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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O 문재인정부 2년] '문화계 미투' 피해자 눈물 마르지 않았다


입력 2019.05.07 06:00 수정 2019.05.07 08:59        이한철 기자

지난해 1월부터 문화계 강타한 미투 운동

제도 정비 지지부진, 다시 숨는 피해자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 데일리안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 데일리안

지난해 1월 서지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부부장검사가 촉발시킨 ‘미투 운동(#Me Too)’은 문화계를 발칵 뒤집었다.

거장으로 추앙받언 유명 연출가를 비롯해 유명 배우들이 줄줄이 성폭행 가해자로 낙인 찍히며 그야말로 영화계와 공연계는 초토화됐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여파는 진행형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시민단체의 주도 아래 문화계가 자체적으로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없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멀어지자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현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는 왜 '악마'를 방치했나

‘미투 운동’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분야는 공연계다. 특히 열악하기만 한 환경에 놓인 연극 극단의 단원들은 성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상습적인 피해를 받아왔음이 드러났다. ‘미투 운동’은 이러한 뿌리 깊은 악행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원들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을 비롯해 연극계 거장 오태석 연출가, 공연제작사 에이콤 윤호진 대표 등이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연극배우 이명행은 미투 가해자로 법정구속돼 복역 중이다.

영화배우이자 공연 기획자로 이름을 날리던 조재현을 쓰러뜨린 것도 다름 아닌 미투 운동이었다. 영화계 거장으로 손꼽히던 김기덕 감독의 위상도 흔들렸다. MBC 'PD수첩'이 '거장의 민낯' 편을 통해 김 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성폭행 의혹을 보도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조재현은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며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 데일리안 조재현은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며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 데일리안

무엇보다 불공정한 계약 관행, 부당 노동행위가 만연한 현실을 방치하면서 문화계의 성폭력을 조장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극단 단원들은 절대 권력자인 극단 대표의 만행을 문제 삼기가 쉽지 않았다. 자칫 배우로서 자신의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는 약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일자리를 빌미로 한 성폭력이 만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투운동 이후,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나

미투 운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우선 수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뭉쳐 그간 죄의식 없이 행해지던 ‘악행’의 관습에 제동을 걸었다. 공연예술인들로 구성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하 성반연)'은 여성가족부와 함께 '불편한 연극'을 발간해 관행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이 기존의 법과 제도라는 시스템 안에서 진행된 것이 아닌 만큼, 한계 또한 명확하다. 오히려 법과 제도의 허점을 노린 이들은 ‘명예훼손’이라는 이름으로 법적대응에 나섰다.

특히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피해자를 향한 '역고소'를 선택했다. 이는 비단 김기덕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해자와 가해자를 도운 사람들이 오히려 설 자리를 잃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기덕 감독은 사과 대신 피해자를 향한 '역고소'를 선택했다. ⓒ 연합뉴스 김기덕 감독은 사과 대신 피해자를 향한 '역고소'를 선택했다. ⓒ 연합뉴스

피해자 보호책 마련, 제도 정비돼야

증거가 많지 않은 성범죄를 수사 기관이 정확하게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때문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로 뒤바뀌는 사례가 하나둘 늘어간다면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사회적 정화 운동이 제동을 걸릴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한 진상조사를 토대로 정책과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명예훼손’을 빌미로 피해자를 협박하고 사건을 무마하는 것이 가능한 현실, 그리고 법과 제도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미투 관련 법안 처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관련법 145건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소수에 불과하다.

여야가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는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등에 계류 중이다. 그마저도 실속 없는 스펙 쌓기용 법안이 대부분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기만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이 유야무야 마무리된다면 피해자들은 법과 제도를 악용한 더 큰 악마로부터 더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그 사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적어지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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