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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된 두 살배기 아들…65년 만에 만나는 이산가족 사연은


입력 2018.08.20 12:01 수정 2018.08.20 19:02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사망신고했던 형이 살아서…" 70여년 만의 형제상봉

"어떻게 살았는지 소식이라도…" 너무 늦은 이산상봉

"사망신고했던 형이 살아서…" 70여년 만의 형제상봉
"어떻게 살았는지 소식이라도…" 너무 늦은 이산상봉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19일 오후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방북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19일 오후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방북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내 아들이 맞다면 여러말 안 해도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너도 술 좋아하느냐고 물어봐야지(웃음)"

20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두 살 때 생이별한 아들을 만나는 이기순(91) 할아버지는 지난 70여 년 세월을 회상하며 눈물과 웃음이 교차했다.

이 씨는 이번 상봉행사에서 북에 있는 아들 리강선(75) 씨와의 재회를 앞두고 있다. 영영 못 볼 줄 알았던 아들이 이순(耳順)의 나이를 넘겨 자신의 딸과 함께 나오겠다니 있는지도 모르던 친손녀까지 만나게 됐다.

1·4 후퇴 때 옹진군 연백에서 형님과 둘이서 월남한 이 씨는 두살 갓난아이였던 아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이 씨의 부모님이 북한에 남아있고, 동네에 일가 친척들이 모여 살아 '어디에서 살았느냐'고 물어보면 진짜 아들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이 씨는 말했다.

이 씨는 "내 아들이 맞다면 여러 말 안 해도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다"며 "너도 술 좋아하느냐고 물어봐야지"라고 웃어보였다. 요즘에도 매일 반주로 소주 한 병 반씩 마실 정도로 술을 좋아한다는 이 씨다.

이 씨는 아들을 위해 햄 등 먹을거리와 의류, 화장품 등 갖가지 선물을 한아름 준비했다. 전쟁통에 갓 태어난 아들을 떼어놓은 아버지는 종종 눈물이 맺히고, 한스럽다.

"사망신고했던 형이 살아서…" 70여년 만의 형제상봉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군요" 이번 상봉행사에서 68년 만에 큰형님을 만나는 장구봉(81) 할아버지는 형님을 재회하는 날, 이 말이 제일 먼저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1980년대 행방불명자 신고가 의무화되면서 형을 사망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장 씨는 죽은 줄 알았던 형을 다시 만나는 게 꿈만 같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집결하는 가운데 19일 오후 북측의 조카들을 만나러 금강산으로 향하는 이관주(오른쪽), 이관국 형제가 등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집결하는 가운데 19일 오후 북측의 조카들을 만나러 금강산으로 향하는 이관주(오른쪽), 이관국 형제가 등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남 1녀 중 차남이었던 장 씨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형님과 헤어지게 되면서 장남 역할을 해왔다. 장 씨의 형님은 당시 전쟁통에 학교 담임선생님을 며칠 따라가 있겠다고 집을 나섰고, 그게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졌다.

장 씨는 다시 만나게 될 형님을 생각하며 봄 코트, 겨울 코트 수십 벌을 준비하고, 형님을 만나게 될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장 씨의 딸은 "(북측에서 아버지를 찾는다고) 연락이 와 깜짝 놀라 사진을 봤더니, 돌아가신 할머니랑 많이 닮으셨더라"며 말로만 듣던 큰아버지의 존재를 실감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았는지 소식이라도…" 너무 늦은 이산상봉

"오빠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다…" 이번 상봉에서 그리워했던 오빠 대신 새언니와 조카를 만나는 정학순(81) 씨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장 씨의 오빠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소집되고, 남은 가족들은 피난길에 오르며 헤어지게 됐다.

장 씨는 "전쟁 후 가족들을 찾아 혼자 빈집으로 돌아갔을 오빠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며 "오빠 얼굴이라도 보고싶었는데 이산상봉이 너무 늦었다”고 한탄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19일 오후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등록하는 가운데 한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들에게 줄 가족사진을 챙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1차 남측 방문단 가족들이 19일 오후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도착해 등록하는 가운데 한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들에게 줄 가족사진을 챙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행사에서 그리워하던 형 대신 형수와 조카를 만나는 임응복(77) 씨도 안타까운 사연은 마찬가지다. 형이 사망하면서 형수와 조카를 만나게 된 임 씨는 "형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디에 묻혔는지 등을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세 살배기 딸은 어느새 70대 노인이 됐고, 며칠 지나면 돌아온다던 형은 70여 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저마다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0일부터 2박3일 간 남측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을 만나는 1차 상봉, 24일부터 26일까지 북측 이산가족이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상봉행사로 남측에서 93명, 북측에서 88명이 상봉에 나서게 된다.

박진여 기자 (parkjinye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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