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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짜고치는 고스톱 판' 정비업계..수의계약 수위 조절해야


입력 2019.08.12 07:00 수정 2019.08.12 05:55        권이상 기자

올해 시공사 선정 정비사업지 58곳 중 35곳인 60%가 수의계약

정부 공정경쟁 위해 내놓은 계약업무 처리기준 이제라도 손봐야

올해 시공사 선정 정비사업지 58곳 중 35곳인 60%가 수의계약
정부 공정경쟁 위해 내놓은 계약업무 처리기준 이제라도 손봐야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경.(자료사진)ⓒ데일리안DB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경.(자료사진)ⓒ데일리안DB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두 사람이 편을 먹고 얕은 수로 남을 속이는 것을 빗대어 말할때 쓴다.

요즘 이 말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장에서 자주 들리고 있다.

최근 정비사업 업계에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과 건설사들의 간의 수의 계약이 판을 치고 있다.

시공사 선정을 위한 경쟁입찰이 두 차례 이상 유찰될 경우 조합은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실제 올 7월까지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지는 전국 총 58곳이다. 이 가운데 경쟁사 없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지는 35곳에 이른다.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지 중 절반 이상인 60% 가량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업이 확정된 셈이다.

특히 35곳 가운데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곳이 선점한 곳이 20곳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 부산·대구 등 대도시에 위치한 사업지다.

중견사들이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서울 사업지 2곳을 제외하면 경기도와 강원도, 충남, 전남 등 대부분 지방권이다.

물론 유찰의 이유에는 브랜드 파워가 있는 건설사가 사업지를 선점했을 경우 경쟁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입찰조건을 고의적으로 높여 애초 건설사들이 진입할 장벽을 두텁게 쳐 놓고 있는 곳이 상당수다. 가장 대표적인 변칙으로는 시공자 현장설명회에 보증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과거만해도 입찰전까지만 내면됐던 입찰보증금의 일부를 현장설명회 참석 전까지 수억원 현금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에 대해 조합들은 입찰 참여 의지가 확고한 건설사만 설명회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조합이 입맛에 맞는 대형사를 시공사로 선정하기 위한 변칙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마치 짜고치는 고스톱 판처럼 말이다.

특히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중견사들의 불만은 더 크다. 건설사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현설에 참여하기 전 건설사들은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내부 투심(투자 심의)를 통과하기 어렵다. 조합이 원하는 사업방향과 조건을 모르니 수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수의계약의 부작용이 일부 조합원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서울 소규모 재건축 조합원은 "조합이 사업초기부터 특정 시공사의 조건을 기준으로 사업 추진계획을 설명했다"며 "결국 몇차례 유찰 후 그 회사가 시공사로 결정돼 타사 조건이 어떤지 들어볼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권이상 기자ⓒ박진희 디자이너 권이상 기자ⓒ박진희 디자이너
업계에서는 정부가 경쟁입찰 활성화와 업체 선정 비리를 막기 위해 지난해 도입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도리어 조합과 건설사간의 담합을 부추기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정부는 진정으로 수주 쏠림이 아닌 공정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장 분위기를 더욱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비업계에 만연한 ‘밑장 빼기’를 간과한다면 정부도 그들과 한 패와 다름이 없지 않은가.

권이상 기자 (kwonsg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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