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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해결할’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다


입력 2019.08.11 05:00 수정 2019.08.10 22:31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 61>합계출산율 1.89명을 어떻게 했을까?

여성의 역할과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에서 ‘극복’의 답 찾아

<알쓸신잡-스웨덴 61>합계출산율 1.89명을 어떻게 했을까?
여성의 역할과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에서 ‘극복’의 답 찾아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이 1.89명에 이르는 출산 강국이다. 그런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제도나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 스웨덴 법율상 어린이 얼굴을 노출할 수 없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이 1.89명에 이르는 출산 강국이다. 그런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제도나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 스웨덴 법율상 어린이 얼굴을 노출할 수 없다. (사진 = 이석원)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 문제는 숱한 해결점을 제시하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골치 아프고 심각한 문제다. 반세기도 안된 197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출산제한정책의 캐치 프레이즈가 무색한 것이다.

특히 20세기의 끄트머리부터 권력을 잡은 자들은 저마다 인구가 줄어가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들이밀었다. ‘셋째는 나라가 키워줍니다’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TV에 나와 광고를 하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돈더미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점점 더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어갔다.

얼마 전에는 한 국회의원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현재 만 6세까지 소득 하위 90%에게 지급되는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을 소득에 관계없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 100% 지급하고, 이를 3년 내 30만 원으로 확대하자고. 게다가 30만 명의 임산부에게 토탈케어 카드 200만 원 을 지급하고, 출산장려금도 2000만 원을 지급하자고.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까?

2017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05명이다. 1.3명 이하가 초저출산이라고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든 OCECD 국가에서든 최하위에 속한다. 저출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지난 12년 간 126조원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의 현재 합계출산율은 1.89명이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고, OECD에서는 최상위에 속한다. 흔히 사람들은 스웨덴이 아동복지의 천국이고, 임산부들에게 재정적 지원이 많기 때문에 낮았던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스웨덴은 아동 한 명 당 한 달에 약 1200 크로나의 수당을 지급한다. 자녀의 수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대략 한국 돈 15만 원 정도다. 한국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대신 한국은 만 6세까지 지급하지만 스웨덴은 만 18세까지 지급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1인당 국민소득(GNI)가 5만 8000 달러가 넘고, 한국이 채 3만 달러가 안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스웨덴에는 출산장려금이라는 게 없다. 한국이 각 지자체별로 출산장려금을 주는 것을 생각하면, 또 앞선 국회의원의 제안대로 2000만 원이라는 출산장려금을 준다면, 한국은 적어도 아동과 출산에 관해서는 스웨덴을 완전히 뛰어넘는 복지를 행하는 셈이다.

15만원 남짓의 아동수당, 게다가 출산장려금 한 푼 주지 않는 스웨덴이 1.89명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 이전과 출산 이후의 여성에 관한 문제다. 시민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로환경의 문제이자 국가 시스템의 문제다.

스웨덴 여성은 80% 넘게 직장 생활을 한다. 스웨덴 부부의 맞벌이 비율도 85%를 상회한다. 어떤 직종에서도 여성과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인식이 없다. 버스나 중장비를 운전하는 여성이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적지 않다. 건설 현장에도 남성과 여성의 일의 종류가 다르지 않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쓸 뿐이다.

사무직에서는 더더욱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다. 대부분 직장에 직급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직급이 있다고 해도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 때문에 직급과 월급의 차이가 없다. 철저히 능력의 문제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을 떠났다가 같은 직장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비율도 80%에 이른다. 나머지 20%도 자신의 선택으로 일을 바꾸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도 이전 직장의 경력은 100% 활용된다. 즉 출산 후 여성이 직장에 복귀하는 비율이 높고, 경력 단절은 없다.

아빠와 엄마의 역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출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진 = 이석원) 아빠와 엄마의 역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출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진 = 이석원)

집안에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 구분도 없다. 아빠는 엄마와 거의 동일한 가사를 담당한다. 어차피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다 보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를 찾아오는 일도 자연스럽게 분담한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합당하게 나누거나 함께 한다. 육아의 주체는 엄마가 아니고 엄마와 아빠라는 건 ‘상식’의 문제다.

어느 날 갑자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폐업을 할까봐 마음 졸이면 아이 돌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의 모든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공공기관이다. 설령 어떤 이유로 공공의 돌봄이 중단된다면 다시 휴가를 통해 아이 돌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엄마든 아빠든. 명확하고, 당연한 권리이다.

이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기본 시스템을 기업은 당연히 수용하고 시민들은 충분하고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고, 이것이 스웨덴 출산율의 이유다. 물론 아이가 다 자라 독립하는 시기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아동수당은 스웨덴의 가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바보다.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2000만 원의 현금을 안겨준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 2000만 원을 받고 직장으로 복귀할 수 없다면, 다른 직장을 구했는데 이전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수습사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그것 때문에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선별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히 이뤄져야 할 아동복지의 문제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막대한 출산 장려금을 준다는 것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거나, 또는 어떤 이유로든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적 세금 지출이 될 수도 있다.

스웨덴의 경우를 가지고 한국의 저출산 해결을 도모할 수는 없다. 스웨덴은 스웨덴의 방식과 정서가 있는 것이고, 한국은 한국만의 인식과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다마 스웨덴의 경우를 가지고 생각해 볼 바는 있다. 신이 여성에게만 부여한 고결한 역할인 출산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그 숱한 불평등과 차별을 완전히 소멸시켰을 때 비로소 진실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여성성의 가장 큰 자부심이 된다는 것이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존귀함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돈으로 해결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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