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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정의는 무엇인가


입력 2019.04.08 08:30 수정 2019.04.08 13:1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정권 안팎에 널린 부도덕 행태

청문 보고서 채택이 되든 말든…보궐선거 민심 제대로 읽어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정권 안팎에 널린 부도덕 행태
청문 보고서 채택이 되든 말든…보궐선거 민심 제대로 읽어야


ⓒ데일리안 ⓒ데일리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면 낙원을 약속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 게 좋다. 거창한 공약일수록 허위로 끝나기 십상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다. 구체적 로드맵과 청사진이 없는 낙원은 허구다.

칼 마르크스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파라다이스가 이 땅에 구현되지 못한 데는 까닭이 있다. 현실이 아닌 이상(理想)의 공간에 지을 궁전의 설계도였기 때문이다. “미워하라, 증오하라, 그리고 혁명하라! 그러면 이 궁전이 그대들의 것이 된다.” 한없는 이타심(利他心)이 모든 인간의 심성을 완벽히 지배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는 ‘공산 낙원’을 증오심으로 이루자고 선동한 것이다. 모험주의자들이 잽싸게 그 제자를 자처하면서 ‘혁명’을 부추겼다. 그로부터 74년 동안 인류세계가 어떤 경험을 해야 했는지를 새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정권 안팎에 널린 부도덕 행태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공산의 낙원’을 공약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노하라! 그러면 ‘1대 99의 사회’는 무너지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건설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몽상가,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이 있다. ‘분노’의 교의를 전파했던 인사는 청와대 재직 18개월 동안 재산 11억 원을 불려서 나갔다. 아무래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인 듯하지만,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자는 더 빈곤해졌다. 그런데도 그는 해명 한 마디 없이 주요 국가 대사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하긴 이렇게 하면 돈을 번다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공은 있다. 투자수익,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재산이 늘었다고 본인이 설명했다. 성공한 투자자에게는 제자가 따르게 마련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그에게서 배우고자 했을 법하다. 그는 전 재산보다 많은 빚을 얻어 과감히 상가주택에 투자했다.

마치 정의의 사도나 되는 양 기세등등했던 ‘청와대의 입’이 드러낸 행실은 목불인견이었다. 스스로 ‘까칠 대변인’이라고 고별사에서 의기양양하게 밝혔다. “보수 언론들이 만들어내는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와대를 ‘진보좌파언론의 청정지대’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인가.

“신문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며, 국민과 국가의 힘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문 대통령은 김 전 대변인을 내보낸 지 6일 만인 지난 4일 신문의 날 기념축하연에 참석해서 그렇게 강조했다. 그가 말한 ‘신문’에 보수언론도 포함됐을까?

이 정부의 신뢰할 수 없는 모습은 김 전 대변인에 의해서만 대표되는 게 아니다. 7명의 장관 후보자들이 드러낸 행태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그 중 한 사람은 청와대가 지명을 철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진사퇴했다. 국민의 인내력을 더는 시험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도덕적 흠결을 가졌다고 청와대가 판단했다는 뜻이다.

지난달 31일 이 사실을 발표한 윤도환 국민소통수석은 말미에 ‘송구’하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그는 뭐가 잘못됐느냐는 식으로 언론 보도를 반박하고 나섰다. “외국에 살면서 포르쉐 탈만도 하지 뭘 그러느냐. 집 세 채 가진 게 국민정서와 맞지 않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 그런 뜻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이것이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정권 핵심부의 의식이다.

