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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누가 누구를" 희망 쏜 선수들, 민망한 연맹


입력 2019.07.20 07:00 수정 2019.07.20 07:26        데일리안 스포츠 = 김태훈 기자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한수영연맹, 연이은 촌극쇼

어렵사리 물길 개척하는 대표 선수들에 오히려 짐 돼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한수영연맹, 연이은 촌극쇼
어렵사리 물길 개척하는 대표 선수들에 오히려 짐 돼


18일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조별리그 B조 3차전 한국 대 캐나다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18일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조별리그 B조 3차전 한국 대 캐나다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거대한 물결에 감동과 환희를 실어 세계 곳곳으로 퍼뜨려야 할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굵은 땀방울로 희망을 쏜 우리 선수들은 연맹의 민망한 행정이 틀어놓은 찬물을 뒤집어썼다.

수영 불모지로 여겨졌던 대한민국의 ‘빛고을’ 광주에서는 FINA(세계수영연맹) 역사상 최대규모(194개국·7467명 선수단)의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한국은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최로 세계에서 4번째로 세계 5대 메가 스포츠대회를 모두 개최한 국가가 됐다.

이처럼 스포츠 강국이지만 아직 수영 강국은 아니다. 그러나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에서 한국 수영 국가대표들은 한국 수영 사상 최고 성적을 갈아치우며 희망을 쏘고 있다. 역대 최고 순위 경신과 사상 첫 결승 진출 등 기념비적 기록들을 찍어내고 있다.

여자대표팀 김수지(21·울산시청)는 1m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다이빙 선수로는 최초다. 경영으로 넓혀도 박태환(30) 외 처음이다. 남자 다이빙에서도 우하람이 3m 스프링보드에서 최고의 성적인 4위로 2020 도쿄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아티스틱 수영대표팀 선수들도 사상 첫 출전한 프리 콤비네이션에서 세계선수권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골이 목표였던 여자 수구대표팀도 예견된 대패 속에도 매 경기 득점을 늘려가며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김서영(25)도 개인혼영에서 한국 여자선수로는 세계선수권 최초의 경영 메달을 노리고 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수영팬들 앞에서 한국 수영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평가하기에는 다소 모자랄 수 있어도 그들이 쏘아 올린 희망은 국민들의 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더 나아가 2020 도쿄올림픽에 대한 기대도 키웠다.

이렇게 대표 선수들은 ‘빛고을’에서 한국 수영의 존재와 성장을 알리고 있지만, 그 빛 뒤에서 여전히 전진하지 못한 채 빈축을 사는 그늘도 있다. 선수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을 넘어 미래를 구상해야 할 대한수영연맹은 여전히 바닥을 짚고 있다는 따가운 화살을 맞고 있다.

국가대표 운동복에 국가명 없이 후원사 브랜드를 넣었다가 대회 규정상 문제가 되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가렸다. 태극마크와도 같은 상징적 요체인 ‘KOREA’ 문구가 운동복에서 빠지자 부랴부랴 인쇄해 덧대어 막았다.

국가대표 운동복 등을 제작하려면 최소 3~4개월 소요되는데 대회 개막이 임박한 시점에야 후원사와 계약한 연맹 탓이 크다. 선수 운동복 등 뒤에 덧댄 ‘KOREA’를 본 국민들이나 선수들은 10억 명 이상 시청하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부끄러움을 감당해야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A사 브랜드 가리기 위해 붙인 테이프(왼쪽). 태극마크와 같은 'KOREA' 문구를 인쇄물로 덧댄 트레이닝복(오른쪽). ⓒ 연합뉴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A사 브랜드 가리기 위해 붙인 테이프(왼쪽). 태극마크와 같은 'KOREA' 문구를 인쇄물로 덧댄 트레이닝복(오른쪽). ⓒ 연합뉴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낯 뜨거운 자화상은 몇 장 더 있다. 대한수영연맹은 국제규정을 확인하지 않고 태극기가 새겨진 수영모를 지급, 경기 직전 수영모를 긴급 공수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그나마 수영모를 확보한 선수들은 네임펜으로 ‘KOREA’라고 적고 물에 뛰어들었다. 역영을 펼쳐도 모자랄 판에 사이즈가 맞지 않은 수영모를 착용한 탓에 100% 집중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국가대표팀 유니폼과 국제대회 규정 챙기기도 버거운데 센스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지난 16일 여자 수구대표팀의 역사적 첫 골의 볼도 챙기지 않았다. 1호골의 주인공도 “기념적인 공인데 찾을 수 있으면 찾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대한수영연맹이 제 역할을 다했던 것도 아닌데 놀랄 일이냐”며 실소하는 팬들도 많다. 2016년 3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2년여 동안 표류하던 대한수영연맹은 새 회장을 선출한 뒤 국민에게 사랑받고 꿈과 희망을 주는 연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부탁했다.

여전히 조직의 자격과 자질 자체는 국민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하는데 성원을 보내려야 보낼 수가 없다. 체계적 지원과 육성, 관리를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넘어 수영의 저변을 넓혀야 할 대한수영연맹의 현 상태를 보면, 전폭적인 금전적 지원 등은 고사하고 망신만 당하지 않을 수준의 운영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맹 내부의 사정은 있을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무능에 무능을 더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척박한 변방에서 선수들은 어려운 물길을 헤쳐 나가고 있다.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연맹이 오히려 짐이 된 모양새다. 선수들의 성과가 빛날수록 귓가에 맴도는 한마디가 있다. “누가 누구를 지원하냐”는 한 체육계 관계자의 조소 섞인 말이다. 딱 떨어져 맞는 작금의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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