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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의사자 불인정, 고인을 욕보였다


입력 2019.09.25 08:20 수정 2019.09.25 08:07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공의 일에 희생, 피해 당한 이들 적극 예우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공의 일에 희생, 피해 당한 이들 적극 예우해야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진료 중이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대해 의사자 불인정 결정이 나왔다. 유족이 의사자 지정 신청을 했고, 보건복지부 의사상자심사위원회가 심사했는데 불인정됐다는 것이다.

의사자는 생명과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을 구하기 위한 행위를 하다 숨진 사람을 일컫는다. 심시위원들은 임세원 교수의 경우 ‘타인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임 교수가 아무 행위도 안 한 것이 아니다. 환자가 흉기를 휘두를 때 임 교수가 대피공간으로 피신해 문을 닫고 있었으면 공격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 교수는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을 더 염려해, 대피공간으로 피신하지 않고 진료실 밖으로 나가 간호사들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임 교수는 밖에서도 바로 도망치지 않고 간호사의 안위를 확인하며 피하라는 손짓을 하다 범인에게 포착돼 결국 치명적인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관련 대법원 판례는 타인을 구하려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를 한 경우뿐 만 아니라, 이와 밀접한 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이도 의사자로 인정한다. 임 교수는 ‘밀접한 행위’에 해당이 되고, 더 나아가 대피공간으로 피신하지 않고 타인에게 계속해서 위험을 알린 행위도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데도 복지부 위원회가 규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해 의사자 불인정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꼭 칼 휘두르는 사람에게 달려들어야만 의사자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인가? 의사자 인정에 너무 소극적이다.

의사자 인정은 의로운 일을 한 고인을 우리 공동체가 기리는 것이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에 대한 교육적 효과도 있는 일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을 염려해 행동한 사람이라면 규정을 폭 넓게 해석해 의사자로 적극적으로 인정해서 충분히 예우해야, 우리 공동체에 의로운 행동을 하려는 기풍이 진작될 것이다.

국가가 지나치게 깐깐한 태도를 보이면, 그 자체가 고인을 욕보이는 것이고 일반 국민들로 하여금 ‘남을 위해 애쓸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무엇을 위한 불인정인가?

북의 목함지뢰 때문에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가 전상 판정을 받지 못한 일도 그렇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너무 소극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했다.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지만 어쨌든 경계를 서다 적의 무기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상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의로운 행위를 한 시민, 나라를 지키다 부상당한 군인의 공을 인정하는데 국가가 인색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공공의 일에 희생하는 것에 국민이 냉소하게 될 것이다.

고 임세원 교수의 유족들은 서울행정법원에 의사자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재헌 예비역 중사는 전상 판정을 받지 못한 것에 이의 신청을 냈다. 문 대통령도 재검토 지시를 내렸다. 두 사건은 각각 법원과 보훈심사위원회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됐다. 이번엔 전향적인 결정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 각 부처가 공공의 일에 희생, 피해를 당한 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예우해야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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