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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열에 사과 받은 중국, 재범에 사과 받은 한국


입력 2019.02.23 06:30 수정 2019.02.23 06:12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일일이 감정적 대응보다 우리부터 보다 관용적 되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일일이 감정적 대응보다 우리부터 보다 관용적 되어야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얼마 전에 황치열이 중국 누리꾼의 악플에 시달리다 사과한 일로 우리 누리꾼들이 공분했었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황치열이 ‘중국의 공기와 수질이 선배들한테 듣던 대로 안 좋게 느껴졌지만 난 상관없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사태의 출발점이었다. 이 말을 접한 중국 누리꾼들은 ‘중국을 조롱했다’면서 황치열을 공격했고 결국 황치열이 사과했다.

그러자 한국 누리꾼들이 들끓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중국인들이 트집을 잡는다’는 것이다. 우리 방송사가 이런 논조로 방송했다는 것이 중국에 알려져 중국인들의 감정이 더 악화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 누리꾼들의 감정도 더 악화돼 대립이 이어진 사건이다.

이게 일회적인 사건이 아닌 것은 이런 구도의 대립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중국 누리꾼들은 안 좋은 말을 안 들으려 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면 한국 누리꾼들이 중국을 비웃으면서 사실을 왜 인정 안 하느냐고 한다. 그렇게 대립이 격화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팬들 사랑해요’라며 활동하던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 가서 한국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우리도 불쾌하게 여긴다. 과거 맥 라이언이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는 것이 알려져 한국내 인기가 추락했던 적도 있다. 중국은 이런 식의 정서가 더 강하다.

중화제국이었던 중국은 근세 이후 열패감이 쌓였다. 이제 조금 경제력이 신장되면서 대국굴기의 열망이 타오른다. 그래서 자기과시에 사활을 걸고 외국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 한다. 중국군이 해외에서 명예를 드높이는 내용의 영화가 중국에서 엄청나게 흥행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외국인의 인정에 목을 매는 것은 열패감이 쌓여 자존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다. 칭찬 받으면 과도하게 좋아하고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과도하게 분노한다.

그래서 중국이 외국인에게 듣고 싶은 말은 냉정한 현실 지적이 아니라 찬사다. 중국의 환경이 안 좋다는 것은 중국인들도 충분히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럴수록 공인된 치부가 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외국인에게 지적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에서 돈을 벌어가는 외국인 스타의 지적은 더더욱 듣기 싫어한다.

이런 점을 이해하고, 한류 연예인들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절대로 삼가야 한다. 우리 방송에서 연예인이 그런 말을 했어도 제작진이 편집 과정에서 걸러야 한다. 그래야 중국인들의 비이성적인 분노를 방지할 수 있다.

우리 언론과 누리꾼들은 중국에서 비이성적인 반응이 나오면 훈계하며 조롱하고 감정싸움을 벌인다. 이러면 곤란하다. 우리는 한류 판매자이고 중국은 소비시장이다. 세상에 소비자에게 ‘지적질’하고 소비자와 감정싸움을 벌이는 판매자는 없다. 그런 식으로 소비자를 화나게 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판매자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감정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

중국인들을 조롱하기 전에 우리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타자의 시선에 예민한 것은 우리도 남 못지않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프로그램이 외국인들의 칭찬 세례로 인기를 끈다. 해외 스타로부터 한국의 장점을 인정받으려 안간힘을 쓴다.

재미교포인 2PM 재범이 데뷔 전에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했다는 것이 알려져 언론과 누리꾼이 들끓었던 적이 있다. 어린 연습생의 푸념 정도였는데도 우리 누리꾼은 용서하지 않았고 당시 언론은 재범의 일상적인 영어 비속어를 악의적으로 해석해 대중의 공분을 부채질했다. 결국 우리 대중은 재범을 2PM에서 탙퇴시키고 미국으로 쫓아냈다. 그전에 소속사로부터 사과도 받아냈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서 책을 냈는데 그 안에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목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앞뒤 안 가리고 누리꾼들이 공분했던 사건도 있다. 책 내용이 정확히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단편적인 보도만 가지고 소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도 그리 이성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도 관용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감정적인 대응에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그래서 적대감이 쌓이며 일이 더 커지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소비자와 싸워봐야 판매국인 우리가 손해다. 중국에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부터 보다 관용적이 되고 상대국의 정서를 헤아리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말싸움, 자존심싸움에서 이겨봐야 무의미하다. 먼저 성숙해지는 것이 정말 앞서는 길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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