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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의 권세에 따라 유공자 여부도 바뀌는 것이 과연 나라인가


입력 2019.02.07 06:00 수정 2019.02.07 06: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서정욱의 전복후계> 선정기준, 정권 입맛 따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나?

보훈처, 손혜원 부친 손용우 선정사실 적극 홍보하지 않고 오히려 은폐?

<서정욱의 전복후계> 선정기준, 정권 입맛 따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나?
보훈처, 손혜원 부친 손용우 선정사실 적극 홍보하지 않고 오히려 은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일 수 없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에 국민들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 되고 미래가 될 것입니다."

문 대통령의 작년 현충일 추념사의 한 구절이다. 그런데 손혜원 의원의 부친 손용우씨(일본식 이름: 天日正雄)의 경우를 보면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고,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고 분노가 치민다.

'국가유공자 선정도 후손들의 권력과 지위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 이것이 과연 '나라다운 나라냐'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로 손씨의 국가유공자 선정은 반드시 취소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근본적인 문제로 국가유공자 선정기준을 정권의 입맛에 따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보훈처는 2017년부터 연구용역과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에 따라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분'의 경우에는 포상할 수 있도록 2018년 4월 심사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심사기준은 국가 보훈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해야지 보훈처가 내규에 의해 임의로 정할 사항은 결코 아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국가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인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 특히 국민의 기본권 실현과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법률의 유보와 관련하여 소위 '본질성설(중요사항 유보설)'을 취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보훈 대상자의 기본권 실현과 직접 관련되는 선정기준은 당연히 국회의 입법사항이다. 그런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도 아니고 사실상 아무런 법적 통제도 받지 않는 내규로 정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국회는 이 점을 명심하여 다시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선정기준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바뀌지 않도록 국민의 여론을 철저히 수렴해 구체적인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바뀐 기준에 의하더라도 과연 손씨가 이에 부합하는가의 문제다.

손씨가 광복 후 조선공산당 공산청년동맹 서울지부 청년단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은 팩트며, 실제 이후 남로당 활동을 했다는 수많은 의혹이 있다. 그런데 박헌영에 의해 주도된 남로당은 자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끝까지 반대하며, 6·25 전쟁 등에서 빨치산 활동 등 자유 민주체제 전복을 위해 투쟁한 당이다. 이러한 당의 인사들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여 국민의 혈세로 생계를 지원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박헌영도 독립유공자로 예우해야 하는가?

보훈처는 손씨의 활동 이력 중 남로당 관련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단지 "공산 치하의 부역 활동 사항은 발견치 못했다"고 했다. 또한 "손씨의 광복 후 조선공산당 관련 활동은 확인이 됐으나 남로당 활동 여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고 했다.

즉, 손씨 측이 1985년 제출한 인우보증에 따르면 전직 경찰인 이모씨는 “손용우는 해방 후 좌익 학생운동을 하다가 이후 전향해 자신 수하에서 이OO 형사와 연결되어 사찰 요원으로 활동. 6·25 당시 본인 지시로 서울에 잔류해 정세를 관망했으며 그가 제공한 정보로 부역자를 소탕함”이라고 진술했지만, 이는 ‘6·25 당시 북한 중앙정치국과 재접선 활동 후 남한에 잔류했다(성북경찰서장, 1990년)’, ‘6·25 당시 조선노동당 가평군 설악면 세포책으로 활동했다(치안본부, 1986년)’는 당국의 기록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씨가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은 분'인지 여부에 대해 보훈처도 정확히 모른다는 의미가 아닌가? 공산 치하의 부역 활동 사항을 발견치 못했다고 해서 손씨가 북한정권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보훈처는 1982, 1985, 1989, 1991, 2004, 2007년 총 6차례에 걸쳐 손씨 측의 신청에 대해 ‘입증 자료 미비’ 혹은 ‘광복 이후의 행적’ 등으로 기각했는데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무슨 새로운 조사를 했는지, 어떠한 사정변경이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손씨의 경우는 동일한 상황에 있는 다른 신청자들과의 형평성에도 명백히 반한다. 조사위의 '광복 후 행적 불분명으로 인한 미포상 인물' 13명 중에 단순히 6·25 당시 행방불명이 됐다는 이유로 포상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이것이 과연 형평에 맞는가?

보훈처는 이제 와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다른 분들도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앞서 왜 손씨만 어떠한 심사도 없이 먼저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철저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한편 손 의원은 "그동안 가족들이 말을 안 해줘 부친이 여운형 선생의 비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2018년 1월쯤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부친의 행적도 전혀 모르고 6번이나 신청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몽양의 경우 '근로인민당'을 조직해 활동했는데 이 분의 비서가 왜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에서 활동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몽양의 경우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는데, 그렇다면 왜 몽양의 비서인 손씨는 2007년 노무현 정권 때도 탈락하고, 또 왜 그동안 11년이나 신청하지 않았는지도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손씨가 과연 몽양의 비서였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셋째, 실체적으로 손씨 선정의 정당성 여하를 떠나 그 과정이 과연 투명하고 공정했냐의 문제다.

