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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공직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입력 2019.04.09 08:00 수정 2019.04.09 08:30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그런 인사들을 장관 시키다니

사람 없다면서 코드 고집하나…위기는 3로로 밀려닥치는데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그런 인사들을 장관 시키다니
사람 없다면서 코드 고집하나…위기는 3로로 밀려닥치는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29일 오후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열린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 촉구 및 문재인 정권 인사참사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 29일 오후 국회 본청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열린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 촉구 및 문재인 정권 인사참사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아주 험난한 인사청문회 과정을 겪은 만큼 행정능력, 정책능력을 잘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김연철 통일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 후 이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을 헤치고 살아온 부하를 맞는 분위기다. 이들의 임명을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격려를 해줬다. “내 인사권에 누가 간섭해!” 그런 위세자랑으로 들린다.

세객 왕두가 제나라 선왕(宣王)을 알현하고 인재를 찾아 중용할 것은 진언했다. 선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인사들을 장관 시키다니

“지금 이 시대엔 인재가 없소. 좋아하려고 해도 좋아할 수가 없지 않소?”

“전하께서는 인재를 좋아하시지 않아서 안 찾고 계실 뿐이옵니다. 인재가 없다는 말씀은 가당치 않습니다.”

“과인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사랑하오. 인재를 구해서 선정을 펴야하겠다는 생각은 물론 늘 하고 있소이다.”

“말씀은 그리 하시오나 백성들보다도 비단을 더 사랑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건 또 어떤 의미요?”

“비단으로 관(冠)을 만들 경우 아첨하는 신하에게 시키지 않고 전문 공인(工人)에게 시키는데, 그건 왜 그러하겠나이까? 공인이 잘 만들기 때문이옵니다. 하온데 나라를 다스리신다면서 아첨배만 쓰고 계시나이다. 그래서 백성보다도 비단을 더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아뢰었사옵니다.”

선왕은 자신의 불명(不明)을 부끄러워했다.

“과인의 잘못이 크오.”

그 후 선왕은 5명의 인재를 등용했으므로 제나라는 잘 다스려지게 되었다(전국책, 김전원 편저).

문 대통령도 물론 아첨배를 골라 쓰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내편’을 의식해서 스스로 인재풀을 좁히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청와대 인사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책임지고 있는 조국 민정수석이 “왜 이런 사람을 후보자로 내놓았느냐”고 묻는 민주당 핵심관계자에게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지 않은가.

인구가 5,200만에 가까운 나라다. 인재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너무 가리니까 못 고르는 것이다. 장관을 시킬 사람이라면 인물됨, 역량 등을 따지고 또 따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 및 정권 핵심세력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못 찾았으니 인재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평공이 기황양에게 남양 현령 감으로 누가 좋은지 물었다. 그가 해호를 천거했다.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오?” 주군 평공이 반문했다. 기황양이 대답했다. “왕께서는 누가 적합한지를 물으셨을 뿐, 누가 저의 원수인지를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왕은 해호를 임명했다. 백성이 모두 반겼다.

얼마 후 평공이 다시 그에게 군위(軍尉: 평시에 군정을 담당하고 전시에 사령관 역할을 하는 자리) 자리가 비었는데 누가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오가 좋겠다고 했다. “기오는 당신 아들이 아니오?” “왕께서는 누가 그 자리를 맡을 수 있을지를 물으셨을 뿐 누가 제 아들인지를 묻지는 않으셨습니다.” 왕이 기오를 등용했다. 나라사람들이 잘된 인사라고 칭송했다.

사람 없다면서 코드 고집하나

≪여씨춘추≫에 나오는 고사다. 굳이 까마득한 옛일을 들어 오늘의 일을 말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때도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그처럼 공평무사했을진대 하물며 이 시대 인사권자의 자세이랴!” 하는 뜻에서 그 일화를 옮기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조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정부 여당의 획일적 기준이 되면 국정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모두가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측근들의 눈치만 보느라 창의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엄두조차 못 내게 된다. 그 부담은 당연히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의 평가는 임기 후에도 계속된다. 그냥 계속될 정도가 아니라 더 냉정하게, 더 세밀하게,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그걸 왜 깨닫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더 안 좋은 것은 대통령의 이념편향성이다. ‘코드인사’라는 게 거기서 비롯된다. 자신과 이념정향이 같은 사람을 찾기에 집착한다. 반대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격심한 반감을 가지는 만큼 탕평 인사 요구는 단호히 외면한다. 조 수석이 “사람이 없다”고 한 게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수많은 인재들이 있지만 이념적 노선이 같지 않은 사람을 발탁한다는 것은, 이념형 인사권자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기어이 자신의 뜻에 맞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는데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뭐라 하든 내 뜻은 굽힐 수 없다는 인사권자로서의 권위의식과 고집을 기어이 관철시킨 셈이다.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전 건설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켰으니 그것만으로 된 게 아니냐는 생각일 수가 있다. 그만했으면 여론과 국회를 존중한 것이라고 여겨 다른 다섯 명의 후보자 전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명분일 수가 없다. 일곱 사람 모두 자격 미달이라면 전원 탈락시키는 게 당연하다. 누구를 사석(捨石) 삼아 다른 후보자를 지킨다는 생각을 혹시라도 했다면 그건 정말이지 옳지 못한 잔꾀다.

