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금융수수료 전쟁-상] 과열 역풍 직면한 은행들, 금리 추락에 '고심'


입력 2019.09.04 06:00 수정 2019.09.03 21:37        부광우 기자

4대銀 상반기 수수료수익 2.4조…순위 다툼 치열

'DLS 쇼크' 부른 출혈 경쟁…저금리 해법 '미궁'

국내 금융사들이 각종 수수료를 둘러싸고 저마다 새 판짜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금융권에 따라 수수료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문제는 생존을 위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탓에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공정한 수수료의 접점을 찾기 위한 고차방정식을 눈앞에 두고 해법을 찾기 위한 금융사들의 고민을 들여다봤다.

4대銀 상반기 수수료수익 2.4조…순위 다툼 치열
'DLS 쇼크' 부른 출혈 경쟁…저금리 해법 '미궁'


국내 4대 은행 수수료 수익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4대 은행 수수료 수익 추이.ⓒ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국내 은행들이 전통적인 이자 수익 대신 금융 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이익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대출 시장이 사실상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이자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뚜렷해진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한 경쟁 과열이 최근의 파생상품 손실 쇼크와 같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 주범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기준금리 추락으로 수수료 실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은행들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의 수수료 수익은 총 2조4317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3954억원) 대비 1.5%(363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별로 보면 다소 온도차가 나는 모습이다. 가장 수수료 수익 규모가 큰 국민은행이 주춤하는 사이, 이를 뒤쫓는 경쟁사들의 추격에는 더욱 속도가 나는 모양새다.

실제로 국민은행의 수수료 수익은 7370억원으로 같은 기간(7876억원) 대비 6.4%(506억원) 줄었다. 이런 와중 신한은행은 수수료 수익을 6320억에서 6903억원으로 9.2%(583억원) 늘리며 국민은행과의 격차를 상당히 좁혔다. 이밖에 우리은행 역시 5545억원에서 5656억원으로, 하나은행도 4213억원에서 4388억원으로 각각 2.0%(111억원)와 4.2%(175억원)씩 수수료 수익이 증가했다.

은행들이 수수료 실적에 목을 매는 이유는 더 이상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진 시장 환경에 있다. 국내 대출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계 빚은 1500조원을 훌쩍 넘어가며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고 있고, 불경기로 기업들의 경영 환경까지 악화된 탓에 은행들의 추가적인 대출 확대는 힘겨워진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주목한 지점이 수수료다. 대출에 제동이 걸리면서 이자 수익 개선이 힘겨워진 만큼 비(非)이자이익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여기서 수수료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유가증권이나 외환 투자, 신탁 등 비이자이익의 다양한 항목이 균형 있게 성장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당장 성과를 내기 쉬운 상품 판매 수수료의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전했다.

◆"터질 것이 터졌다" 파생상품 손실 사태 '화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이 8월 22일 파생결합증권 사태와 관련해 감독당국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내일부터 해당 은행에 대한 합동검사를 실시해 조속한 원인규명 및 피해 구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금융감독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사진)이 8월 22일 파생결합증권 사태와 관련해 감독당국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내일부터 해당 은행에 대한 합동검사를 실시해 조속한 원인규명 및 피해 구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금융감독원


문제는 이 같은 은행들의 수수료 쟁탈전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수료를 늘리기 위해 은행들이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상품들이 꼭 소비자에게도 유리한 것은 아닌 탓이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수수료가 많이 발생하는 상품을 적극 판매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높은 평가 점수를 매기는 내부 지표까지 동원해가며 독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권을 강타한 파생결합증권(DLS) 사태는 이런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수료 수익 확대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은행들의 강박감이 불상사를 불러온 배경으로 지적되면서다.

최근 투자자들의 손실 우려가 커지며 논란이 되고 있는 펀드는 독일과 영국 등의 채권 금리와 연계된 DLS다. DLS는 이 같은 이자율이나 환율 등의 변동과 연계해 만기 지급액이 정해지는 파생상품인데, 이들 국가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금리가 예상과 달리 급락하자 약정대로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10년물 채권금리에 연동한 DLS다. 해당 금리가 -0.2% 이상을 유지하면 연 3~5%의 수익을 지급하지만, 이보다 낮아지면 0.1%포인트 초과 하락마다 원금의 20%씩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그런데 독일 10년물 채권금리가 ·0.7%를 밑돌 정도로 추락하면서 관련 DLS는 깡통이 될 공산이 커졌다. 금융사들이 판매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 잔액은 8224억원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보유량이 각각 4012억원과 3876억원 등 총 7888억원으로 95.9%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일부 은행들이 공격적인 DLS 영업에 나섰던 배경으로는 수수료를 키우기 위한 실적 압박이 꼽힌다. 은행 입장에서 수익 기간이 1년 안팎인 DLS처럼 만기가 짧은 파생상품들은 단기간에 수수료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4대 시중은행들 중에서도 비교적 수수료 수익이 적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사태의 진원지가 된 모습은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기 파생상품은 잦은 매매로 판매 수수료가 자주 발생하고, 리스크도 커 수수료율도 높은 편"이라며 "수수료 실적이 경쟁사들에 비해 떨어지는 은행일수록 더욱 판매에 유혹을 느꼈을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낮아지는 금리, 더 절실해진 수수료 '이중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DLS 쇼크로 인해 파생상품을 통한 은행들의 수수료 경쟁에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위험성이 높은 금융 상품들에 대한 관리 강화가 불가피한 만큼, 관련 영업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를 둘러싼 전면 조사에 나선 상황 역시 은행들로 하여금 몸을 사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역대 최저치를 향하고 있는 기준금리는 은행들을 한층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대목이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대출 이자율 하락으로 통상 은행의 이자 수익도 함께 위축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결국 비이자이익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에 수수료 확대에 발목을 잡히며 이중고에 처하게 됐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7월 열린 통화정책 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이로써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은 2017년 11월 금리인상 이후 20개월 만에 다시 금리인하 쪽으로 바뀌게 됐다. 지난 달 금통위에서는 일단 동결을 결정했지만, 시장에서는 올해 말과 내년 초에 각각 한 차례씩 두 번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점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준금리는 사상 최초로 1%까지 떨어지게 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금융권의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LS 사태가 단기적으로 부정적인 이슈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비이자이익 확대는 은행들에게 필수적인 요소"라며 "하지만 은행의 실적을 위한 것이 아닌, 고객들의 시선에 맞춰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