청문 보고서 채택이 되든 말든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 가운데 두 명에 대해서는 야당의 거부로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 SNS와 대담집 등에서의 언급으로 ‘막말의 대가’ 반열에 오른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장에서도 기세등등했던 박영선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그들이다.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에 대해 “군복입고 쇼나 하고 있으니…”라고 비아냥거리고,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서는 “감염된 좀비”,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는 “박근혜가 씹다 버린 껌” 등으로 조롱했다. 더 안 좋은 것은 대북관이다.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군이 정조준한 총에 맞아 숨진 고 박왕자 씨 사건을 ‘통과의례’라고 하는가 하면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취했던 5‧24조치를 두고 “이런 바보 같은 제재는 없다”는 말도 했다. DMZ목함지뢰 폭발사건과 관련해서도 “북한의 도발이라는 물증이 없다”고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황제 진료’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에 대해 “섹슈얼 해러스먼트”라는 영어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성희롱이라고 몰아세웠다. 유방암 진료와 관련된 질문이었는데, “전국적으로 유방암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발언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냥 진료자료만 제출하면 될 일이다. 그게 왜 성희롱이 된다고 시비를 걸었을까?

박 후보자는 또 ‘김학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엮어 넣으려는 듯한 의도를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위증 및 정치자금 오용 혹은 관련 보고서 허위기재 논란을 초래했다. 아들의 이중국적도 문제로 지적됐다. 게다가 그의 남편인 이 모 변호사가 삼성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수임료를 받았다거나 자택 리모델링 비용 3억 원 가량을 건설업체에 대납하게 했다는 새로운 의혹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석사논문 표절 시비도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든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공산이 크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4일 국회운영위원회에 출석해서 이미 청와대 방침을 밝혔다.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없이 청와대로 올라온 사람 중에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은 경우가 단 한 건도 없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건 국회가 국회의 직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게 청와대가 국회를 인식하고 대하는 방식이다.

다음날 민주당 출신 문희상 국회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일단 국회로 넘어와서 정책적인 논란이 계속돼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을 정도라면 채택하지 말고, 대통령도 당연히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제도화했다. 요식절차로서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어떤 판단을 내렸든 대통령의 결심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청와대측이 공공연히 말하다니. 문 의장으로서는 국회의 위상과 권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궐선거 민심 제대로 읽어야

다만 문 의장의 말뜻이 분명하지 않은 게 문제다. 인사청문회법을 고치는 게 급선무라는 말로 들린다. 제도가 미비한데 청와대만 몰아세울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미 같기도 하다. “미국은 상당히 오랜 시간 걸려 전문요원들이 검증 대상자를 샅샅이 뒤지고, 도덕성 시비 문제는 다 걸러서 국회로 보낸다”는 말도 했던데, 이 또한 제도를 탓하는 말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백악관 인사국, FBI, 국세청, 공직자 윤리위원회 등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신상검증을 하고, 상원의 인준청문회는 정책검증 위주로 진행된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신상검증으로 시종한다. 그 점을 지적한 모양인데, 미국의 경우 정부의 해당기관들에 대한 의회와 국민의 신뢰가 확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신뢰가 결여됐다. 정부가 검증을 했다면서 국회에 보내는 후보자들 면면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제대로 검증도 않고 넘기면서 국회는 정책검증만 하라고 해서는 말이 안 된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취임 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적폐 청산’의 대상자들과 현 정부 유력자들 일부의 행태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제쯤 설명해줄 때가 되었다. 자신들이 아주 당당히 국민에게 약속했던 그 ‘꿈의 나라’가 언제 구현될지 말해줘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4‧3보궐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읽었다면 ‘20년→50년→100년 집권론’ 운운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솔직하고 정직해지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남을 단죄하는데 너무 익숙해지면 자기성찰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 후유증이 만만할 리 없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늘날 저잣거리에서는 “(그러면) 이건 나라냐”는 물음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문 대통령의 몫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동반자입니다.”

그러나 취임 당시에나, 2년이 지난 지금에나 ‘그들만의 정부, 그들만의 국가’ 같은 분위기는 여전하다. 문 대통령이 ‘동반자’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속한 쪽의 많은 이들은 ‘적폐’의 굴레를 쓰고 법정에 세워지고 있거나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 일찍이 이런 나라에서 발전을 위한 화합과 협력이 이뤄진 예는 없다. 북한 김정은과의 민족적 유대 및 협력 강화로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려 하기보다 국민의 살림살이, 나라의 장래에 대해서 먼저 마음을 쓰는 게 훗날의 답변을 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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