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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파국위기] 일 벌려놓고 등 떠밀기…재계는 힘들다


입력 2019.07.10 06:10 수정 2019.07.10 05:12        박영국 기자

주요 기업 총수들 2주간 5차례 '집합'

사태 해결책, 대안 없이 '병풍 세우기' 지적

주요 기업 총수들 2주간 5차례 '집합'
사태 해결책, 대안 없이 '병풍 세우기' 지적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를 마친 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를 마친 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직장 갑질’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단직원도, 신입사원도 아닌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일요일인 지난 7일 서울 모처로 불려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및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회동을 가졌다. 당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까지 5대 그룹 총수가 ‘집합’할 예정이었으나 이들은 일본 출장 관계로 불참했다.

10일에는 30대 그룹 총수들이 청와대에 모일 예정이다. 이 부회장과 신 회장은 이날도 일본에 체류하느라 참석하지 못하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총수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도 챙겨야 하고, 사우디 왕세자가 와도 얼굴도장을 찍어야 한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 대기업 총수와 친분도 쌓아야 한다.

지난 2주간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한 곳에 ‘집결’한 횟수만 네 차례에 달한다. 이날 청와대 회동까지 하면 다섯 차례다. 일반 직장인도 2주에 다섯 번을 모이라고 하면 화를 낸다.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줄 아나.” 명백한 갑질이다.

하물며 수만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대기업 총수들이다. 기업 현안을 챙기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어떤 경우는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고는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까지 계속해서 불러댈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직장 상사가 퇴근 후 부하직원을 불러내더라도 좋은 선물을 안겨주고 금일봉 줘서 기분 좋게 돌려보내면 갑질이 아니다. 하지만 불러다 잔소리를 하고 무리한 업무를 떠넘기면 갑질이다.

지난 7일 홍남기-김상조 회동과 이날 청와대 회동의 주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대응’이다. 애초에 정치·외교적 사안으로 촉발된 사태고, 향후 대응도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될 일이지만 기업인들에게 해법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삼성, SK, LG 등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피해가 예상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임원들과 가진 회의에서 “기업들은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면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원인도 정부에서 제공했고, 해법도 정부에서 내놓는 게 마땅하지만 사태의 최대 피해자들에게 사태 파악부터 해결 책임까지 미루는 모양새다.

힘든 시기에 규제완화나 세제혜택 등 선물 보따리를 안기지는 못할망정 바쁜 사람들 불러다 면박을 주고 스스로의 일을 떠넘기니 퇴근 후 직장상사가 부르는 것 만큼이나 부담스럽다.

물론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기업들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렸다. 일본에 국내 기업들이 정부와 함께 움직인다는 인식을 줄 경우 그들의 보복이 더 집요해질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 개별 대응 전략 등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건 청와대건 기업들을 불러다 얘길 해봐야 무슨 답이 나올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확실한 해결책을 갖고 있거나 우리 기업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어떻게 해주겠다는 플랜이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기업인들 ‘병풍 세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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