자유한국당의 조사에 의하면 손 의원은 2018년 2월 6일 피우진 보훈처장과 보훈예우국장을 국회로 불러 만났고, 일주일 전에는 자신의 부친에 대한 심사 결과와 기준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국장이 최소 두번 이상 직접 국회를 방문하여 진행 과정을 직접 설명했다. 그리고 결국 수많은 행적 불명자 중에서 혼자 유일하게 선정됐다.

이것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한 선정 절차인가? (영부인과 고등학교 동문으로 절친인) 여당 실세 의원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보훈처가 찾아가서 설명하고 전화 한통으로 선정되고, 그렇지 못한 부모는 자식들이 아무리 문턱이 닳도록 보훈처를 찾아가도 결국 탈락하는 것이 과연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인가? 손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넷째, 심사기준이 바뀌기도 전에 손 의원은 어떻게 미리 알고 가족들에게 전화로 신청하라고 말했느냐의 문제다.

손 의원의 동생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초 누나가 큰형에게 '아버지 독립 유공자 포상을 신청하라'고 했다"며 "이미 여섯 번이나 떨어졌는데 또 신청하라고 해서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의원인 누나가 신청을 하라고 하니까 다들 '뭐가 있나 보다' 짐작만 했다"며 "유공자로 인정되면 형제들에게 100만원 안팎 돈도 나오고 혜택이 있는데 누구도 자세히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가족들까지 의아하게 생각해 신청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손 의원이 신청을 하라고 하니까 다들 뭐가 있나 싶어서 했다는 것이다. 애족장은 본인에게 매달 240만6000원, 본인 사망 시 유족에게는 배우자 151만8000원, 배우자 외 유족은 148만3000원이 지급되는데 이 때문에 누구도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손 의원과 보훈처간에 미리 묵계가 있었다는 강한 합리적 의심이 아닌가? 만일 묵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여섯 번이나 탈락했음에도 기준이 바뀌기 4개월 전에 단지 전화로 신청할 수 있는가? 손 의원과 보훈처는 정당한 절차를 따랐다고 무조건 강변만 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왜 보훈처는 손씨의 선정사실을 적극 홍보하지 않고 오히려 은폐하려고 했느냐의 문제다.

작년 8월 17일 보훈처의 홍보자료에 의하면 "개선된 심사기준으로 포상 받게 된 독립유공자,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라는 제목하에 "최소 수형 기준 3개월 폐지, 독립운동으로 퇴학당한 경우 학생신분 고려해 포상, 실형 사실 없어도 독립운동 활동이 분명하면 포상 고려" 등 세 가지 기준을 발표했다.

그리고 위의 기준에 해당하는 인물로 강진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2개월 10일' 옥고를 치른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서정시로 항일의식을 표출한 김윤식(김영랑), ‘혁명가족’ 이회영 일가의 안주인 이은숙, 서간도 무장투쟁을 지원한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보훈처의 홍보자료 어디에도 '사회주의 기준 완화'나 '손씨의 이름'이 없다. '사회주의 기준 완화'는 보수와 진보진영 간 가장 큰 쟁점이었고, 애족장 수상자 51명 중 손씨를 포함해 2명만 문 대통령이 직접 수여했는데 이를 뺀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결국 투명한 논의와 사회적 동의가 없이 졸속으로 기준을 변경하고 투명한 심사 절차도 없이 선정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여 고의로 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손씨의 독립유공자 선정은 해방 뒤 행적과 여섯 번이나 거부됐던 이유, 보훈처 내규의 개정 및 유공자 선정 과정, 문 대통령의 친수(親授) 결정까지 모든 것이 의혹투성이다. 부정청탁과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통해 국민 앞에 투명하게 소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독립유공자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독립유공자 1만 5,000여 명 전체를 대상으로 공적을 전수 조사하는 등 철저히 검증할 계획입니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면 서훈 취소와 예우금 등의 환수조치를 통해 정부포상에 대한 신뢰 회복은 물론, 독립유공자와 그 유가족의 자긍심을 제고할 계획입니다."

보훈처가 발표한 올해 업무계획인데, 만약 손 의원의 부친이 여기서 빠진다면 '애국과 보훈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보훈처는 지금이라도 손씨에 대한 유공자 선정을 취소하고 예우금 등을 환수해야 한다.

이것만이 최대 3백만명 이상으로 추정됨에도 현재 약 1만 5000여 분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예우받는 현실에서 탈락 유공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만이 진짜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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