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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 한다?


입력 2019.08.03 07:00 수정 2019.08.03 06:43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역사의 정설을 뒤집으려면 근거를 제시하여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역사의 정설을 뒤집으려면 근거를 제시하여야

지난 6월 25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 박해일, 전미선, 송강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6월 25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 박해일, 전미선, 송강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나랏말싸미’ 논란에 대해 영화는 영화로 봐줘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과연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영화 또는 영상물은 예로부터 대표적인 선전 도구였다. 정권 홍보, 국가 홍보, 또는 이념을 앞세운 세뇌용 영상들이 많이 제작됐다. 그런 영화나 영상물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심지어 이념이나 정권 홍보 차원에서 역사를 재단하기까지 하면 당연히 질타가 쏟아질 것이다. 일본 우익이 일제를 미화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 것인가?

이것을 보면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도 각각의 성격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하는, ‘그때 그때 달라요, 케바케’인 것이다.

‘나랏말싸미’의 문제는 감독의 역사관, 즉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 제작된 영상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판타지가 아닌 한글 창제 과정을 재구성한 역사영상 같은데 그것이 감독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또, 불교홍보 영상물 같은 느낌도 있다. 즉,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역사관을 알리고, 세종대왕과 한글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불교를 홍보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허탈감이 든다. 감독의 역사관과 불교홍보가 담긴 영상을 내가 왜 돈까지 줘가면서 시간을 할애해 지켜봤단 말인가?

미국은 자기들의 이념과 국가를 홍보하는 영상물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돈 내고 보도록 하는 신묘한 힘을 발휘한다. ‘탑 건’이라든가, 미국이 적대국의 위협을 물리치고 평화를 지킨다는 내용의 대부분의 블록버스터가 그렇다. 그 신묘한 힘의 정체는 엄청난 오락성이다.

‘나랏말싸미’에는 불행히도 그런 오락성이 부족해서, 선전물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거부감이 초래되는 것이다. 지금 매체들이 역사 논란 때문에 흥행이 안 됐다고 하는데, 사실은 오락성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재미만 있었다면 논란이 있어도 갈 사람을 갔을 것이고, 오히려 논란이 노이즈 마케팅으로도 작용했을 수 있다.

감독의 역사관, 이념이 강하게 표현됐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설사 상식을 깨는 소수의견이라 해도 의미 있는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에서 제기된 신미스님 한글 창제론엔 근거가 없다는 게 문제다. 역사의 정설을 뒤집으려면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훗날 정말로 신미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이 밝혀질 지도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밝혀지는 것이고, 지금 시점에서 ‘나랏말싸미’의 역사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역사라면 근거 없이 정설을 뒤집어도 대중이 일일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세종과 한글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며 가장 중요한 유산 중 하나에 대한 역사를 근거 없이 뒤집는 것에 한국인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영화는 영화로만 보고 입 닫아라’가 아니라 역사를 뒤집을 근거제시여야 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논리로 무조건 영화 자체에 대해 일절 비판을 못하게 하는 것은 때론 문제가 될 수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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