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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공동체’ 꿈에서 깨어나야 길이 보인다


입력 2019.08.12 09:00 수정 2019.08.12 08:32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우릴 향해 위협하고 이죽거리고

군사동맹국으로서의 신뢰 상실…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을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우릴 향해 위협하고 이죽거리고
군사동맹국으로서의 신뢰 상실…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7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백보드 앞을 지나고 있다. 이 대표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 대해“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는 세기의 만남이 이뤄졌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고 밝히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이 어우러져 사상 최초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이 됐다. 사전합의가 없었음에도 신속하게 회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남북미 정상 간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7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인쇄된 백보드 앞을 지나고 있다. 이 대표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 대해“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는 세기의 만남이 이뤄졌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고 밝히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화답이 어우러져 사상 최초의 남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이 됐다. 사전합의가 없었음에도 신속하게 회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 남북미 정상 간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고 하였는데 바로 남조선 당국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국장의 11일 담화 첫머리다. 저들은 한미연합 지휘소 훈련이 20일까지의 일정으로 이날 시작된 것을 겨냥해 이 담화를 냈다. 조롱‧모욕‧비난의 용어를 골고루 담아 공격을 해댔다. 김정은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훈련의 명칭조차 제대로 붙이지 못했는데, 이게 오히려 저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연습의 명칭이나 바꾼다고 하여 훈련의 침략적 성격이 달라진다거나 또 우리가 무난히 넘기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똥을 꼿꼿하게 싸서 꽃 보자기로 감싼다고 하여 악취가 안 날 것 같은가.” 이렇게 조롱조로 힐난했다.

‘청와대’를 직접 겨냥해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우릴 향해 위협하고 이죽거리고

이뿐이 아니다. “도적이 도적이야 하는 뻔뻔스러운 행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앞으로 대화에로 향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 사이에 열리는 것이지 북‧남대화는 아니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하고는 더 말할 게 없다는 통고나 다름없다. 이 말에 덧붙여 한껏 이죽거렸다.
“또다시 정경두 같은 웃기는 것을 내세워 체면이라도 좀 세워보려고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다면 기름으로 붙는 불을 꺼보려는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이다. 그렇게도 안보를 잘 챙기는 청와대이니 새벽잠을 제대로 자기는 코집이 글렀다.”

정 국방장관을 ‘웃기는 것’으로 표현하며 망신을 주고 청와대를 심하게 타박했다. 명백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 외무성 국장의 모욕적 위협이고 경고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같은 날 “공식 입장을 낼 것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실질적인 협상이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기 전에는 그렇게 긴장을 끌어올려 왔다”며 그렇게 말했다고 뉴시스가 전했다. 지속적으로 모욕과 군사도발을 당하면서도 한없는 인내심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외무성 부대신이 지난 2일 BS후지TV 방송에 출연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 ‘품위 없는 말’ ‘비정상’ ‘무례’라는 표현을 썼다고 맹렬히 반격하던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반박은커녕 되레 해명까지 해주는 까닭이 도대체 뭔가. 이는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다. 국민이 같이 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문재인‧정경두일 수가 없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언급에서 깨닫는 바가 정말 없는가. 그는 현지시간으로 10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 지휘소 훈련에 들어간데 대한 북측의 미사일 위협을 오히려 역성드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전날 김정은의 ‘매우 긍정적인 내용의 친서’를 받았다면서 김 위원장이 연합훈련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훈련비용을 돌려 받겠다고도 했다.

군사동맹국으로서의 신뢰 상실

그는 지난 5월 26일 일본 방문 중에 그달 4일과 9일에 있었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 “북한이 작은 무기 몇 발을 발사한 게 일부 참모를 불안하게 했지만 난 괜찮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달 25일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는 “누구나 하는 작은 것들(smaller ones)을 시험했다”(25일), “미국을 향한 경고라고 하지 않았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26일)고 대수롭잖게 여긴다는 뜻을 오히려 강조해 보였다. 한국에 대한 위협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랬으니 김정은이 기고만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보다는 자신이 더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영향력에서는 자신이 훨씬 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단거리 미사일은 트럼프가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건 당사자 간에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을 보이니까 아주 신이 났을 법하다.

“이제 더는 문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 이번에도 트럼프가 먼저 미‧북 정상회담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의 관심과 개입은 오히려 성가시기만 할 뿐이다. 미‧북 간의 협상에는 관심 갖지 말고 ‘제 할일’이나 해주면 좋겠는데 자꾸 미‧북 정상회담을 넘보는 것 같아 신경 쓰인다. 대우를 받고 싶으면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나 성사시키든가. 괜히 F35 스텔스기 같은 걸 도입하거나 연합훈련 같은 걸 하거나 하지 말고!” 어쩌면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그러는 데도 나름의 배경이 없을 수 없다. ‘한반도 운전자’ 운운하는 게 고까울 수 있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드 추가배치 않겠다. 미국의 MD 참여하지 않겠다. 한‧미‧일 군사동맹 않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 한‧중합의(2017년 10월 31일)라는 것을 발표했을 때 이미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동맹국이라는 인식을 가졌을 것이다.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한국 정부가 썩 정직한 중재자‧촉진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 극복을

어쨌든 이제 한국과 미국은 과거와 같이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 동맹관계라고 보기는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 방치 전략까지 간 것은 아니겠지만 철저히 계산하는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유난히 ‘돈’을 따진다. 그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소홀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동맹이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예사로 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거나 한‧미 연합훈련 마음에 안 든다는 식의 말은 동맹국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합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우리의 보호를 받든가 그게 싫으면 그만 두든가’라는 말로 들리지 않는가.

한국의 입장이 난처한 것을 사실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조선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을 명확히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주변 4강 모두의 불신을 초래하는 한편 북한으로부터는 지속적인 조롱과 무시에다 도발까지 받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 대통령과 그의 지근 참모들이 ‘민족공동체’ 건설의 꿈에 집착했던 게 문제였다. 김정은이라도 문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확고히 지켰더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나름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그건 가당치 않은 기대였다. 김정은에겐 체제의 존속‧강화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달러와 물자의 보급기지로 삼는 것을 모르지만 그 이상의 관계발전은 치명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가 있다. 문 대통령의 구애가 통하지 않는 게 그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길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 정부가 거기서 일탈함으로써 외교‧안보의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신 냉전’운운하며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현실적 생존 조건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폐쇄적‧배타적‧보복적 민족주의에 등 떠밀려 점점 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백일몽에서 깨어나면 길이 보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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