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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여혐 마녀사냥의 피해자인가


입력 2018.12.06 08:30 수정 2018.12.06 08:18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방법론 과격해 의도와는 달리 정반대 효과 낳아

<하재근의 이슈분석> 방법론 과격해 의도와는 달리 정반대 효과 낳아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래퍼 산이가 여혐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산이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왜곡된 짜깁기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라고 했다. 자신은 여성혐오, 남성혐오를 모두 반대하고, 남녀가 서로 존중하자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최근 산이에 대한 보도가 편향적이었던 건 맞다. 산이 소속사 합동 공연에서 일부 여성 관객들이 먼저 산이에게 남성혐오 표현을 하며 적대행동을 했고, 산이가 “나는 여러분이 좋다. 혐오 대신 사랑으로 함께하자”고 했지만 여전히 적대반응이 나오자 산이가 “네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내가 존중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한 것이다.

산이는 “여러분이 돈 주고 들어왔지만, 음식점에 왔다고 음식점에서 '깽판' 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청중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당시 공연은 다양한 팬들이 함께 모인 연합 공연이었는데 일부 청중이 과도한 행동으로 분위기를 흐렸다.

산이가 “여기에 워마드, 메갈 분들 계시냐”며 “너네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저는 정상적인 여자 분들을 지지한다. 남성혐오를 하는 워마드, 메갈” ... "페미니스트 NO, 워마드, 메갈은 사회 악"이라고 하자 일부 청중이 ‘사과해!’를 외치면서 콘서트가 잠시 중단됐다고 한다.

이 말도 표현이 과격하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워마드 등에서 나타나는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언행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 사건을 매체들은 ‘산이가 또 여혐 발언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페미니스트 NO’ 발언에 대해서도 산이는 ‘워마드, 메갈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매체는 ‘페미니스트를 반대한다’는 의미로 말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러니 산이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이가 오해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이번 콘서트에서 일부 대중이 산이를 공격한 것은 이수역 폭행 사건 당시 남혐 여혐 논란의 와중에 산이가 발표한 ‘페미니스트’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 노래엔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여성들을 공격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의 주장을 비난하는 논리를 집합해놓은 듯한 가사였다. 당연히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그때의 반발이 최근 콘서트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산이는 그 노래에 대해 당시에 이미 해명했다며 억울해한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이 아닌, 페미니스트라며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그들을 비판하는 가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사 자체로만 보면 영락없는 여혐 노래이기 때문에 청자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해명을 보다 충분히 하고, 행동으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보여야 해당 노래가 산이의 속마음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미흡했고, 노래 발표 직후엔 여성혐오 입장에서 다른 래퍼와 맞디스전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일시적 인기 얻기 위해 열심히 트윗질 채굴 페미코인’이라는 대목에서 산이가 페미니즘 진영 전체를 조롱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직전 노래 ‘페미니스트’와 연결되면서 여혐 래퍼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일부 여혐 세력이 산이의 행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콘서트 사태를 겪은 후 신곡 ‘웅앵웅’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웅앵웅’이란 말은 인터넷에서 여성혐오 성향의 누리꾼이 여성들의 주장을 싸잡아 비하할 때 쓰는 혐오 표현이다. 이 노래 가사 중엔 ‘쿵쾅쿵’이 나오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산이는 이에 대해 여성 일반이 아닌 일부 극단 세력만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겠지만, ‘웅앵웅’, ‘쿵쾅쿵’이 현실적으로 그보다 더 폭 넓게 여성주의 일반의 주장에 쓰인다는 게 문제다.

본인은 남성혐오, 여성혐오를 모두 반대한다면서 정작 노래 가사엔 여성혐오 표현을 쓴 것이다. 이러니 오해가 생긴다. 애초에 일베 등의 여성혐오가 잘못됐고, 그것을 미러링한다며 남성혐오 표현을 일삼은 워마드 등도 잘못했다. 이 현상을 진정시키려면 그런 극단적이고 적대적인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산이는 말은 그러지 말자면서 노래로는 공격적인 혐오 표현으로 사람들을 자극해 혐오 대립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니 산이가 억울하다고 해도 공감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뮤지션이 사회이슈에 과감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덕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사랑타령 일변도이기 때문에 산이의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 다만 그 방법론이 과격해 오해 받기에 좋고, 본인 의도와는 달리 정반대 효과(혐오 대립 조장)를 낳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남녀 혐오 모두를 반대한다는 산이의 말이 진심이라면, 이젠 산이를 보다 관대하게 봐줄 필요가 있다. 합동 공연에서 혐오 표현으로 산이를 공격하고 공연 분위기를 망친 것 같은 관객 행동도 사라져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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