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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이여 국가의 패망을 구경만 할 것인가?


입력 2019.09.09 09:00 수정 2019.09.09 08:55        데스크 (desk@dailian.co.kr)

<박휘락의 안보백신> 갈증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선비정신을 상기해야…율곡과 퇴계라면?

적극적 현실참여는 지식인의 기본요건

의병의 정신으로 국가안보 위기에 대처해야

<박휘락의 안보백신> 갈증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선비정신을 상기해야…율곡과 퇴계라면?
적극적 현실참여는 지식인의 기본요건
의병의 정신으로 국가안보 위기에 대처해야


서울대 교수 6명을 포함한 84개 대학 교수들은 지난 5일 오후 2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조국의 후보 사퇴 촉구 및 문재인 정권 국정 파탄 규탄’이라는 제목으로 시국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서울대 교수 6명을 포함한 84개 대학 교수들은 지난 5일 오후 2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조국의 후보 사퇴 촉구 및 문재인 정권 국정 파탄 규탄’이라는 제목으로 시국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갈증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

2019년 9월 5일 200명 정도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지난 2년 4개월간 경제, 안보, 외교 등 전 분야의 국정 실패로 대한민국은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이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우중(雨中)에도 대부분의 언론과 상당수 시민 유튜버들이 취재에 동참하여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국민들이 학자, 언론인, 전문가, 여론 지도층 등 다양한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목말라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의 위기 시마다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구국의 활동을 주도하였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한말(韓末)에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자 지식인들이 의병(義兵)을 조직하여 나섰고, 현대에 들어서 권위주의 시대의 종식에도 지식인들이 앞장섰다. 그런데 교수 시국선언문에서 진단하였듯이 “문재인 정권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정책 실패로 초래된 총체적 국가위기” 하에서도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방관 또는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모든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으로 확산되고, 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로 확산되어야 한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서 상황인식이 다를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은 적화통일의 위험까지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다. 1950년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을 시도했던 북한은 그것을 재시도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약속은 거짓으로 판명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공격을 위해 특화된 다양한 단거리 미사일들을 시험발사하면서 협박과 조롱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현 정부는 전통적 우방인 일본과 안보협력을 중단하면서 분쟁상태로 돌입하고 있고, 미국과의 동맹도 형식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국가안보를 위한 아무런 전략도 계획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지식인들이 현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침묵하고 있는가? 아니면 위기 상황임에도 나서기가 두려워 망설이고 있는가? 전자라면 상황인식이 너무나 안일하고, 후자라면 지식인들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경제나 사회의 문제는 잘못되어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국가안보는 한번 잘못되면 회복이 불가능하고,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적화통일된 이후 어떤 학살과 숙청이 일어날 것인지를 한번 상상해보라. 국민들은 주말마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구국을 외치고 있는데, 지식인들이 구경만 해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지식인의 진정한 사명에 관하여 깊게 생각해봐야할 상황이다.

선비정신을 상기해야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중심적인 집단은 지식인이었다. 그의 전형적인 사례가 ‘선비정신’으로서 일단은 지덕체(智德體)를 갖추고자 노력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후에는 필요시 출사(出仕)하여 세상을 바르게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정신이었다. 어느 인터넷 포털을 검색하니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신”으로 선비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선비’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서, 고대에 제사를 주관하는 무사였다. 조선시대에 이들은 ‘사대부(士大夫)’라고 불렸고, ‘수기치인(修己治人)’ ‘솔선수범(率先垂範)’ ‘견리사의(見利思義)’ ‘지행일치(知行一致)’를 강조하였다. 선비들은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즉 개인의 인격을 바르게 한 다음에 집안을 화평하게 만들고, 나아가 국가를 바르게 만들면서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현대의 지식인들은 편안할 때는 선비정신을 과시하지만 위기 시에는 숨고 있다.

그 동안 현실에 참여한 일부 지식인들이 잘못된 모습을 보인 점은 있다. ‘정치교수(polifessor)’라는 말이 회자되었듯이 일부 지식인들이 ‘수신’이나 ‘제가’는 물론이고, 공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벼슬’만 쫓아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않아서는 곤란하다는 말처럼, 어떤 오해를 받을까봐 현실참여를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 고고한 지식인이었음을 자랑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율곡과 퇴계라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지식인들의 현실참여는 당연했고, 그러한 적극성 때문에 조선의 왕조가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50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당시의 선비들의 출사와 학문에 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그들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가 없었다면 조선은 더욱 문제가 많은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의 국정참여 형태는 다양하였다. 예를 들면,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두 사람의 유학자였지만 현실참여의 형태는 대조적이었다. 율곡은 현실에 더욱 큰 비중을 두었고, 퇴계는 연구와 교육에 더욱 정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분 모두 어떤 형태로든 현실정치에 참여하여 국가를 더욱 좋은 모습으로 바꿔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공통적이다.