낙마한 두 사람은 도저히 장관 자리에 앉을 수 없는 흠결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후보자로 발탁한 것은 인사권자 측의 중대한 과실이거나 과오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을 희생시켰으니 더 탈락시키는 것은 안 된다는 듯이 나머지 후보자 모두를 장관 자리에 앉혔다. 그 사람들 중에도 “정말 저 사람은 안 된다”는 지적을 국민 다수로부터 받은 이들이 있다. 그런데 버젓이 장관 자리에 앉았다. 아마 앞으로 그 유세가 대단할 것이다. 부끄러움은 마음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교만이 채울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본바탕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과 정권의 실력자들은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경제 환경과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자연 민생의 어려움도 가중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생경하게 여긴 소득주도성장정책에 집착한다. 이념형 리더일수록 유연성은 떨어진다. “내 사전에 방향 선회라든가 유턴 같은 것은 없다”는 심리상태다. “내가 옳다고 믿는 정책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오기로 밀어붙이는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정책의 실패는 국민적 원망으로 돌아온다.

위기는 3로로 밀려닥치는데

역대의 이른바 ‘진보 정권’ 가운데서도 유난히 역대 보수 정권에 대한 청산 작업에 집착해 온 후유증, 그러니까 ‘적폐청산’ 피로감이 국민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끈질기게, 이렇게 광범위하게 전선을 확대하는 정권을 전에는 본 기억이 없다. 지금은 국가의 거의 모든 권력집단이 정권의 의지를 따라 움직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형벌로 정권의 정당성 정통성을 확보하고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어리석다. 언젠가 정권이 바뀌면 공수(攻守) 포지션도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찬사를 바치면서 헹가래 쳐주던 사람들이 빠져 나가버리면 승리감을 만끽하며 공중으로 튀어 오르던 스타는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지고 만다. 숱하게 경험해 온 인간사회의 경험칙이다.

대북정책도 아슬아슬해서 마음 편히 지켜볼 수가 없다. 도대체 문 대통령의 김정은에 대한 ‘무한 신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70여 년간 유지돼 오던 안보구조는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에는 심한 균열이 생겼다. 그렇다고 북한 김정은 체제와의 관계가 돈독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보 위험 요인만 가중됐다. 김정은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으로는 절대로 한반도 평화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걸 확연히 깨닫게 될 때는 이미 회복불능의 상황에 빠져있을 개연성이 높다.

이처럼 3로(三路)로 밀려닥치는 국가적 위기 국면에도 문 대통령의 소위 ‘촛불혁명정부’는 승리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승리자의 자부심, 승리가 주는 심리적 물질적 보상에 계속 취해 있고 싶어 하는 빛이 역력하다. 개각 인사에서 드러내 보인 무책임, 오만이 보여주는 바가 그것이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많이 인내했다. 더 무엇을 바라는가?” 그런 기분이겠지만 국가의 모든 공직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인사를 마음대로 하는 것 또한 (흔한 말로)국정농단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역시 춘추시대 고사다. 위(魏)나라의 미자하(彌子瑕)가 어느 날 복숭아를 먹다가 너무 맛이 좋아 주군 영공에게 줬다. 제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자신에게 줬다며 왕은 미자하를 칭찬했다. 세월이 흐르자 젊음과 함께 왕의 총애도 사라졌다. 영공은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범했는데도 불같이 화를 내며 “저놈이 예전에 내 허락도 없이 수레를 타고, 제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다”며 벌을 내렸다.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에 전해지는 여도지죄(餘桃之罪)의 고사다.

오늘날의 왕은 유권자인 국민이다. 그 총애를 과신해서 절제와 겸손을 잊어버리면 시간이 흐른 후 국민으로부터 여도지죄를 추궁당할 수 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 독선 독단 독주야말로 무엇보다 무서운 독(毒)임을 잊지 말 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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