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고다이라, 차가운 오벌에서 쌓은 뜨거운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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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9년 07월 21일 06:37:48
    이상화-고다이라, 차가운 오벌에서 쌓은 뜨거운 우정
    '빙속 여제' 이상화, 16일 공식 은퇴 기자회견
    스케이트 벗어도 고다이라와의 우정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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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5-16 14:54
    김태훈 기자(ktwsc28@dailian.co.kr)
    ▲ 이상화가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렸다. ⓒ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인생의 절정기를 함께 탄 스케이트를 벗고 은퇴한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공식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상화는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나서지 않았다. 사실상 선수 활동을 중단, 은퇴 수순을 밟아왔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릎 상태 등을 고려해 더 이상의 선수 생활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팬들의 아쉬움도은 크다. 라이벌이자 ‘절친’이 된 고다이라 나오(32·일본)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화는 “나오도 은퇴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나오와는 우정이 깊다. 아직 나오는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하던 대로 했으면 좋겠다. 나가노에 놀러가겠다고 얘기했다. 조만간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케이트 벗는 ‘빙속 여제’

    ‘피겨여왕’ 김연아에게 쏠렸던 국민적 관심 속에도 이상화는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활짝 피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500m 세계기록 보유자로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예니 볼프(독일)를 밀어내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2012-13시즌, 2013-14시즌 월드컵 대회에서 4차례나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2013-14시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2차 대회 2차 레이스에서 세운 세계신기록(36초36)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4 소치올림픽에서도 1·2차 레이스 합계 74초70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빙속 2연패 위업을 달성했다. 올림픽 2연패로 이룰 것을 다 이뤘고, 무릎과 종아리 부상으로 은퇴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도 이상화는 2018 평창올림픽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국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루고 싶은 꿈도 무르익어갔다.

    이상화가 은퇴를 미루고 전성기에 근접한 기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라이벌로 급부상한 고다리아 나오가 크게 자리했다. 이상화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 이후 부상 때문에 은퇴를 고민했는데 고다이라가 나타나 도전정신을 불어넣었고, 그 덕에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를 더 뛰게 한 고다이라 나오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후원도 없이 30대에 접어들어서야 만개한 고다이라 나오도 마찬가지다.

    이상화를 바라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빙판을 돌고 돌았던 고다이라 나오는 “이상화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이상화를 그리면서 스케이트를 탔다”고 말했다. 결국, 고다이라 나오는 평창올림픽에서 36초94로 이상화(37초33·은메달)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일전이라는 부담과 모든 것을 마쳤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쏟고 있을 때, 고다이라 나오는 이상화의 어깨를 두드리며 서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격려했다. 태극기를 든 이상화와 일본 국기를 멘 고다이라가 나란히 손을 잡고 오벌을 돌자 관중석에서는 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레이스를 마친 둘은 서로 포옹하며 축하와 격려를 나누는 모습은 올림픽 정신을 오롯이 보여줬다.

    ▲ 국적을 넘어선 이상화-고다이라 나오는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 데일리안DB

    이날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둘은 그동안 국제대회를 치를 때마다 경기장 안팎에서 서로 챙겨주면서 우정도 쌓았다. 라이벌로서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국적을 뛰어넘는 돈독한 우정을 보여줬다.

    나오라고 부르는 이상화는 “시즌이 끝나도 서로 택배를 주고받는다. 나오가 일본 선물 해준 적이 많고, 나도 한국 전통 식품 선물했다. 그런 추억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고다이라가 한국에 여행 올 때면 이상화가 그를 맞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둘의 우정은 잘 알려져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4월 서울 웨스틴 호텔에서 2018 평창 기념재단 주최로 진행된 ‘한일 우정상 수여식’에서 함께 상도 받았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에 대해 "항상 친절하다"면서 "3년 전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을 위해 서울에 왔다. 당시 내가 1위를 했다. 상화는 우승하지 못해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친절하게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내줬다. 너무 고마웠다“며 추억 한 조각을 꺼내놓았다.

    이상화는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은퇴 후에도 고다이라 나오와 계속 친하게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스케이트를 벗고 인생 제2막을 여는 이상화는 더 이상 누구와의 경쟁도 싫다고 말했다. 고다이라 나오는 마지막 라이벌이자 영원한 친구로 남게 됐다.[데일리안 스포츠 =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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