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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한국경제①] 구멍 난 우산…무역분쟁 후폭풍에 무력한 정부


입력 2019.06.24 06:00 수정 2019.06.24 08:32        박영국 기자

자동차 관세폭탄, 화웨이 사태 등 대외무역 악재에 정부 역할 못해

경쟁국 '자국 기업 살리기'에 혈안…우리는 '북한 경제제재 해제'에 집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강 대 강’ 충돌이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이들의 충돌 배경에는 ‘자국 우선주의’가 깔려있다. 이웃한 일본을 이끄는 아베 신조 총리 역시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무역분쟁 여파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무역분쟁의 후폭풍 앞에서 무력하다. 정부는 대외 악재에 맞서 우산 역할을 해주기는커녕 내부적으로 ‘적폐청산’을 앞세워 기업 마녀사냥을 조장하는 한편, 지나치게 급진적인 에너지·환경·노동 정책으로 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자국 경제 살리기’ 트렌드에 역행하는 한국경제의 현 주소를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BBC, 청와대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BBC, 청와대


자동차 관세폭탄, 화웨이 사태 등 대외무역 악재에 정부 역할 못해
경쟁국 '자국 기업 살리기'에 혈안…우리는 '북한 경제제재 해제'에 집중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앞둔 지난 4월 8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는 성명을 내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제뿐 아니라, 한국산 자동차 25% 관세폭탄이 면제될 수 있도록 주요의제에 추가해 양 정상의 톱다운(하향식) 협상으로 해결하고 귀국하라”고 요구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한미 FTA 재협상을 미국의 자동차 고율관세 부과 문제를 해결할 지렛대로 활용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함으로써 한국 자동차 업계가 불리한 상황에 처했으니 이를 해결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노조는 “문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불평등조약인 한미 FTA 협상과 자동차 25% 관세협상 등의 통상외교 실패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문 대통령의 최대 지지 세력으로 손꼽히는 민주노총 산하 가장 큰 조직인 현대차 노조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문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노동계에서조차 의구심을 표할 정도로 정부의 우리 산업 보호 역할이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기업들은 보호무역주의와 무역분쟁의 후폭풍에 전방위로 노출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자동차 관세폭탄은 시행 시기가 미뤄졌을 뿐 여전히 국내 기업들에게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있다.

중국은 이미 2017년 사드 사태에서 보여줬듯이 정치적 사안을 경제 보복으로 연관시킬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는 중국 화웨이 사태다. 미국과 중국의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자칫하면 화웨이와 거래 관계가 있었던 국내 IT기업들이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재에 한국 기업들의 동참을 요구한 상태에서 중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관련 기업들을 호출해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수출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세계 무역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고,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고를 무시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 비중은 25%에 달하며, SK하이닉스는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화웨이는 중국 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대 고객 중 하나로, 지난해 이들 회사가 화웨이로부터 거둔 매출이 5조~8조원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중 양쪽의 압력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거나 줄타기를 하는 것은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눈앞의 실적은 물론,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가 외교적 노력 등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를 비롯, 정부 관련부처에서는 아무 움직임도 없다. 심지어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는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조차 없다.

청와대 역시 각종 경제지표 악화로 궁지에 몰리면 ‘소득주도 성장 탓’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경제의 불확실성 문제’를 거론하지만, 정작 미중 무역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과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도 정부의 역할에 기대를 내려놓고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청와대의 외교적 노력은 온통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에 집중돼 있고, 우리 경제와 우리 기업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경쟁국들이 다들 자국 기업 살리기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만 정부의 지원은커녕 보호조차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암울하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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