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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國이 貧國을 항상 이긴다는 것은 역사의 오해다


입력 2019.04.18 09:30 수정 2019.04.18 08:24        데스크 (desk@dailian.co.kr)

<전문가 4인 공동칼럼> 우리는 패망국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이 아닌 정신력에 의해 좌우

<전문가 4인 공동칼럼> 우리는 패망국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이 아닌 정신력에 의해 좌우


2015년 건군 65주년을 기념하는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 모습.ⓒ데일리안 2015년 건군 65주년을 기념하는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 모습.ⓒ데일리안

세계은행에 의하면 2017년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로서 북한의 47배나 된다. 현격한 경제력 격차는 ‘북한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된다.’는 안보 낙관론의 근거다. 북한이 128만의 정규군과 760만의 예비군에다가 핵무장까지 했는데도 우리는 천하태평이다. 가난한 나라는 부자나라를 침략하거나 이길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반(反) 지성의 소치다. 가난하게 살다가 갑자기 돈 좀 생겼다고 세상에 돈이면 다 될 줄 알고 거들먹거리는 졸부(猝富)의 모습이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自畵像)은 아닐까. 우리보다 훨씬 부자면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는 이웃 초강대국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고대와 중세는 貧國이 富國을, 東洋이 西洋을 약탈한 역사

인류 문명은 북반구에서 꽃을 피웠다. 4대 문명 발상지 모두 북반구에 있었다. 북반구의 북쪽은 춥고 척박해 농사에 부적합하고, 남쪽은 따뜻하고 기름진 평야가 잘 발달돼 있어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환경의 영향으로 기질도 북쪽 사람들은 강건하고 남쪽 사람들은 유순한 편이다.

산업혁명 이전에 부(富)의 원천은 농업이었기 때문에 동·서양의 전쟁사는 한마디로 가난한 북국(北國)이 부유한 남국(南國)을 약탈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아시아에서는 흉노·돌궐·몽고·여진 등으로 불린 북방 기마민족이 중국 등 남방의 농경 문명국가를 약탈했다. 유렵에서는 북방에 살았던 바이킹과 그 후손들인 해양민족이 남방의 라틴 문명국가들을 약탈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동양은 마적(馬賊), 서양은 해적(海賊)이 약탈전 승리의 주역이었다. 힘이 뻗친 아시아 기마민족은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진출해 유럽의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흉노족의 서진(西進)은 결국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져 유럽은 중세로 넘어갔다. 12세기 몽고족은 러시아와 유럽을 휩쓸었고, 돌궐족은 사라센 제국을 격파하고 ‘오스만 터키’제국을 건설한 후 마침내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동로마제국을 끝장내고 현재의 유럽을 출현시켰다. 이 시기를 전후해 유럽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갔다. 서양문명의 뿌리인 동·서로마제국이 천년의 사이를 두고 동양의 기마민족에 의해 막을 내린 것이다. ‘북세남점(北勢南占)’, ‘동세서점(東勢西占)’이 대세인 시대였다.

산업혁명 이후 과거 전쟁 승패의 방정식이 逆轉

유럽을 기준으로 근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승패 방정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척박했던 유럽의 북쪽은 산업혁명을 먼저 시작한 덕에 부국(富國)이 됐다. 과거 농업 부국이 풍요에 취해 나태했다면, 신흥 공업 부국은 건강한 정신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는 농업과 달리 상공업은 가혹한 경쟁에 노출돼 끊임없는 혁신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세남점(北勢南占)은 그대로 인데, 과거 북국은 가난했지만 근대 이후 북국은 부자라는 점이 다르다.

동·서양의 처지도 거꾸로 돼 서양이 동양을 점령한 소위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시대가 열렸다. 과거 동양 마적한테 당했던 서양이 해적의 형태로 복수한 것은 아닐까. 생명을 걸고 하는 모든 원정(遠程)의 동기는 결핍이다. 결핍이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절실하거나 이익이 목숨을 걸 정도로 크면 원정의 의지는 치열해진다. 18세기 중반 중국과 인도는 전 세계 부의 반(半) 이상을 차지한데다 서양에서는 귀한 향신료, 면(綿), 차(茶)가 넘쳐났다. 그래서 동양에 비해 가난했지만 상무(尙武)정신을 바탕으로 강한 군사력을 가진 서양이 문약(文弱)한 동양을 철저히 약탈하고 굴복시킨 것이다.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사진 왼쪽부터)ⓒ데일리안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사진 왼쪽부터)ⓒ데일리안

