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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폭행, 섣부른 공분이 또다른 여혐 만든다


입력 2018.11.17 06:00 수정 2018.11.16 20:45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 tv> 여혐 남혐 이슈, 우리 사회 첨예한 화약고

<하재근의 닭치고 tv> 여혐 남혐 이슈, 우리 사회 첨예한 화약고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서울 이수역 인근의 한 주점에서 13일 발생한 이른바 ‘이수역 폭행 사건’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폭행의 정도 자체는 여느 흉악 범죄에 비해 경미해서 큰 이슈가 될 수준이 아니지만 여성 측에서 여성혐오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일이 커졌다.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중의 한 명이 14일에, 주점에서 옆 테이블 커플과 말싸움을 하던 중 주변 남성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말로만 듣던 메갈X 실제로 본다, 얼굴 왜 그러냐' 등의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조롱했다고 주장했다. 머리가 짧아서 때렸다고 해석되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불안을 건드렸고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인 호응이 나타났다. 마침 얼마 전에 머리카락이 짧고 화장을 안 했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해고당했다는 여성의 사건도 있어서 ‘짧은 머리’라는 부분도 여성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단순한 취중 시비 사건으로 묻힐 수 있었던 일이 ‘여혐 폭력’이라는 사회적 이슈로 비화된 것이다.

그런데 하루 만에 다른 주장이 나왔다. 여혐 발언을 하며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느낌의 주장과는 달리 여성 측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처음 시비가 붙었다는 옆자리 커플의 여성이라는 누리꾼이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먼저 한남 커플이라면서 조롱하고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한남’은 남성혐오적 표현이다 또, 주점 관계자도 여성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하며 남성들은 이를 피하려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CCTV 분석과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먼저 시비를 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점 안에서 최초의 신체접촉도 여성 측에서 먼저 했고, 멱살도 여성이 먼저 잡았다고 한다. 남성들은 떠나려고 했는데 여성들이 따라 가며 계속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주점 안에서 여성들이 했다는 욕설 영상도 일부 공개됐는데, 여성들은 성적인 조롱과 남성혐오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들었다고 주장한 여성혐오 발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여성혐오 폭력을 당했다는 여성의 주장에 의혹이 생기며, 거꾸로 여성들이 남성혐오적 시각으로 시비를 걸어놓고 인터넷에 여성혐오 폭력 피해자 프레임으로 글을 올려 여론몰이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들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진술해야 했고 경찰이 신고 30분 후에야 도착하는 등 경찰의 문제도 언급했는데, 경찰은 이것이 모두 거짓이라고 했다. 신고접수 5분 이내에 도착했고, 남녀를 분리해 조사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여성들의 신뢰성에 의혹이 커진 이유다. 처음 여성이 글을 올릴 때 뼈가 보일 정도로 다쳤다고 했는데 소방당국 기록에선 이 부분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짧은 머리, 외모 비하’ 발언도 첫 진술서엔 없었다고 한다.

다만 결정적 상해가 생긴 계단에서 벌어진 일은 아직 단서가 없다. CCTV가 없기 때문에 남성들이 밀치고 발로 차서 쓰러졌다는 여성의 주장과, 여성이 밀치고 당기다 제풀에 넘어졌다는 남성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어쨌든 쓰러진 이유와 별개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며 여성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여성혐오 가해 부분은 의문이 생긴 상황이다. 애초에 여성의 일방적인 주장만 믿고 여성혐오 사건이라며 공분했던 것이 너무 성급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난 후에 분노해도 늦지 않았다.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여성계가 여혐 범죄라며 공분하자, 반대 여론이 극심해졌다. 그전부터 여성계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말만 듣고 상대를 낙인찍는 일이 반복돼왔다는 불만이 크던 차에 이런 일이 터지자 반발이 터진 것이다. 급기야 여혐 남혐 대립으로 번졌다.

이럴 때 이성적 대처를 유도해야 할 지도급 인사까지 가세한 것은 문제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특별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이수역 폭행사건은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한 증오범죄’라고 규정한 것이다. 대중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심지어 신 위원장은 반대 증언과 영상이 공개된 후에도 ‘여성을 향한 증오범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쯤 되면 거의 선동의 느낌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사실관계를 따지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신 위원장은 무조건 ‘여혐 증오 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성급하게 여혐 낙인을 찍는 듯하니까 반발이 커지면서, 여혐 처단을 일삼는 여성계를 향한 또다른 ‘여혐’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관계부터 먼저 확인했어야 한다.

내용도 불분명한 취중 시비 사건이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로 발화한 이번 일에서 우리 사회에 여혐 남혐 이슈가 얼마나 첨예한 화약고인지를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불쏘시개만 던지면 폭발하는 일촉즉발의 상태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처음 올린 여성의 글이 화약고를 터뜨릴 불쏘시개가 될 만한 내용을 정확히 담고 있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계산된 선동인지를 밝히는 것이, 여혐 범죄에 공분하는 것보다 먼저다.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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