 종적을 감추고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나온 윤전추 행정관은 혐의사실에 대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첫 공판에서도 최순실 씨는 “억울한 부분이 많다”면서 박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등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대통령이 공모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국격을 생각해서 공소장에 최소한의 것만을 기재했다"고 역설했다.

두 법정의 공통점은 피의자들이 막무가내로 혐의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불리한 혐의 입증을 차단하기 위해 일치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피의자들의 진술을 맞추고 동선을 지휘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다는 의혹을 국민들이 갖기에 충분하다.

특권 뒤에 숨어 검찰수사 무력화하고 혐의 방어하려 해선 안돼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에 기대어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대통령이 만약 포토 라인을 지났다면 검찰은 대질심문 등 고도의 수사기법을 통해 대통령의 혐의를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국민과 헌법이 보장한 특권 뒤에 숨어서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고 본인 혐의를 방어하려 한다면 치졸하고 구차해 보인다. 기결수로 치면 ‘범털’은 고사하고 거의 ‘잡범’ 수준이다.

요즘 대권주자 여론조사를 보면, 야권의 유력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승세인데 반해 여권후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16일 22.1%로 저점을 통과한 뒤 7주째 상승세를 타고 있다. 1월4일 32.2%로 최고치를 경신한 데다 2주 연속 30%대 기록이다. 반면에 여권 선두주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해 11월23일 16.7%로 바닥을 친 뒤 힘겨운 회복세다. 4주 뒤인 12월21일 23.4%를 기록했다가 23만 달러 수수설이 터지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1월4일 21.3%로 2주 연속 하락이다. 1․2위 격차는 10.9%p로 두자리 숫자다.(알엔써치 여론조사)

지난 해 중반까지만 해도 선두를 달리던 반 전 총장이 문 전 대표에게 뒤지기 시작한 것은 최순실 사태 발발 이후다. 지금 반 전 총장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격차를 좀체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크게 볼 때 그 영향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가히 ‘박근혜 디스카운트’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요즘 박 대통령과 측근들이 탄핵 심판과 국정농단 공판에서 ‘모르쇠’와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여권 후보들에겐 악재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2번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한 실정 때문에 대권을 야당에 넘겨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폐족’ 고백이 말해주듯 종반 지지율 하락으로 보수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야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2015년 영면에 들면서 재평가를 받았고 '민주화의 전설'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도 2009년 부엉이바위 투신을 계기로 재평가 바람이 불었고 사회 약자들에게 전설이 됐다. 그 덕분에 10년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후계자들이 지금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보수정권의 비루하고 구차스런 최후에 국민들은 진저리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역사의 유구함을 믿는다면 먼 훗날 국정 역사교과서의 한 면에 어떤 대통령으로 서술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가올 19대 대선에서 보수정권 재창출이 실패하게 되면 박 대통령은 3번째 정권교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와 뒤이은 ‘버티기’ 재판 대응으로 보수 진영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권교체 대통령'으로 끝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보수 정권의 비루(鄙陋)하고 구차(苟且)스런 마지막 모습에 국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음을 읽어야 한다. 눈앞의 위기 모면에 급급해 보수의 새싹을 자르는 것도 모자라 겨울이 지나가면 새 생명을 일궈야할 보수의 뿌리마저 해쳤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국민과 헌법이 부여한 특권 덕분에 체면 구기는 일을 피하는 혜택을 누린 이상 검찰 조사와 상관없이 인정할 것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재판에도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마지막 정치적 도의며 대통령으로서 합당한 자세라는 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일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123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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