퇴계 이황은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났고, 율곡은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두 사람 사이에는 35년의 나이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퇴계는 1570년(선조 3)에 70세로 사망하고, 율곡은 1584년(선조 17)에 49세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사망날짜는 14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두 사람은 34년 동안 조선의 공기를 함께 마시고 있었다. 율곡이 23세 되는 1558년에 58세되는 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고 하니, 두 사람은 최소한 12년 동안 활발한 교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의 공부는 율곡이 더욱 돋보였다. 율곡은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함으로써 천재성을 보였고, 그 후 총 9번의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리었다. 그러나 퇴계는 27세에 초시에 합격하였고,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장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율곡은 현실정치에 전념하였고, 퇴계는 학문에 중점을 두면서 벼슬은 사양하는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으로는 율곡, 학문적으로는 퇴계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다.

관직의 경우 율곡은 다양한 직책을 거쳐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1574년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임명된 후 올린 ‘만언봉사(萬言封事)’ 특히 “기국이비국(其國而非國)” 즉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라는 말은 최근의 한국 상황에 빗대어 자주 인용된다. 사망 직전인 1583년에는 병조판서로서 “시무육조(時務六條)”를 통하여 십만양병설을 비롯한 국방력 강화방책을 주장하였다. 퇴계는 대조적으로 다양한 공직을 수행하였으나 대부분 단기간에 그쳤고, 귀향과 출사가 반복되었으며, 외직인 단양군수나 풍기군수를 자청하였듯이 중앙에서의 정치에 흥미를 갖지 못하였다.

두 분의 일생을 함부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세상을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공통적이었다. 그 방법과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지식인들이 국가의 위기를 모른 체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분명히 ‘수기치인’ ‘솔선수범’ ‘견리사의’ ‘지행일치’의 선비정신에 어긋난다.

적극적 현실참여는 지식인의 기본요건

학자, 언론인, 전문가, 여론주도층의 적극적 현실참여와 관련하여 평화 시의 참여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더라도 위기 시에 분연히 일어나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적 노력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홍의대장(紅衣將軍)으로 유명한 곽재우(郭再祐)는 학문연구에만 전념하던 선비였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사재를 털어서 의병을 조직함으로써 항쟁을 하였고, 그것이 종료되자 벼슬의 제안을 한사코 마다한 채 학문으로 되돌아갔다.

학자, 언론인, 전문가, 여론주도층의 현실참여와 관련하여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의 제반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들을 조직화하여 저항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킨 것과 같은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다. 국가가 잘되고 있을 때 나서서 벼슬에 욕심을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국가가 위기일 때 분연이 일어나서 위정자의 잘못을 질타하고, 올바른 국민여론을 형성하며, 국가의 바른 목표, 전략, 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지식인의 사명이고, 국민의 저항권을 일깨워 주는 희생적 행동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할 경우 지식인들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단체를 만들거나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그를 통하여 적극 참여로 인한 위험을 분산시키고, 함께 노력함으로써 영향력을 배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인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함께 행동할 경우 정치인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국정의 방향을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이와 같이 위기인데, 과거에 가끔씩 볼 수 있었던 지식인들의 시국선언문이 희귀해진 것은 분명히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그래도 위험부담이 크다고 걱정될 경우 지식인들은 자신이 전공하였거나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분야나 업무와 관련하여 현재의 우리 국가가 처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활발하게 제시할 수도 있다. 지식인들이 객관적으로 현 사회를 분석해낼 경우 국민들은 그것을 읽거나 참고하여 올바른 인식을 가질 것이고, 정치인도 그럴 것이며, 국민여론도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기 시에 직접 나서기 어렵다는 지식인들은 국가의 필요성에 더욱 부응하는 연구, 전문적 업무수행에 진력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참여를 하지 않더라도 지식인들은 현실을 바꾸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동료들을 비난하거나 냉소적으로 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실참여 지식인 중에는 ‘폴리페서’처럼 정치만을 위하여 학문적 지위를 활용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대다수는 국가의 안전과 번영에 기여하고자 학문의 기회를 희생하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현실참여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지식인은 최소한으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동료들을 칭찬해주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의병의 정신으로 국가안보 위기에 대처해야

지식인의 경우 학문과 자신의 전공 및 담당분야 발전에 조용히 몰두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나라가 존재해야 지식인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나 사회의 문제점은 다시 노력하면 복원이 가능하지만, 국가안보가 잘못되면 국가의 패망은 물론이고, 나, 그리고 내 가족의 파멸로 연결된다. 현재 한국은 개인이 치명적인 암에 걸려있는 상태와 유사하다. 북한의 핵위협 하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현 상황도 국가안보의 위기가 아니라고 평가한다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고,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스님들도 무기를 들듯이 현재처럼 국가가 총체적 위기로 내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학자, 언론인, 전문가, 여론주도층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조선시대 의병을 모집하여 외적에 대응하였듯이 현대의 지식인도 의병을 모집하여 국가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일조해야 한다. 지식인이라면 진정한 선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부분적으로라도 구현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봇물을 이뤄야할 것이고, 지식인이 그를 선도해야하지 않겠는가? 조상들이 의병을 일으킨 마음을 상기해보자.

글/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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