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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규제파문, 하태경은 전두환을 몰랐을까


입력 2019.02.20 08:23 수정 2019.02.20 08:24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정치권, 정치적 비난에 이용하는 것 자제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정치권, 정치적 비난에 이용하는 것 자제해야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결국 여성가족부가 백기를 들었다. 여성가족부가 만든 ‘성 평등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에 비난이 폭주하자 문제 부분을 수정 또는 삭제하기로 했다. 바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가 언급된 부분이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합시다’라며 ‘대부분 출연자들이 아이돌로 음악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다양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돌은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며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획일성이 심각합니다’라고 안내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부가 왜 아이돌 외모까지 규제하느냐, 아이돌 외모를 팬한테 맞춰야지 정부한테 맞춰야 하느냐, 아이돌도 각각 차별성을 확보하려 노력하는데 여가부 장관이 구분 못하면 획일적인 거냐’고 비난했다. ‘여가부가 완장을 찼다’는 말도 나왔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은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입니까? 음악방송에 마른 몸매, 하얀 피부, 예쁜 아이돌 동시 출연은 안 된답니다.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릅니까? 왜 외모에 대해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합니까? 외모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습니까? 닮았든 안닮았든 그건 정부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고 국민들 주관적 취향의 문제입니다. 진선미 장관은 여가부가 왜 없어져야 하는지 웅변대회 하는 것 같습니다”라며 “방심위는 인터넷 검열, 여가부는 외모 검열! 적폐 청산이 모자라 민주주의까지 청산하고 있습니다. 문 정권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부르는 일부 한국당 의원들과 뭐가 다릅니까? 반독재 투쟁 깃발을 다시 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여가부의 안내서 내용이 이상하긴 했다. ‘성 평등’ 안내서라면서 음악방송 출연자의 외모는 왜 문제 삼은 것일까? 드라마에서 잘 생긴 캐릭터가 부각되는 걸 지적하는 부분도 있었다. 문체부 계통의 방송문화 토론회에서 나올 법한 얘기를 여가부가 과도한 ‘오지랖’으로 건드린 것 같기도 하다. ‘산하 연구원 같은 곳에서 지적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정부 부처 이름까지 걸고 발표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니까 여가부의 행동이 이상하긴 한데, 그에 대한 반발이 너무 과도했다. 왜 아이돌 외모를 규제하느냐고 들끓었는데, 이번 안내서 내용은 아이돌 외모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였다.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런 가치가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강제하긴 힘들다. 이걸 ‘묻지마’로 강제하면 문제다.

그런데 여가부는 강제 안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강제할 힘도 없다) 제작현장에서 여가부 권고를 참고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보통은 무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아니라 ‘여가부가 담론장에 의견을 제시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한 일이었다.

하태경 의원의 반발은 황당하다. 군사독재 시절의 검열과 비교하며 ‘민주주의가 청산된다’고까지 주장하고, ‘여자 전두환이냐?’, ‘반독재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은 전두환 신군부의 지침과 검열이 어떤 것인지 몰랐을까? 독재정권의 지침과 검열은 정말 서슬 퍼런 것이었고, 어길시 정보부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반면에 이번 여가부 권고안은 무시해도 그만이고, 실제로 현장에서 무시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 정도를 어떻게 전두환 정부 시절과 비교한단 말인가?

과도한 정치공세다. 하태경 의원이 군사독재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사람이라면 모르고 주장했을 수 있지만, 하 의원은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하 의원이 여가부가 정말 전두환 정권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이유다.

이번 여가부 권고안이 그리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여가부는 여성단체들의 담론을 주로 반영하는데, 여성계에서 과거부터 대중문화 표현에 보수적인 또는 비판적인 의견을 내왔다. ‘여성단체가 지적하고, 제작현장은 무시하고, 누리꾼은 반발하는’ 이런 패턴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거기에 대해 담론장에서 논의하거나 비판할 수는 있지만, 독재 검열 운운하는 것은 과도하다.

여가부 때리기가 유행이 되면서 여가부 산하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보고서 내용까지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원래 그런 관점에 입각한 보고서를 내는 곳이고, 그것이 실제 제작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강력한 지침인 것처럼 왜곡하는 보도까지 나왔다.

여가부는 물론 부처 이름을 걸고 안을 낼 때 보다 신중해야 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여성단체들의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입장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도 여가부 계열에서 내놓는 ‘의견’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치적 비난에 이용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이런 사안은 정치공세가 아닌 담론장에서의 논의로 심화시켜야 ‘조국 선진화’가 이루어진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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