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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자영업자가 가장 행복한 나라


입력 2019.09.14 06:00 수정 2019.09.11 11:17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 66>70년대까지 가혹했던 세율 대폭 낮추고 지원 프로그램 늘려

이코노미스트 ‘자영업자 행복도 조사’서 스웨덴은 유럽 1등

<알쓸신잡-스웨덴 66>70년대까지 가혹했던 세율 대폭 낮추고 지원 프로그램 늘려
이코노미스트 ‘자영업자 행복도 조사’서 스웨덴은 유럽 1등

스웨덴은 자영업 비율이 매우 낮다. 자영업보다는 직장에 다니는 것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사진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번화한 드로트닝 거리.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자영업 비율이 매우 낮다. 자영업보다는 직장에 다니는 것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사진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번화한 드로트닝 거리. (사진 = 이석원)

2000년대 중반 스웨덴 굴지의 기업 에릭슨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던 한국 교민 이강민 씨(가명. 50)는 대규모 구조조정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칼은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어차피 2년간 80%에 해당하는 월급이 2년간을 지급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이직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이 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음식 만드는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이 씨는 자신이 음식 만드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는 가족과 상의해서 한국 음식점을 차리기로 했다.

이 씨는 우선 사회보험청(Försäkringskassan)에서 창업 지원금 20만 크로나(약 2500만원)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도 퇴직자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리고 코뮌(기초자치단제)에서 20만 크로나의 지원금을 추가로 받았다. 또 주거래 은행인 SEB에서 100만 크로나(약 1억 2500만원)를 연 1.67% 금리로 50년간 장기 할부 대출을 받았다.

몽골 사람이 운영하던 일식당을 인수했는데, 식당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미 입소문도 나 있었고, 같은 동양 음식이라 내부 수리에도 큰 품이 들지는 않아 이 씨는 현재 10년 넘게 알차게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은 ‘직장인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노동 환경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 시간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충분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자기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직장인에 비해 휴가도 짧고, 업소를 운영하는 시간도 직장 근무 시간에 비해서는 훨씬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영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자기 시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스웨덴은 자영업 비율이 매우 낮다. 2014년 영국의 싱크탱크인 IPPR(The Progressive Policy Think Tank)의 통계에 의하면 스웨덴의 자영업 비율은 9.1%다. 6.6%인 노르웨이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같은 유럽에서도 30%가 넘는 그리스나 22%에 이르는 이탈리아에 비해 매우 낮고, 최근 자영업자 비율이 늘고 있는 영국도 14.1%도 스웨덴보다 높다.

그런데 스웨덴은 1970년대에도 자영업 비율이 낮았다. 자영업자에 대한 세율이 월급생활자에 비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삐삐 롱스타킹(말괄량이 삐삐)’의 저자인 국보급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76년 3월 3일 한 신문에 기고한 단편 동화 ‘모니스마니엔에 사는 폼페리포사’가 그걸 잘 보여준 바 있다. (이 단편의 이야기는 하수정 저 ‘스웨덴이 가장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2012년 후마니타스)를 참고하세요.)

가상의 나라 모니스마니엔(Mnsmanien)에 사는 동화작가 폼페리포사(Pomperipossa)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지만 대체로 모니스마니엔의 통치자에게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책이 많이 팔릴수록 자신은 더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간 폼페리포사 수익 200만 크로나(약 2억 5000만원), 소득세 185만 크로나, 복지세 10만 8000 크로나, 추가 세금 2% 3만 7000 크로나, 세금 총합 199만 5000 크로나, 폼페리포사의 순수익 5000 크로나’

200만 크로나를 벌었는데 고작 5000 크로나만 남은 폼페리포사는 결국 책 쓰는 일을 집어치우고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쓴 후 생활지원금을 받기로 했다. 그러면서 폼페리포사는 “어찌 되었든 아직까지 모니스마니엔은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사회‘라고 말한다.

2014년 IPPR이 발표한 유럽 각국의 자영업 비율 통계. (사진 IPPR 홈페이지 캡처) 2014년 IPPR이 발표한 유럽 각국의 자영업 비율 통계. (사진 IPPR 홈페이지 캡처)

당시는 작가도 자영업자로 구분돼 있었고, 자신이 작가인 스웨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스웨덴 자영업자에게 지워지는 엄청난 세금의 압박을 그런 식으로 풍자했던 것이다. 당시 올로프 팔메 총리가 급격한 증세 정책을 실시한 이후 스웨덴의 자영업 비율은 6% 미만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물론 지금 스웨덴의 자영업자들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풍자했던 그 시대처럼 높은 세율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영업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며 1990년 이후 세율도 대폭 낮췄고, 소규모의 자영업자에게는 면세의 혜택까지 주고 있다.

스웨덴에서 연구하는 홍희정 박사는 자신의 책 ‘스웨덴에서 한국의 미래를 꿈꾸다(2019. 한국학술정보)에서 “3명 이하를 고용하고, 연 소득 1만 5000 크로나 이하의 자영업자는 세금을 면제해 주고, 10명 이하를 고용하고, 연 순매출액 2400만 크로나 이하의 자영업자는 회계사 고용의 의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스웨덴에서 자영업은 이민자 출신이 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새에 중국과 태국, 몽골의 이민자들이 식당 운영을 도맡아 하다시피하고 있다. 미용실이나 네일 아트 등 뷰티와 관련한 업종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민자들이 주로 진출하는 업종이다.

또 다른 유형의 식당과 함께 의류 판매 등은 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고, 남미의 이민자들이나 유럽 다른 국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공공 의료가 아닌 개인 병의원이나 술집 등을 운영하는 일이 많다.

아무래도 스웨덴 사람들이 자영업을 기피하는 반면, 스웨덴 기성 사회에 편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지 않은 이민자들이 취업보다는 창업을 선택하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민자 사회조차도 스웨덴에서 나고 나라며 스웨덴 교육을 착실히 받은 자녀들은 자영업보다는 취업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한 ‘유럽 자영업자 만족도’조사에서 스웨덴의 자영업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 그런 점을 시사한다.

‘직장인이 가장 행복한 나라’인 것도 모자라 ‘자영업자도 행복한 나라’가 된다면, 직장인도 자영업자도 최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웨덴은 점점 더 먼 나라가 될 듯하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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