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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정착의 조건에 대한 혼동 극복해야


입력 2019.01.28 08:30 수정 2019.01.28 08:19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북 친화정책에 올인하나

‘우리민족끼리’는 함정이다…대통령은 한국 국익 지켜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북 친화정책에 올인하나
‘우리민족끼리’는 함정이다…대통령은 한국 국익 지켜야


지난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이 경제보다는 북한에 더 쏠려 있는듯하다는 자료가 제시됐다. 자유한국당 여의도연구원과 박성중 의원실이 27일 내놓은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짐작하자면 그렇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청와대 외부에서 33건의 북한 관련 일정을 가졌다. 이에 비해 경제 현장 관련 일정은 그 절반 수준인 18건에 불과했다. 전체 국내 일정 230건 가운데서 북한 관련 일정의 비중은 14.3% 수준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을 가지고 그의 정치적‧정책적 선호 순위와 비중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추론은 가능하다. 한국당 측의 여러 분석자료 가운데 유독 이 부분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간의 느낌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유난히 북한에 경도된 모습을 보여 왔고, 그걸 빅데이터 수치가 뒷받침해 줬다고 할 수 있다.

대북 친화정책에 올인하나

2002년 5월 28일 인천 부평역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인천이 복 받으려면 남북대화가 잘 돼야 한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시키면 다 깽판쳐도 괜찮다”고 역설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세계를 돌면서 북한 김정일 정권을 역성들고 변호했다. 그리고 그것을 김정일 앞에서 자랑하듯 말했다.

그의 정치적 동지였던 문 대통령이 지금은 후계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대북정책에 관한 한 오히려 노 전 대통령을 앞질러 질주하는 양상이다. 오직 그가 판단하고, 그가 결정하고, 그가 결행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북한의 핵무장으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통령의 책무다. 자연 대통령의 외부일정에서도 북한에 무게가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가 실제로 보여주는 바는 아주 다르다. 북한 혹은 김정은 편향성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이른바 ‘북핵 외교’의 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미국과의 사이에선, 갈등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결기를 보인 반면 북한 김정은에 대해서는 극도로 조심하고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 때문에 문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경제보다는 북한에 더 기울었다는 통계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한계선상에서 허덕인다는 신음소리가 높다. 기업활동은 위축일로에 있는 반면 노동자단체의 압력은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정부는 돈쓸 일을 욕심껏 만들고 있는데 국민과 기업의 담세능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이는 분명히 국가적 위기상황이고, 당연히 대통령의 위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마음은 그렇게 절박한 것 같지 않다. 문 대통령 또한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건 다 깽판쳐도 된다’는 생각일까?

남북문제 혹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 좌파들에겐 ‘민족’이 사고의 시발점이고 지고의 가치다. 그래서 ‘민족 공조’ ‘민족 자주’ ‘외세 배격’ 따위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산다. 용어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문제는 ‘민족’에 대한 혼동이다. ‘민족’이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좌파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민족지상주의에는 의도성이 짙게 배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민족끼리’는 함정이다

△북한의 김씨 3대 세습왕조는 역사적 세계적 기형 체제다. △김정은 정권은 현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폭력집단이다. 잔인한 인권유린을 통해 주민들의 공포심을 유발하고 그것을 정권의 존립 기반으로 삼고 있다. △김정은 집단은 주민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 지배집단의 이익을 위해 주민의 피해를 강요할 뿐이다. △북한 주민의 이익은 김정은 집단의 폭정이 종식될 때에만 구현될 수 있다. 북한 지배그룹과 일반 주민은 동일한 민족집단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민족’이 어느 쪽인지는 불문가지다.

작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감격에 겨워하면서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고 했던 김정은과 그 연설을 들으며 환호해야 했던 15만 군중 가운데 우리 동포는 후자다. 우리가 다시 얼싸안아야 할 동포, 우리가 함께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가야 할 겨레, 우리가 자유를 구가하며 세계를 향해 당당히 손잡고 나아가야 할 피붙이는 김정은과 그 추종세력이 아니라 북한의 2천 수백만 동포들임을 정부도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의 문제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조건에 대한 혼동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선의’가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해 줄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선의를 가졌든 악의를 가졌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체제의 속성이 바뀌어서 그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는가에 한반도의 군사적 현실이 좌우된다. 지속적인 폭력과시를 통한 공포의 일상화로서만 북한 체제는 유지된다. 그러니까 지배세력의 폭력성, 피지배자들의 공포감이야말로 북한체제를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현 체제가 존속하는 한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민족이익에 대한 혼동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이념적 성향이 어떤 것이든 전 국민의 이익을 대표한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정권 그 자체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북한 주민 대다수의 이익은 배제된다. 우리 5천만 국민의 이익과 김정은의 이익이 등치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족자주에 대한 혼동 또한 문제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들은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 ‘민족 자주적 평화 통일’ 등을 운위해 왔다. 이른바 ‘외세’는 한반도 문제에 간여하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한 언설이다. ‘우리민족끼리’ 논의해서 해결할 문제에 왜 외세가 끼어드느냐는 반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제기되었다. 심지어 6‧25는 김일성의 민족해방전쟁이었는데 외세가 개입해서 그 길을 막았다고 떠드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우리 안에서! 외세가 배제된 상태에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는 민족구성원간의 내분이거나 내전이 된다. 그 와중에 대량학살이 일어나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점령 통합해도 외세가 개입할 명분은 없다. 이것이 ‘우리민족끼리’의 함정이다.

한‧미동맹, 주한미군의 의의를 굳이 되짚어볼 필요성을 느끼는 이즈음이다. 지금 한미양국은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9602억 원인 부담금을 미국 측이 12억 달러(한화 약 1조3500억 원)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느니, 10억 달러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느니 하는 보도들이 있지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대통령은 한국 국익 지켜야

중앙일보가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11월 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에게 12억 달러를 요청했다는 보도를 했는데,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같은 날 이를 부인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지만 조건이나 금액 등 구체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고 한 문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보도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김 대변인은 덧붙였다.

그런데 분담금 이전에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혼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군은 외세다. 그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자주국가로서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전쟁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고 북한은 주장한다. 우리 안에도 그 동조자들이 없지 않다. 그러면서 진보좌파 정권에 의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기울여졌을 때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의 단초가 마련된 듯이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말은 바로 해야 한다. 휴전이후 65년 반 동안 전쟁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덕분이었다. 지금도 다를 바 없다.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 친화정책이 평화를 보장해 주고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남침의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이걸 왜 굳이 숨기고 왜곡하려 하는가.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 위협에 대한 저지력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쟁 억지력이기도 하다. 북한을 위해서도 주한미군은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돕는 기분으로 분담금 협상에 임할 만도 하지 않을까. 주한미군을 대체할 방어력을 갖추려면 얼마나 비용이 들 것인지를 계산해 보면 미국과 사이에 윈-윈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질 것도 같은데?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냉전시대 만큼의 전략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예고되고 있는 제2차 미‧북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만의 이익 합치점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트럼프는 한국이 아닌 미국의 대통령이다.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의 후견인들이 아니다. 미국에 중요한 것은 미 국익이고, 북한에 중요한 것은 김정은의 이익이다. 트럼프가 문 대통령의 이익을 대표해 줘야 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문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해주려 하겠는가.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켜야 할 주체는 한국인이고, 그걸 대표하는 사람은 문 대통령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 인식에서의 ‘혼동’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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