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 여자 아닌 우리…원작 뛰어넘은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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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9년 11월 18일 20:20:56
    [볼 만해?] 여자 아닌 우리…원작 뛰어넘은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작가 밀리언셀러 원작
    정유미·공유 주연…김도영 감독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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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10-20 08:30
    부수정 기자(sjboo71@dailian.co.kr)
    정유미·공유 주연 '82년생 김지영' 리뷰
    밀리언셀러 원작…김도영 감독 연출

    ▲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지영 씨는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이기도 했는데 모두 김지영 씨 주변의 여자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1982년 봄에 태어난 지영(정유미)은 결혼과 출산 후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주부다. 국문과를 전공하고, 홍보대행사에 취직한 그는 육아 탓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놓아야만 하는 아쉬움은 딸 아영이가 채워준다. 사랑스러운 딸과 자상한 남편과 함께하는 일은 소소한 행복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요즘 들어 지영은 좀 이상하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아지고, 기억하지 못하는 현재의 순간이 많아졌다. 잘 할 수 있고, 스스로 괜찮다고 위안했지만 마음은 답답하다. 해질녘 노을을 볼 때면 가슴이 '쿵'하니 내려앉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지영은 마치 '빙의'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지영은 명절 때 시댁에 간 지영은 친정에 가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시누이 가족 때문에 '상을 차리라'는 시어머니의 말을 듣는다.

    설거지하던 그는 갑자기 친정 엄마의 목소리로 시어머니를 '사부인'이라고 부르며 속 얘기를 꺼넨다. 당신네 딸이 소중하듯, 우리 지영이도 딸이라고, 친정에 보내 달라고.

    어느 날 밤에는 죽은 친구 말투로 남편을 부르며 지영이를 잘 챙겨달라고 부탁한다. 또 다른 날에는 친정 엄마의 말투로 지영이 좀 살펴보라고, 지영이에게 신경 써달라고 한다.

    ▲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대현은 아내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지영의 상태를 알리지 않는다. 그런 대현에게 지영은 언제나 "괜찮다"며 웃기만 한다.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영화로 재탄생했다. 원작 소설은 출간 7개월 만에 10만부를 돌파했고 2년여 만에 100만부가 팔려 밀리언셀러가 됐다.

    소설은 '젠더 이슈'를 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공감을 얻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페미니즘 논란'을 일으키며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왔다.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는 온라인이 또 전쟁터가 됐다. 주인공 정유미의 출연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으니, 말 다했다.

    소설은 여성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성차별, 고용시장에서 받는 불평등, '독박 육아'를 둘러싼 문제점 등을 사회구조적 모순과 연결해 보여준다.

    영화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평범한 30대 여성 김지영의 이야기로 흐르지만, 소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소설이 다소 냉소적이고 건조하게 흘렀다면 영화는 온기 있는 시선을 유지한다.

    소설에 나왔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가정, 사회에서 겪었던 차별을 자극적이지 않게 건드렸다. 이 땅에서 자란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순간들을 곱씹게 된다.

    ▲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설이 '여자 김지영'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김지영과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을 비추며 평범한 우리네 삶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아울러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부장제·남아선호사상·성차별 문제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일궈냈는지 짚는다. 결국, 이 영화는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삶을 지나 어느덧 엄마의 삶에 도착한다. 이것만으로 이 영화는 제몫을 해냈다. 남녀를 구분 짓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엄마' 때문이리라.

    '82년생 김지영'에선 김미경이 그 역할을 오롯이 해낸다. 극 후반부 지영의 상태를 안 그가 한걸음에 달려와 지영을 보고 "금 같은 내 새끼, 옥 같은 내 새끼"를 외칠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소설과 다른 결말은 희망을 길어올린다. 자기 얘기를 똑바로 하지 못했던 지영은 마침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내뱉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반짝인다.

    단편 영화 연출작 '자유연기'(2018)로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은 김도영 감독이 연출했다.

    김 감독은 "2019년을 살아가는 김지영들에게 '괜찮다. 더 좋아질 거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첫 관객인 조남주 작가가 '소설보다 한발 더 나아간 이야기 같다. 이 영화를 선물 받은 것 같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들의 누이, 여동생, 이 땅의 지영이들, 우리 어머니 등 그분들이 어떤 풍경 속에 있는지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또한 상업 영화를 통해 더 멋진 '지영이들'의 서사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김지영으로 분한 정유미는 김지영을 준수하게 연기해 공감을 자아낸다. 그가 가슴이 답답할 땐, 나도 답답하고 그가 울먹일 땐 나도 울먹이게 된다. 정유미라는 배우의 힘이다.

    우월한 비주얼 탓에 소설 속 대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공유는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10월 23일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데일리안 = 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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