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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만 있다면…”


입력 2018.12.17 09:00 수정 2018.12.17 08:51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탄핵 정국에서 그대는 뭘했나

댓살배기도 대신 맞겠다는데…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탄핵 정국에서 그대는 뭘했나
댓살배기도 대신 맞겠다는데…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 권력구조와 관련되기 때문에 원포인트 권력구조 개헌과 함께 논의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며 “폭탄 돌리기처럼 하지 말고 정식으로 의원 정수를 얼마로 늘릴지, 권력구조와 관련된 것이니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 권력구조와 관련되기 때문에 원포인트 권력구조 개헌과 함께 논의한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며 “폭탄 돌리기처럼 하지 말고 정식으로 의원 정수를 얼마로 늘릴지, 권력구조와 관련된 것이니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자유한국당의 인적쇄신 과정에서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게 된 어느 의원의 술회가 눈길을 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라는데 유튜브에서 읽었다.

“할 말이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의 분열, 두 분 대통령 구속, 대선 참패에 저도 책임이 있다. 과거 친박으로서 이런 식의 3중 처벌로라도 책임지라면 기꺼이 책임지겠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정이라면 따르겠다. 변명할 생각이 없다. 큰 책임 작은 책임 따질 생각도 없다. 크게 책임을 물으면 크게 책임을 지겠다. 당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고 총선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잃어버린 정권을 다시 찾아올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받아들이겠다. 반문연대의 단일대오를 구축해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내는데 온 몸을 바쳐 당을 위해 헌신하겠다.”

탄핵 정국에서 그대는 뭘했나

다른 한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당을 살려야 한다는 선당후사의 간절한 심정으로, 당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저는 앞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자유한국당의 미래를 위해 성찰하고 고민하면서 더욱 정진해 나가겠다.”

자유한국당으로 하여금 몰락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책임은 그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물론 잘못된 길을 고집한 사람도 있고, 그걸 말린 사람도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책임은 전체 구성원의 몫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걸 이들처럼 시인하고 반성의 뜻을 밝히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했으니 이야말로 용기다.

반면에 억울함‧분노를 삭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당 개혁 운운할 때부터 나를 교체명단에 집어넣을 것으로 예상했다. 내가 친박 대표 인물인데 나를 어떻게 빼놓을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이번 발표로 비상대책위원회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의 주인은 우리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고, 하루 이틀 더 생각해 보고 추후 행보를 결정하겠다.”

“20대 총선 때 정책위의장을 했다고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물리는 것 같은데, 정책위의장이 왜 그런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지금 이 시기에 그런 책임을 물리는 자체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앞으로 진행 상황을 지켜보겠다.”

“당에 주인이 없으니 객들이 들어와 당을 망가뜨리고 있다. 당이 흘러오거나 투쟁해 온 과정이나 당내 미묘한 역학관계 지형을 전혀 모르는 분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친박의 대표 인물’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형사소추 및 재판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특별히 듣고 본 기억이 없다. 대통령은 그 직을 잃었지만 이분이 의원직을 내놨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조강특위 위원이 아니라 한 우파시민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댓살배기도 대신 맞겠다는데

중국 선진(先秦)시대에 유가와 쌍벽을 이뤘던 학파가 묵가였다. 겸애‧비전론으로 특히 유명한 학파다. 언젠가 이 난에 인용했던 일화를 다시 소개해야 하겠다. 묵가의 거자(鉅子: 영도자)로 맹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형나라(초나라)의 양성군과 막역한 사이였다. 어느 때 양성군이 죄에 몰려 도망가면서 성을 맹승에게 맡겼는데 그걸 잃을 처지에 놓였다. 맹승은 자결로 친구에게 사죄하려 했다. 제자 서약이 극구 만류했으나 맹승은 단호했다.

“우리가 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훗날 누가 우리 묵도(墨徒)에게 배우거나 친구가 되려 할 것이며 누가 군신의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냐.”

제자 서약이 스승을 위해 명부(冥府)의 길을 열겠다며 먼저 죽었다. 맹승은 송나라의 전양자에게 거자의 자리를 넘겨주는 편지를 보내고 뒤따라 죽었다. 제자 83명이 그와 함께 했고 송나라에 심부름을 갔던 두 제자도 돌아와 스승의 뒤를 따랐다. 물론 극단적 사례다. 묵가는 후에 명분론에 치우쳤고, 신앙결사체로 변모했다. 그 때문에 오래지 않아 학파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그렇지만 이들을 모르면서 ‘신의’를 논하지는 말 일이다.

