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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PB의 뜻을 또 왜곡하는 언론들


입력 2019.10.13 05:00 수정 2019.10.13 04:23        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인 김경록 씨 관련 사건이 계속 놀라운 형태로 진행된다. 얼마 전에 김경록 씨가 유시민의 ‘알릴레오’ 방송을 통해 자신의 말이 한 달여간 정반대로 알려졌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그런데 그 보도 직후 다수 언론의 추가 보도가 또 충격적이다.

보수진보 성향을 막론하고 다수의 매체가 ‘김경록 씨가 증거인멸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방송이 그 부분을 빼고 방송했다’고 보도했다. 유시민이 김경록 씨의 말을 취사선택 왜곡했다는 지적이 도처에서 쏟아졌다.

이게 충격인 이유는 인터뷰에서 김경록 씨가 증거인멸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경록 씨는 자신이 증거를 없애지도 않았고, 없앨 의도도 없었다고 했다. 유시민 방송은 이 부분을 내보냈다.

다른 매체들이 주목한 부분은 김경록 씨가 "제가 생각해도 그 행위 자체로 증거인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맞다. 좀 멍청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저도 그렇고 교수님도"라고 이야기한 부분이다. 이걸 보고 김경록 씨가 증거인멸을 인정했는데 이 중요한 사실을 유시민이 누락했고, 따라서 김경록 씨의 입장을 왜곡했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김경록 씨가 자신의 행동이 증거인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뉴스가치가 거의 없는 무의미한 말이다. 김경록 씨의 증언 중에서 중요한 대목은 행위를 한 당사자로서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의도였는지에 대한 진술이다. 이와 관련해 증거 인멸하지 않았고 그럴 의사도 없었다고 했다.

그 행위에 대해 나중에 검찰 조사 받고 생각해보니 증거인멸 행위인 걸로 판단한다는 것은 김경록 씨의 법적 판단일 뿐이다. 김경록 씨가 어떤 행위가 어떤 범죄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저 한 시민의 생각일 뿐이다. 법률 전문가도 아닌 김경록 씨의 법률적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김경록 씨의 발언 맥락을 보면 자신은 증거인멸하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법이 그런 것도 인멸이라고 한다니 법이 그렇다면 나로선 어쩔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김경록 씨의 입장을 전한다면, ‘증거인멸을 부인했다’로 전하는 것이 그의 진의에 부합한다. 그 행위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법률전문가의 말을 따는 것이 뉴스가치가 더 크다. 이런데도 수많은 언론이 김경록 씨가 증거인멸을 인정했는데도 유시민이 그 중요한 대목을 빼고 왜곡했다는 황당한 보도를 냈다.

편의상 이번 사건을 일단 ‘김경록 사태’라고 한다면, 김경록 사태는 검찰과 언론이 김경록 씨의 주장을 정반대로 전하면서 한 달여 간 국민을 속인 사건이다. 김경록 씨는 자기 말이 왜곡되는 것에 분노하며 인터넷 매체를 찾아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그 말마저 언론이 또 진의를 왜곡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김경록 씨의 법률적 판단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 것처럼 침소봉대했다. 왜 언론이 이렇게까지 김경록 씨의 입장을 한사코 왜곡해서 국민에게 전달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김경록 씨가 자신이 유시민 방송에 이용당한 것 같다며 후회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유시민이 공개한 김경록 씨의 메시지엔 ‘인터뷰 내용에 후회 없고 언론과 검찰의 시스템에 경종을 울린 것에 만족합니다. 편집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라고 되어있다. 언론은 끝까지 김경록 씨의 입장을 왜곡하려고 한 것이다.

검찰은 유시민 방송이 오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것도 어이없다. 이춘재의 처제 살인 사건 당시 매체가 이춘재 인터뷰를 했다고 쳐보자.

“나는 처제를 살해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춘재가 주장했다. 이것을 언론이 “이춘재는 처제 살인을 인정했다”고 보도하면 처제 살인 자체는 참이지만 보도는 거짓이다. “이춘재는 처제 살인을 부인했다”고 보도하면 이춘재의 말은 거짓이지만 보도는 참이 된다. 유시민 방송은 김경록 씨의 주장을 그 진의에 입각해 보도했으므로 오보가 아니다. 무려 한 달여간, 그리고 유시민 방송 이후에도 김경록 씨의 입장을 반대로 전한 대다수 언론이 희대의 오보 사태를 낸 것이다.

검찰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나 최소한 방조한 혐의가 있다. 이런데도 한 달 만에야 나온 김경록 씨 말을 제대로 전한 방송에 ‘오보’ 운운하는 검찰의 태도는 온당치 않다. 검찰은 김경록 씨 주장이 반대로 알려져 여론재판의 불쏘시개가 되는 걸 방조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입장이다.

온 국민이 속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도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이 진영논리로 희석되는 건 문제다. 예를 들어 속은 피해자 중의 한 명인 하태경은 엉뚱하게 유시민을 공격하고 있다. 하태경은 김경록 씨를 내부고발자라는 식으로 칭송까지 했으니 피해를 크게 입은 사례다. 하태경 입장에서 보면, 유시민 방송 덕분에 김경록 씨가 칭송할 고발자가 아닌 ‘범죄가족’ 조국 일가의 옹호자라는 걸 깨달았으니 고마워할 일인데도 국민이 속은 건 무시하고 김경록 씨의 입장을 전한 유시만 방송만 공격한다. 그저 진영논리인가.

조국에 대한 의혹의 향방과는 별개로, 김경록 씨의 입장을 한 달이나 국민이 반대로 전달 받은 ‘김경록 사태’는 기성 언론과 검찰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시스템이 손으로 해를 가렸다. 국민은 주권자이므로 옛날로 치면 왕이다. 왕을 속였으니 기군망상의 죄다. 앞으로 사건 관련 보도 특히 검찰발 기사를 못 믿게 됐으니 국가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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