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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난 데 기름 끼얹나


입력 2019.07.15 09:00 수정 2019.07.15 08:34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외교부·산자부는 구경꾼 처지

실세들의 ‘덩달이’식 충성경쟁…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더니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외교부·산자부는 구경꾼 처지
실세들의 ‘덩달이’식 충성경쟁…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더니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일본을 향해 마침내 ‘죽창’을 꺼내들 기세다. “sbs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렸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및 부품 수출규제 조치로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다.

그런데도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 같지 않다.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이 미국을 다녀온 것 같은데 성과가 영 아닌 모양이다. 거기 가서 장관급 2명, 차관보급 3명, 백악관 고위인사 3명, 그리고 상·하원 인사들을 만났다고 언론이 전했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의 부당성을 잘 설명했고, 일본의 조치가 동북아 안보에 끼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미 측 인사들은 예외 없이 우리 입장에 공감했다.” 그가 한 말이다.

미국에 대한 중재 요청 여부에 대해 그는 “직접 요청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미 국무부 대변인이 어제 브리핑에서 한·미·일 3국 관계 강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이 언급 자체가 제 답을 대신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왜 중재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처사가 지나치다는 하소연만 하러 미국에 갔다는 것인가.

외교부·산자부는 구경꾼 처지

간 걸음에 중재요청까지 하고 오는 게 상식이다. 그러지 못한 것은 아마도 중재까지는 부탁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이미 일본 측이 설명과 설득작업을 마치고 간 후였다는 언론 보도다. 미국 정부와 의회 인사들 몇몇에게 우리 측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데 의의를 둘 수밖에 없겠다.

어쨌든 이렇게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으니 외교부 및 산자부로서는 끼어들 여지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장관이 아프리카 순방에 나서거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나가서 “일본은 근거 없는 주장을 멈춰야 하고, 정부는 차분하지만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모범답안이나 읽는 모습을 보이는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이건 나쁘지 않다.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들어가는 핵심적 소재 및 부품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직접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다는 점이 더 위협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작심을 단단히 한 후의 결행이라는 뜻이 된다. “웬만한 대응으로는 멈추지 않겠다, 한국 측의 대응태도에 따라서는 규제를 더 확대할 수도 있다”는 방침으로 읽힌다.

그런데 청와대의 대응방식이 참으로 난해하다. 이 일과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거나 추진하는 모습으로는 안보실 김 차장의 미국행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일본에는 안 가면서! 물론 아베 총리가 규제방침을 발표한 당일, 그러니까 지난 4일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대해 취한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WTO의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보복적 성격’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일본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도록 하기 위한 외교적 대응 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후에 NSC 차원에서 김 차장 미국 보낸 것 말고 어떤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실세들의 ‘덩달이’식 충성경쟁

문 대통령이 10일 30대 기업이 총수 및 CEO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간담회를 갖기는 했다. 그런데 거기서 기업들에게 특별히 희망적이라 할 만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뉴스거리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범정부적인 지원체제 운영을 약속했다. 아울러 ‘수입처 다변화·국내 생산 확대·해외 원천기술 도입’을 단기대책으로 제시했었다. 세상에, 그게 단기대책이라니!

문 대통령은 12일 전남도청에서 열린 ‘블루 이코노미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서 “전남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이 서린 곳”이라며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다”고 역설했다. 원고에 없는 말이었다고 한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호 적개심에 불을 지른 격이 됐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직접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것은 한국의 문 대통령이 응답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로 맞섰다. 아베에겐 “그래 한 번 해보자, 누가 이기나”라는 뜻으로 들렸게 마련이다. 문제를 풀어내야 할 대통령이 더 꼬이게 만든 셈 아닌가. 자신의 민족주의를 과시하는 효과는 거뒀다 하자. 그런데 기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서 그쳤어도 상황이 꼬일 판이었는데 조 민정수석이 한술 더 뜨고 나온 것이다. 충성 경쟁하는 ‘덩달이’의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그렇게 말할 만큼 분개했나보다 하고 말 일이지, 왜 비서까지 나서서 불을 지른 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민족감정에 불을 지르는 것이야 각자의 자유이지만 최고위 공직자들인 만큼 때를 가려줘야 할 책임은 있다. ‘의병을 일으킬 상황’이라는 사람이 없나, 죽창을 말하는 사람이 없나….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더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타격이 가장 클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7일 일본에 갔다가 12일 귀국했다. 가서 동분서주한 끝에 급한 불은 끈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잇달아 관련 사업장의 임원들과 회의를 열고 소재수급현황, 전체 사업에 미치는 영향, 향후 대응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발동한 3개 품목,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리지스트, 고순도 불산 등의 ‘긴급 물량’ 확보에 성공했다는 방일 성과를 밝혔다고 전해졌다.

답답한 측은 이렇게 우물을 판다. 그러나 피부로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쪽에서는 감정풀이를 앞세운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자기 손으로 우물을 팠으면서도 그 성과를 자랑하지 못하는 처지다. 삼성전자측이 사장단 회의 후 “회사 차원에서 추가 긴급 물량을 확보한 것은 맞지만, 이 부회장이 직접 일본에서 소재들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가 주는 느낌이 그렇다.

청와대를 뛰어넘는 협상력 때문에 미운 털이 박힐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일본의 이 부회장 지원자가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을 염려해서일까? 어쨌든 절박한 상황에서 기업을 지켜내는 사람은 역시 최고 경영책임자라는 사실이 행동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아무리 걱정을 하고 대책을 세우느니 해봐야, 좋게 말해서는 몇 다리 건넌 당사자, 아니면 말로 때우는 방관자에 불과하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젠 문 대통령이 나설 때다. 정이 들 계기는 없었으니 이불리(利不利)를 따져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일본과 영원히 척을 질 것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치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도 전향적으로 풀겠다는 각오로 나설 일이다. 오늘 한‧일관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장래의 동북아 정치‧경제·안보‧군사지형이 좌우된다. 신중하게 호혜적으로 접근해 주길 기대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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