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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회동 제의하면 감지덕지해야 하나?


입력 2019.05.13 09:00 수정 2019.05.13 08:2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식량지원만 논의할 모양인데

패스트트랙 4당의 악평 경쟁김정은 집단 정체 똑바로 봐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식량지원만 논의할 모양인데
패스트트랙 4당의 악평 경쟁김정은 집단 정체 똑바로 봐야


ⓒ청와대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KBS 대담에서 제의한 ‘여야대표 회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대통령의 언급만을 두고 말하자면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위해서 가지려 하는 회동이다. 그런데 덧붙여진 설명이 핵심을 되레 흐려놓는다.

“네, 그렇게 제가 지금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패스트트랙 문제같이 당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주제로 하기 곤란하다면 이번 식량 지원 문제, 안보 문제, 이런 문제에 국한해서 회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지원만 논의할 모양인데

패스트트랙 문제를 비롯해 국정전반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싶다는 뜻인가 아니면 식량지원‧안보 문제만 논의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인가를 분간하기 어렵다. 미루어 짐작컨대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식량지원의 가능성을 확인한 후 당장 이를 진행하려 했을 것이다.

“일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에 대해서 제가 한 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드리면… 왜냐하면 그 부분이 미국 측도 발표에서는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설명 드리면,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전폭적으로 지지를 하시면서 자신이 한국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축복을 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

인터뷰어인 송현정 KBS 기자가 “네, 그 부분은 충분히 전달됐을 것 같고요. 그러면…”이라며 주제를 옮기려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여러 번 서너 번 거듭해서 부탁할 정도였고요. 일단 우리가 식량 지원을 하게 되면 결국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해야 되는데 나중에 사후에 국회에 보고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해서 저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지금 패스트트랙 문제 때문에 지금 여야 간 정국이 지금 완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데 그 문제는 별도로 해결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여야가 함께 모여서 협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껏 고무돼 있는데 김정은이 갑자기 미사일을 발사해 버렸다. 이제 트럼프의 지지만으로 국민을 설득하기는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정당대표들을 들러리 세우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다만 속내를 바로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워 에둘러 말하려다가 말뜻의 모호성을 키운 게 아닐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정국이 경색된 것 정말 안타깝다. 당연히 이런 문제도 허심탄회한 논의를 거쳐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으로서는 뭐든 다 논의하고 싶지만 각 정당과 그 대표들이 원한다면 어쩌겠는가, 식량 안보 문제 등에 국한해서 논의할 수밖에….”

설마 대통령이 말재간이나 부리려 했을까만 명확하지 못한 화법을 구사함으로써 속내를 얼버무리려 한다는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다.

패스트트랙 4당의 악평 경쟁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수락할 리가 없다. 그는 11일 ‘1대 1 대화’라면 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난색을 표한다는 언론 보도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은 일제히 황 대표를 비난하고 나섰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황 대표의 주장은) 정당 정치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렇다면 홍 대변인이 잘 이해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잘 아는 것 같으니 이왕이면 설명을 곁들였으면 좋을 뻔했다.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뜻일까? 정당들이 서로 정치 파트너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펼쳐야 하는데 황 대표는 왜 혼자서만 대통령을 만나려 하느냐고 따지는 것일까?

‘정당정치의 본질’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집권여당이 제1야당을 배제하고 여타 정당들과 거래성 합의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하는 게 그 ‘본질’이라는 것에 부합한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머릿수 정치를 그렇게 비판해오던 과거 야당시절의 민주당이 지금은 머릿수만 맞춰지면 무슨 결정이든 다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정당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일까?

그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다루던 방식으로 자기 정당을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과 문재인 정부의 민주당은 위상과 역할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혀 달라서 청와대가 안달하는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려 그렇게 기를 썼다는 것인지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별로 떳떳해 보이지 않는 선거법 거래까지 하면서? 한국당은 새누리당 시절 ‘탄핵’ 이전에도 대통령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문 후보가 낙선했으니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다른 3당도 황 대표에 대해 격한 혹은 모욕적인 표현을 구사해 가면서 공격했다.

“1 대 1 영수회담 요구로 몽니를 부릴 게 아니라 조건 없이 나서야 한다”(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 / “다른 정당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고이며, 국민의 염원인 다당제를 부정하는 발상이다”(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 / “다른 정당과 함께가 아닌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것은 땡깡 정치이자 정치 횡포다.”(정호진 정의당 대변인).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챙길 것은 다 챙겼으니 국회를 정상화하자고 한다. 그게 정치인, 정당의 생리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해서 상대를 비아냥거리고 비난하고 하는 것은 정말 목불인견이다. 야당이라면 먼저 정부와 여당에 대한 범야권의 연대의식부터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군소정당들의 귀에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안정된 존립을 보장하는 복음으로 들릴 만도 하다. 정당투표에서 10%를 얻으면 30석을 차지할 수 있다. 7%만 받아도 21석으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해진다. 복잡한 계산을 거치면 이 숫자가 달라질 수 있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의 원리로만 말하자면 그렇다.

김정은 집단 정체 똑바로 봐야

정치권력을 의회가 갖는 의원내각제라면 다당제가 오히려 정치의 안정과 효율화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채택한 것은 삼권분립 하의 대통령중심제다. 이 경우는 의회가 강력한 견제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의회구도가 되면 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강력한 야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자칫 1거대여당 대 다수 군소야당의 체제로 굳어질 위험성도 다분하다. 어쨌든 다당제가 ‘국민염원’인 것도 아니고 반드시 ‘선’인 것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수처에 대한 한국당의 위기의식은 훨씬 더할 것이다. 검찰이 그렇게 불리듯 공수처도 ‘검(劍)’이다. 그 중에서도 공수처는 제어장치가 없는 일종의 리바이어던이 될 위험성이 크다. 특히 정치인과 이른바 권력기관 구성원들이 벌벌 떨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다지만 그건 대통령이 극단적 위기에 빠졌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박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정권이 붕괴지경에 이르지 않는 이상 공수처의 칼자루는 대통령이 쥔다고 봐야 한다.

이같이 의회 내 정당구도나 국가권력 구조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법안을 여당과 군소 3야당이 결탁, 제1야당을 패싱하면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버렸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속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그래서 일단 1대 1로 만나자했더니 온갖 비난을 다 퍼부어대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어려운 국면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의지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대통령은 제1야당에 대화의 명분과 신뢰성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함정을 파두고 상대를 유인하는 식의 정치는 하지하책이다.

<첨언(添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덧붙여두자. 북한 식량지원문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겨레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몇 건의 인도주의협력 사업을 놓고 마치 북남관계의 큰 진전이나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민심에 대한 기만이며,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의 12일자 논평 가운데 한 대목이다. “남조선당국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제정신을 가지고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말고 북남선언 이행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 논평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 같은 날 북한의 또 다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개성공단 재가동은 미국의 승인을 받을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 김정은 집단과 회담을 하고 합의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협박권 청구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정상회담이라는 걸 하고 문건을 만들면 그건 우리에 대한 위협적‧위압적인 청구서가 되고 만다. 저들은 걸핏하면 그걸 내밀며 채권자 행세를 한다. 지금 저들이 하는 짓이 그것이다. 이런 집단의 핵무장을, 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 나아가 경협으로 포기시킬 수 있다? 이야말로 백일몽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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