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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혼란 부추기는 '우파재건회의'


입력 2018.12.01 04:00 수정 2018.12.01 22:12        정도원 기자

특정 후보 지지한다며 '허위 의원 명단 유포'

지방선거 직후에도 전과 있어…반년새 두 번째

윤리위 회부해 일벌백계로 당 안팎 교훈 삼아야

특정 후보 지지한다며 '허위 의원 명단 유포'
지방선거 직후에도 전과 있어…반년새 두 번째
윤리위 회부해 일벌백계로 당 안팎 교훈 삼아야


구본철 자유한국당 전 의원(사진 가운데)이 재건비상행동 대변인 자격으로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구본철 자유한국당 전 의원(사진 가운데)이 재건비상행동 대변인 자격으로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통상적으로 정치권에 '큰 일'이 발생하지 않는 조용한 금요일 오후였던 30일, 자유한국당에 한바탕 큰 혼란이 일었다.

한국당 우파재건회의가 "나경원 의원을 원내대표 경선 단일화 우선 후보로 지명한다"며 "대다수 의원들은 나경원 의원을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다.

입장문에는 "나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전체 의원이 중심이 돼서 우파재건회의와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기 위해 재야와 협력해 대규모 집회를 가질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참여자 명단에는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의 정갑윤 의원을 필두로 원유철·정우택·조경태·홍문종·윤상현·김진태·이완영·정용기·윤상직·정종섭 의원 등의 이름이 올랐다.

내달 19일 치러질 원내대표 경선이 3주나 남았는데 11명의 현역 의원이 특정 후보를 실명 지지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정치의 상식과도 너무나 어긋난다.

입장문에 대한 사실 확인도 없이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한국당은 대혼란에 빠졌다.

이후 당권주자인 4선의 정우택·조경태 의원과 재선 김진태 의원은 아예 참석하지조차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용기·윤상직 의원도 지역구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

모습을 드러냈던 정갑윤·윤상현 의원 등도 서로 인사를 나눴을 뿐 입장문에 적힌 내용은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라는 반응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홍문종 의원은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 때 유기준 의원으로부터 후보단일화 양보를 받았는데, 이번에 나경원 의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정치도의에도,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회의의 성립 자체가 의문시되는 우파재건회의의 입장문 때문에 유기준·김학용 의원은 진상 파악에 한동안 법석을 떨어야 했다.

이번 사태는 나경원 의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평이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원내대표가 된 다음에 의원들과 어떤 행동에 나설 것인지는 당연히 의원총회를 통해 총의를 모아야 할 사항"이라며 "제왕적 총재를 뽑는 것도 아닌데, 누가 원내대표가 되면 대규모 집회를 할 것이라는 것을 접한 의원들은 독단적 모습에 대단히 의아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구본철 자유한국당 전 의원(사진 가운데)이 재건비상행동 대변인 자격으로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구본철 자유한국당 전 의원(사진 가운데)이 재건비상행동 대변인 자격으로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일이 발생했을까.

입장문은 우파재건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구본철 전 의원이 일방적으로 낭독했다. 발표 현장에 이름이 거명된 현역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구본철 전 의원은 지난 2008년 4·9 총선을 통해 인천 부평을에서 당선됐으나, 이듬해 1월 15일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400만원 확정 판결이 났다. 의정 활동을 한 기간은 실질적으로 만 1년도 되지 않는다.

당시 구 전 의원은 KT 상무대우로 재직했는데도 홈페이지에 '상무'라고 기재했으며, 직전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 선대위 산하의 한 위원장직을 맡았음에도 총선 선거공보에 마치 중앙당 선대위 산하 기구인 한나라당 첨단산업위원회의 위원장을 수행했다는 듯이 게재해 발송한 행위가 공직선거법상 허위 이력 기재로 인정됐다.

'허위 이력 기재'라는 법적 전과뿐만 아니라 '허위 의원 명단 유포'라는 정치적 전과도 있다. 구 전 의원은 불과 5개월여 전인 지난 6월 13일, 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마자 재건비상행동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기다렸다는 듯이 당사 선거상황실을 점거했다.

재건비상행동 명의로 홍준표 전 대표의 즉각 사퇴를 주장하며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로 이주영·원유철·나경원·정우택·유기준·박맹우·이완영·정양석·김성원·윤상직·정종섭 의원의 이름이 오른 명단이 배포됐다.

이 때에도 이들 의원들은 뜻을 함께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이주영·나경원·정우택·유기준·김성원 의원 등은 한밤 중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급히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돌려 "사전에 전혀 전달받은 바 없는 내용이니 명단에서 이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촌극을 벌여야 했다.

언제까지 재건비상행동이니 우파재건회의니 하는 그럴듯한 간판만 바꿔다는 일부 원외 세력이 전체 보수우파의 혼란을 부추기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지켜봐야 할까.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뒤, 명단에 이름이 올라 홍역을 치렀던 한 의원은 "안 되는 집안에 도둑이 들 때는 개도 짖지 않는다고, 당 꼴이 얼마나 우스워졌기에 이런 일이 거듭 일어나느냐"라고 개탄했다.

유기준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월요일(3일)에 법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내 경선에서 일어난 일을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게 되면, 불과 반 년 사이에 두 차례 반복된 '허위 의원 명단 유포'가 중대한 국면에서 언제 또 반복될지 모른다.

앞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원내대표 경선이 다가오니 어떻게든 계파 대결 구도를 살려 덕을 보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은데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며 "비대위와 비대위원들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금이야말로 경고를 실천에 옮길 때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미증유의 현역 의원 실명 지지 선언 명단을 허위로 날조한 행위를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추상과 같은 단죄를 통해 당 안팎에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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