전쟁의 승패는 경제력이 아닌 정신력에 의해 좌우

인류 전쟁사를 제대로 이해하면 가난한 선군(先軍) 병영국가가 풍요에 취해 무(武)를 천시한 부국을 멸망시킨 것이 주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대이후 영국과 미국이 전쟁에서 이긴 역사는 예외에 속한다. 과거 부국과 달리 경제력과 군사력은 물론 상무정신까지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발발 당시 아테네는 민주정치와 해상무역을 꽃피운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파르타에 비해 인구는 3배가 많고 경제력도 절대 우위였다. 병력도 육군은 비슷했지만 군함은 3배나 많았다. 그러나 페리클레스 같은 현명한 지도자가 죽자마자 분열과 시칠리아 원정 같은 무모한 정책을 계속하다가 인간을 전쟁기계로 만든 스파르타에게 패망했다.

11세기 이후 중국의 역사는 부유한 한(漢)족 국가가 가난한 기마민족 국가에게 뜯어 먹힌 처절한 기록이다. 11세기 송(宋)은 연간 철강생산이 12.5만 톤으로 유럽 전체보다 많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었다. 400만 명의 거란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1억 명에다 영토가 6배에 달했으나, 두 번이나 연속패하고 결국 몽고에게 나라를 뺏기는 굴욕을 맛봤다. 17세기 초반 명(明)은 인구가 세계 23%인 1억 5천만 명, 180만의 대군을 보유했다. 경제 규모가 세계 25%에 달해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았다. 한마디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척박한 만주 땅에서 단련된 청(淸)의 6만 팔기군(八旗軍)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청과 비교해 명은 영토 9배, 인구 300배, 경제력·군사력 모두 30배 이상 많았지만 무능과 부패, 그리고 이자성의 난(亂) 등 내분으로 자멸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도 1946년 국공(國共) 내전 당시 국민당은 병력 430만에 항공기와 함정·야포를 갖춘 현대 정예군을 보유했으나 거의 소총밖에 없는 120만 공산군에 밀려 대만으로 쫓겨났다. 남(南) 베트남도 경제력·군사력이 모두 북(北) 베트남보다 월등했지만 1975년 전쟁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힘 한번 제대로 못 쓰고 굴복했다. 1967년 3차 중동전 당시 아랍 동맹국은 영토 8배, 인구 18.3배, 경제력 3배, 군사력 2배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일방적으로 패했다.

패망한 나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력·군사력 등 밖으로 드러난 국력은 상대방을 압도했지만 내부적으로 정치적 혼란과 분열, 지도층의 무능, 정신무장 해제, 군사력보다 상대방의 선의나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착각이 만연했다. 나라를 지키는데 국가 내부의 건강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피와 눈물로 가득 찬 패망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패망국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백 명이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하나이다.” 영국 최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상가, 토마스 카알라일(1795~1881)이 쓴 ‘영웅숭배론’ 서문에 나오는 글귀다. 역사에 등장한 최고 부국들 모두 역경이 아닌 풍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영국도 나폴레옹과 ‘잠자는 사자’청나라마저 굴복시키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지만 풍요라는 가장 위험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적 부국인 영국과 미국이 여러 전쟁에서 연승(連勝)하고 있는 것은 과거 부국들과 달리 경제력·군사력을 물론 상무정신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1등이 된 후 풍요를 걱정했고, 미국은 1등이 되고도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10등도 못해보고 풍요에 굴복해 조로(早老)가 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더구나 우리가 처한 국방·안보 여건은 세계사에 명멸한 부국들보다 훨씬 불리하다. 우리는 인구·경제력에서만 북한을 앞설 뿐, 핵을 포함한 군사력에선 북한이 우리를 압도한다. 그나마 그동안 한·미동맹과 자주 국방 노력, 국민의 안보의식이란 세 가지 기둥 덕분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 기둥들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세계 1등 자리를 놓고 싸우는 강대국들 틈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와 일본을 빼면 북한을 포함해 모두 핵무장 국이다. 일본은 여건만 되면 바로 핵무장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지만, 미·일 동맹 강화와 자체 방위력 증강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다. 탈(脫)원전으로 남아있는 핵 잠재력마저 없애고 한·미동맹과 자체 안보태세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안보태세와 안보의식을 허물어도 경제력만 우월하면, 북한이 우리의 적수(敵手)가 못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어리석음과 교만일 뿐이다. 정부의 안보파괴 행위는 무지(無知) 때문인가. 아니면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더 위하는 잘못된 신념 때문인가.

글/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박휘락 국민대 교수·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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