책임질 입장에 있지 않았다는 분에게는 ‘천하흥망필부유책’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렇게 말하기로 들면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모두의 책임’이자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인식할 때 자유한국당은 쇄신을 통해 거듭날 수 있다. 설령 자신의 책임 몫이 동료의 그것보다 적다고 여겨지더라도 당의 중진이라면 오히려 앞나서서 떠안아야 할 텐데 그는 앙앙불락하는 언급을 했다.

(우리 나이로 네댓 살 난 누이가 예닐곱 살짜리 제 오라비 앞을 가로막으며 엄마에게 빌었다. “오빠를 때리지 마세요. 저를 때려주세요.” 삼십 수년 전에 들은 실화다. 언제나 제 멋 대로인 오빠였는데, 누이는 그래도 보호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객’들이 와서 당을 망가뜨렸다고 했는데, 그 때 더 망가질 뭐라도 남았었던가? 자유한국당은 20대 총선에서 180석까지 넘본다고 했었다. 그러다 원내 제1당 지위를 당시의 야당에게 넘겨줘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안 정권 자체가 와해의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차례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도 회생의 기미는 없었다. 당 출신 대통령을 탄핵으로 잃고, 이어 실시된 대선에서는 예정된 패배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참담한 패배를 겪었다.

한국당은 당분간 대표 대행체제로 버티다가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비대위원장 추천위원회라는 것까지 만들어가며 안간힘을 쓴 끝에 지금의 비대위원회가 구성됐다. 외부인사, 그러니까 ‘객’에게 위원장 자리를 맡긴 것이다. 내부 인사 어느 누구도 위기 돌파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객’을 불러들인 것 아니던가.

그 비대위가 당의 정상체제 회복을 위해 전당대회를 준비하면서 조직강화특위를 또 ‘객’들로 구성했다. 역시 당내 인사들로서는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남이 강요한 일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의 주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스스로 그렇게 결정을 내렸고 ‘남’에게 일을 맡기지 않았는가.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가?

‘객’과 ‘주인’의 구분도 기실은 옳지 않다. 한국당은 넓게는 국민의 정당이고 좁게는 보수우파 유권자들의 당이다. 그렇다면 주인은 누구인가. 스스로 주인을 자처한 사람들이 진짜 주인의 뜻을 거스르고 사적, 집단적 이익에 집착했기 때문에 결국 버림받은 신세가 된 것을 기억못한다면 그 건망증은 예사롭다 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눈에 한국의 보수우파 정당은 지속적으로 자살을 기도하다가 그나마 ‘객’들을 만나 회생의 계기라도 잡았다고 보는데 이게 잘못된 생각일까?

객들이 당을 어떻게 ‘망치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조강특위가 예상 이상의 현역 의원들을 당협위원장직에서 배제한다고 결정한 게 당을 망치는 일이라는 것일까? 이른바 ‘인적 쇄신’은 시도조차 말아야 했다는 것인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탈락시켜야 했다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역 의원들을 다치게 하면 당을 망치는 일이고 원외 위원장들만을 솎아내는 것이 당을 쇄신하는 길이라고 정말 믿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겹치면서 보수우파 및 중도파 유권자들이 잠간씩이라도 자유한국당에 눈길을 주기 시작하자 금방 절박한 위기감을 내팽개치는 분위기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한다더니 지금의 경우가 그렇다. 비대위는 당의 정상화를 위해 마지막 정지작업, 그러니까 2월말에 새로운 지도부가 등장할 수 있는 길을 닦는 중이다. 조강특위는 비대위의 위임에 따라 그 과업 중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 ‘객’으로서가 아니라 우파 국민으로서 ‘우리의 당’을 살리는 작업으로 여겨 매달려왔는데 그 일이 당을 망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는 기분이 참으로 고약하다.

다 물갈이를 할 수가 없으니 상징성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인적쇄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양보할 사람이 있어야 새로 진입할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정치는 특정인의 전유물일 수가 없다. 정당의 주요 책무 및 기능의 하나가 정치적 충원이다. 정치권, 특히 의회는 참신한 새 인물을 필요로 한다. 정당이 그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번에 당협위원장직을 못 맡게 된다고 그 사람의 정치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건이 불리해질 뿐 도전의 의지가 방해받을 일은 없다.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비대위원회가 끝난 후 “(교체 명단에 오른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 (21대 공천에서) 구제될 수 있는 길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결정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던데 그게 정답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이상의 공천 전략은 있을 수 없다. 다만 현역 의원만이 당의 소중한 인적 자원은 아니라는 점 또한 강조돼야 한다. 원외에도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 그들과 경쟁에서 이길 때 공천의 길은 열린다는 것을 유념할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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