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기자의 눈] 바지까지 내린 쇼트트랙, 징계만큼 챙겨야 할 것


입력 2019.07.06 07:01 수정 2019.07.06 05:41        데일리안 스포츠 = 김태훈 기자

선수촌 파격 징계 조치 이어 빙상연맹도 신중하게 접근

당장 효과 있으나 근본적 처방 안 돼..의식 바꿀 ‘인성 교육’ 시스템 절실

선수촌 파격 징계 조치 이어 빙상연맹도 신중하게 접근
당장 효과 있으나 근본적 처방 안 돼..의식 바꿀 ‘인성 교육’ 시스템 절실


쇼트트랙이 따낸 올림픽 금메달 24개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데일리안DB 쇼트트랙이 따낸 올림픽 금메달 24개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데일리안DB

뻔한 내러티브가 낳은 뻔한 결과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울림의 강도는 떨어진다. 그렇다고 감당하지 못할 ‘파격’이라는 도구로 관객들의 가슴만 일시적으로 자극한다면, 자칫 납득하기 어렵거나 허무한 결말에 도달했을 때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번에도 뻔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있지만 나름의 파격이 가미되어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서 자주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반복되는 징계에 관한 이야기다.

쇼트트랙이 또 한국 스포츠에 먹칠했다.

한체대와 비한체대의 파벌 싸움, 대회 성적·메달을 둘러싼 짬짜미, 코치의 선수 성추행 폭행, 출입이 금지된 여자선수촌(기숙사)에 유유히 들어가는 남자 선수에 이어 동성의 동료 바지를 내리는 성희롱까지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서 벌어졌다.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임효준(23)은 지난달 17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진행된 산악 훈련 중 남자 후배 황대헌(20)의 바지를 내렸다. 여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던 상황에서 모멸감을 느낀 황대헌은 선배 임효준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감독에게 알렸다.

이에 대해 진천선수촌은 임효준을 비롯해 선수단 전원에 1개월 퇴촌 징계를 내렸다. 최초다. 가해자에게만 해당하는 징계를 넘어선 것은 이전 사례에 비춰보면 파격적이다.

사상 초유의 선수단 전원 퇴촌이라는 징계조치는 변화를 위한 신호탄으로 여길 수 있다. 모두가 옳다고 한 징계의 수위나 방법은 아니지만 선수단 전원 퇴촌이라는 징계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위다.

지난 4일 빙상연맹도 임효준 징계 수위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당사자와 참고인들의 진술이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있어 CCTV 등 객관적 자료를 추가 확보한 뒤 다음 관리위원회 회의에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선수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강도 높은 징계를 앞두고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파격적인 징계는 당장의 효과는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처방은 될 수 없다. 먼저 선수들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 국가대표로서의 품격과 자세,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 인성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징계만큼 제대로 챙겨야 할 부분이다.

쇼트트랙이 또 한국 스포츠에 먹칠했다. ⓒ 데일리안DB 쇼트트랙이 또 한국 스포츠에 먹칠했다. ⓒ 데일리안DB

임효준이 인격적 모멸을 가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한 행동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에게 어떤 수치심을 주는지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의 인격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 그늘의 단면이다. 인성 교육이 왜 절실한지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지나친 승부 압박에서 발생한 일탈이라고 수습하려 하지 않길 바란다. 쇼트트랙 못지않은 ‘금메달 박스’ 양궁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크고 작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쇼트트랙처럼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쇼트트랙이 따낸 올림픽 금메달 24개가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거운 징계를 내리고도 기대했던 변화를 불러오지 못하는 결말이라면, 가뜩이나 싸늘한 시선의 쇼트트랙 팬들로부터 더 큰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인격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쇼트트랙이 반면교사 대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효자종목으로 변모할 수 있는 첩경이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